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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이름으로 축복하라 (민 6: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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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축복하라                         

(민6:24-27)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1. 어떤 부모는 자녀가 말썽부리고 속이 뒤집힐 때마다 감정이 폭발하여 욕을 퍼붓기 보다는 ‘이 복 받을 녀석아’ 라는 말로 대신한다고 합니다.?속은 썩어도 오히려 입술로 축복하면 반드시 그 입술의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모의 행동은 참으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부모의 축복을 받고 자라는 자녀와, 부모로부터 욕과 독설, 저주스런 말을 듣고 자라는 자녀는 분명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왜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27절)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 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과 삶의 모습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복을 받아 더욱 더 잘 될 수 있도록 복을 빌어주는 것, 즉 축복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중 하나입니다.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거리가 멀거나, 자신에게 별로 유익함이 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손해를 끼친 사람을 위해서 축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아름다운 생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를 위해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복 주시기 기뻐하십니다. 비록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등지고 사망의 저주 아래 사는 인생일지라도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돌아온다면 영원한 생명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하실 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원수를 사랑하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하신 변함없는 사랑으로 복을 주시고자 오늘 본문을 통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전달할 자로 제사장을 선택하셔서 자신의 백성들을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의 권위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만이 축복의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고, 그 축복이 의미와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 하나님의 권위로 축복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훗날 유대 랍비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즉 ‘당신은 행여 이 초라한 제사장이 나에게 무슨 축복을 베풀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에게 복을 주시는 자는 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자신보다 못나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이 없고, 능력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축복기도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으로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소흘히 여기거나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제사장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이란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빈다, 즉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를 줄여서 축도(祝禱)라고 합니다. 이렇게 “내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하는 것은 곧 자신의 전 의지와 인격을 내걸고 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농축산물에 대해 그 생산자 이름이나 생산 지역의 대표자의 이름을 표기하도록 해서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신뢰를 가지도록 하거나, 그 상품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명예, 이름을 걸고 상품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축복을 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세 번씩이나 거듭하여 그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자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언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전 인격과 명예를 걸고 그 축복 내용을 그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이 선포될 때만 그 축복의 내용이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고로 진정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축복은 공허한 주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2. 그러면 오늘날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은 누구이겠습니까? 오늘날은 구약 시대와 같은 제사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므로 구약시대처럼 동물을 희생시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으면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누구든지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 믿는 성도를 가리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을 위한 제사장, 여러분의 이웃을 위한 제사장, 더 나아가 이 나라 민족과 세계 열방을 위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는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가정의 제사장, 이웃의 제사장, 나라 민족의 제사장, 세계 열방의 제사장이 되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해 축복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제사장되시는 여러분에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복음 전한다고 비방하거나 박해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을 위해 축복해야만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를 막론하고 미워하거나 비판하고 정죄하거나 저주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할 의무만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 세상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저주의 땅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저주의 땅입니다.

시편 23:4 말씀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같은 곳입니다. 이렇게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누가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해주겠습니까? 바로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만민(萬民)의 제사장으로 선택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만인(萬人)을 축복해야 하는 만인의 제사장입니다. 만인의 제사장이 되어 축복해야 할 내용은 첫째,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둘째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셋째,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는 축복 기도 내용 중 가장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내용으로 채워진 축복 선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인간에게 복을 주시되 온전하고 영원한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내용들입니다.

1) 첫째,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라는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에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16: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아울러 주시는 복, 금세와 내세에 더불어 주시는 복, 눈에 보이는 복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복(산상수훈의 팔복)을 말합니다. 시편16:9-11에서 그 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16:9-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세상적인 복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다 잘 되는 복을 말합니다. 불법과 거짓, 그리고 부정과 기만 행위로 얻어지는 복이 아니라 진실과 정직함으로 주어지는 복을 말합니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고의 땀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복입니다.(시128편) 세상에서 잠시 누리다가 끝나는 복이 아니라 영원히 누리며 영원한 상급이 되는 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지키다’(솨마르)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입니다. 나아가 이 말은 ‘세심하고도 철저한 보호와 보존’, ‘주의 깊게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짐’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시 37:28)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부터의 보존(시 33:19, 76:3)까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한시도 살아가기 힘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생각이 각종 죄악과 유혹에 노출되어 언제든지 넘어지고 무너지기 쉬운 세상입니다. 내 가정의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의 마음과 생각을 거룩하게 지켜주시도록 가정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각종 사고와 재난, 환난과 독한 질병이 빈발하는 시대에 건강과 생명을 보존해 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생업과 기업을 지켜주시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주시는 믿음을 지켜주시고, 예수 믿는 성도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성령이 떠나가지 않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지켜주시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시127: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기만 하면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시91:7)고 고백했습니다. 랍비 시몬 벤 요하이의 제자 중 하나가 외국에 나가서 큰 부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질투했습니다. 랍비는 제자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랍비는 제자들을 데리고 마을 골짜기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한 후 외쳤습니다. “골짜기여, 골짜기여, 금화로 가득 차 흘러라!” 골짜기는 갑자기 눈이 부시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랍비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돈이 탐나는 사람은 갖고 가거라. 그러나 지금 이 돈을 갖고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지켜주지 않으실거야” 제자들은 아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편 127편의 말씀을 암송하며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여호와께서....돈을 벌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유대인을 세계에서 뛰어난 민족으로 축복하셨습니다.2)

축복해야 할 두 번째 내용은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는 것입니다. 여기 여호와의 “얼굴”이란 그분의 성품과 전인격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거나 감춘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얼굴”로 내게 비추어 주신다는 것은 생명이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 방향은 곧 인간 생존의 열쇠, 축복의 향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우리에게 비추실 때, 우리 인생의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슬픔과 고통이 사라집니다. 원망,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지며 기쁨과 소망, 평안함으로 우리의 삶을 밝게 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거나 등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은 죄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향하여 그 얼굴로 비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죄와 사망의 어둠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 생명의 빛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비취사 삶의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의 빛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축복해야 할 세 번째 내용은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26절)입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뜨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신다, 한 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끝까지 관심과 사랑을 베푸시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끊을 수 없는 열정적인 사랑을 베푸시고자 하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롬 8:31-39) 그리고 “평강”(히브리어 ‘샬롬’으로 평화, 평안와 함께 같은 의미로 사용됨)은 전쟁, 분쟁, 갈등이 없는 화목한 관계, 나라 민족 간의 갈등과 분쟁이 없는 평화, 노사간에 분쟁이 없는 평화, 남편과 아내,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화목, 이웃과의 다툼과 분쟁이 없는 평안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평강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시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평강은 세상에서 사람의 힘이나 노력, 투쟁으로 얻어지는 일시적인 평강이 아니라 영원한 평강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한 번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모였던 수많은 무리를 직접 보내시면서 제자들 먼저 서둘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다 보내신 후 산에 올라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갑자기 큰 풍랑이 불어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때는 캄캄한 밤중인데다 파선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그 때 바로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곤경에 빠져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놀라 유령으로 생각하고 더욱 무서워 떨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리고 배에 오르시니 바로 바람이 그쳤습니다.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한 배에 탄 사람들마다 모두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고 고백합니다. 홀로 멀리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얼굴을 향하여 드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걸어 급히 불안과 공포에 빠진 제자들을 찾아가셨던 것입니다.(마14:27-33, 참조 막4:35-41)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얼굴을 여러분을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은 어린나이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왔지만 범사에 깨끗한 생활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로 바벨론의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마다 워낙 뛰어나므로 왕이 나라 통치의 전권을 위임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를 시기하던 여러 신하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고자 했지만 어느 곳 하나 허물과 그릇됨과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악법을 제정하여 다니엘을 함정에 몰아넣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3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집에서 기도하던 생활을 이용하여 죽이기로 세운 악법 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러한 모든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전혀 요동함이 없이 평소에 하던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다니엘4장) 신하들의 고소고발로 결국 다니엘은 법에 따라 사자굴 속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왕이 뒤늦게 이를 알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니엘을 악법에서 건져내고자 했지만 왕 자신이 이미 어인을 찍어서 변개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밤으로 왕은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이 너무나 아까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금식하며 모든 기악을 중단하고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그야말로 불안과 초조 가운데 밤을 꼬박 지새운 것입니다. 왕이 다음 날 새벽에 일찍이 사자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아!”하고 불러봅니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불러보는 것입니다. 뜻밖에도 사자굴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너무나 기뻐서 다니엘을 굴에서 올려 본 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단6:21-23)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항상 범사에 깨끗하게 사는 사람에게 이같은 평강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의 범사에 평강의 복이 충만하시기 소원합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원한 평강의 복을 받게 됩니다.

만민의 제사장이 되시는 성도 여러분, 먼저 여러분 가정에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정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웃의 제사장으로 이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라 민족의 제사장, 만민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 제사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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