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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엉뚱한 친절과 파격적인 선행 (마 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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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엉뚱한 친절과 파격적인 선행
제목 / 마5:38-48

현대인의 삶은 너무 조건적이고 계산적입니다. 자신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데 잘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일찍부터 길들여져 왔습니다. 본문의 38절에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들었으나 이 말은 당시 사람들이 조상들로 받은 유전적이 교훈을 말합니다.
이 교훈은 신 19:21절의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말씀으로 사람이 악한 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율법적인 지침입니다.

사람들은 원수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고 미워할 대상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외면적으로 율법에 충실했습니다.
①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했습니다. (46)
② 가까운 친척이나 형제에게만 문안했습니다.(47)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되 원수는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해 득실을 따져서 계산적으로 사는 현대의 똑똑한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1) 악한 자를 대적치 말며 그들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
2) 악한 자가 너에게 재판을 걸어 속옷을 빼앗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3) 그가 억지로 오리를 동행하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해주어라
4)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5)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한마디로 “바보 같이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도무지 이해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오래된 전통과 관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신성시하는 율법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그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신앙의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가끔 백화점 광고 전단이 신문지에 끼워져 보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문구에 보면 파격세일이라는 말이 눈에 뛰기도 합니다. 정가 보다 30-40% 정도를 할인하며 파격세일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주님은 파격 세일이 아닌 파격적 신앙 행위를 요구하십니다. 그 파격적인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파격적인 신앙행위 / 원수사랑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사랑은 정말 당시 유대인들에게 파격적인 선언이었고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법대로 합시다" 고 말했습니다.
이 때 아이언 사이드 목사가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하길 원하나? 만약 하나님께서 법대로 자네를 다뤘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벌써 지옥에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우리는 법보다 위대한 원리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곧 은총의 원리입니다.
즉 "주께서 나를 다루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겠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은총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옳고 그름의 원리(율법)가 아닌 은총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이 무엇입니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넘치는 친절 / 엉뚱한 친절

어떤 사람이 오리를 동행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십리를 가주겠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친절이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법에는 군인들이 행군할 때 누구든지 차출해서 짐을 지고 가게 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오리이상은 가게 하면 안 되었습니다. 오리는 1000걸음을 정도를 의미하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싫어하면서 반항하였습니다. 그러한 당시의 그런 일들을 예로 들어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억지로 라도 오리를 가주면 의무는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무를 떠나서 넘치는 친절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어느 화창한 날씨에 한 여인이 공원 입장료 징수원에게 자동 판매기에서 산 일곱 장의 입장료 카드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한 장은 내 것이고 나머지 여섯 장은 내 뒤에 오는 여섯 사람의 것을 내가 대신 내주는 거예요“
뒤에 오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입장료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징수원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앞에 간 어떤 여성이 당신들의 요금을 미리 내줬소. 좋은 하루 보내시오”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지만 여인에게 있어서 커다란 기쁨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주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쾌락이 될 것입니다.

바보같은 선행 / 정신나간 선행

마 5:40절에 보면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의문을 제공합니다. 왜 사람이 속옷을 달라고 할까?
속옷은 재산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의 속옷을 빼앗아 입을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만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일을 당하여 말문이 닫힐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아가씨 팬티나 브라자를 벗어주시오” 라고 요청했다고 봅시다. 아마 그 젊은 여성은 완전히 기가 막혀 말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완전히 맛이 간 사람으로 볼것입니다. 그러기에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을 주리는 이야기는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도 선행을 실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꾸어간 돈을 받으러 채무자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얼마나 가난한지 당장 먹을 쌀도 없어서 굶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돈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쌀을 사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어느 분에게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니까 돈 받으러가서 돈은 고사하고 그 집에 쌀을 사 주고 온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 나간 선행은 하나님께 기억될 것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바보같은 선행이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때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나간 선행을 실천해 봅시다.

성경은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① 예수님께 옥합을 깨트렸던 여인(막14:3-9)
예수님께 향유가 가득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향유를 예수님이 발에 부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여인을 정신 나간 여인이라고 입방아를 찧어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② 자신의 마지막 양식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 (왕상17:10-16)
3년 6개월의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웅큼의 식량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자신에게 주고 나머지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말없이 빵을 구웠습니다. 그리고 한 주먹도 안되는 빵 전부를 배고픈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었습니다. 이 여인의 정신나간 친절은 하나님께 기억함이 되었습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계속 나왔습니다.

③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제공한 한 아이 (요6:9)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벳세다 들녁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양식을 주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계산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으려면 2백 데나리온의 돈은 있어야 하고 그랬다 하더라고 어디 가서 그 많은 빵을 사온단 말인가?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먹으려고 준비해 온 구운 생선 두 마리 와 보리떡 다섯 개를 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서 그것은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 남게 거두는 기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해 봅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엉뚱한 친절과 선행이 무엇이 있을 까요?
1) 어느 날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는 아줌마를 말없이 도와서 함게 청소를 해준다.
2) 차를 몰고 가다가 상대편이 잘못하여 충돌할 뻔했는데 이 때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인사한다.
3) 어느 날 쓰레기 봉투를 들고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4) 가난하게 사는 불우 이웃에게 쌀을 사서 모르게 배달해준다.
5) 시내 버스 타는 곳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하는 사람을 일부러 집까지 태워다 준다.
6) 목욕탕에서 옆 사람에게 등을 밀어주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본다.
7) 길에서 만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8) 택시를 탔을 때 몇 백 원의 거스름돈은 팁으로 그냥 준다.
9) 재래식 시장가서 반찬거리 살 때 늙으신 할머니가 파는 채소를 일부러 산다. 가끔은 몽땅떨이도 해본다.

자기 이익에 밝은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거 못합니다.
세상 말로 조금 맛이 간 사람들 그러나 너무나도 주님의 마음을 잘 알아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합니다.
주님은 이 같은 정신나간 선행과 엉뚱한 친절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엉뚱한 친절과 선행이 즉 파격적인 사랑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는 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 나간 선행과 엉뚱한 친절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 합시다.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넘는 생각으로 때로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지나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심지어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 들어도 실천해봅시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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