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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밈음의 위대함 (시 5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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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음의 위대함
시57:6~11
 
시편56편과 57편은 그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의 배경은 삼상22~24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시56편은 다윗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사울왕을 피하여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갔을 때 지은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을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한 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후에 도망을 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의 꾀를 썼습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블레셋으로 도망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사울왕이 쫒아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곳으로 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에게는 평안함이 있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기스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이 “저 다윗은 우리나라 최고의 장군이었던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아니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영웅이라고 노래 부른 사람이 아니냐? 저 사람이 우리나라에 온 것은 정말로 투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엿보고 정탐하여 멸망케 하기 위해서 왔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아기스 왕에게 보고 함으로 다윗이 잘못하면 원수의 나라에서 죽음을 당할뻔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또다시 살기 위해서 미치광이 흉내를 내게 됩니다. 다윗이 침을 흘리면서 대문짝에 그적 거리니까 아기스 왕이 “이런 미치광이를 왜 데려 왔느냐? 저것이 안 미치고야 우리나라에 왜 왔겠느냐? 저것을 당장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블레셋에서 쫓겨남으로 겨우 생명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은시가 시56편입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 왔지만 다윗은 여전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결국 아둘람 굴로 숨게 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어느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땅은 사울이 있기에 다윗이 안전하게 피하여 쉴만한 곳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굴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상22:1을 보면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때에 다윗의 부모형제,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자가 다 다윗에게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4백명의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다윗은 이사람들을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이런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일라성을 침략하게 되었고 다윗은 사람들을 이끌고자 그 일라성을 구하게 되었으나 그 일라성 국민들이 다윗을 배신하여 사울왕에게 다윗이 나타났음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십 황무지에 숨었고 사울왕의 군사들이 점점 좁혀 오는데 하나님께서 급히 블레셋 군사들을 일으킴으로 결국 사울왕은 다윗 잡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삼상24장을 보면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을 때 사울왕이 다윗을 또 잡으러 왔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더욱 믿음으로 살고자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의 배경입니다. 본 시편에서 보여주고 있는 다윗의 믿음의 위대함이 무엇일까요?

1.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본문7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다윗은 “하나님이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엔게디 황무지에 있을 때 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왕이 굴 안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습니다.

다윗을 따르던 한사람이 말합니다. “지금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내게 명령만 하시면 두 번 찌를것 없이 한번 만에 죽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안된다. 하나님의 종을 내가 죽일 수 없다”라고 한 후에 사울왕의 겉옷자락의 한 부분을 베었습니다. 사울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굴을 떠나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조금 멀리 갔을때 뒤따라 나가서 “왕이시여! 어찌하여 벼룩 같은 나를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내게 붙이셨습니다. 내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죽일 마음이 없습니다. 그 증거로 지금 당신의 옷 자락이 어찌되었는지 살펴 보십시오“ 사울왕은 자신의 옷자락을 보고 ”다윗아! 다윗아! 너는 참으로 의롭 구나 내가 심히 잘못되었다“라고 한 후에 돌아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는 것은 ”전능하신 분이시여“라는 뜻입니다. 왜 다윗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까?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①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은 블레셋에서 꼭 죽을줄 알았습니다. 또한 ②이스라엘 땅에 돌아 왔을 때에도 십 황무지에서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일으켜 살려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③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직접 싸우지 않고도 이기게 하셨으니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피흘림이 없이 이기게 함으로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엔게디 황무지 굴에 숨어 있었을때 다윗이 사울왕을 살려준 것입니다. 이일로 사울왕은 ”자신이 잘못했다“라고 다윗에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줄 수 없는 승리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 할때에 우리의 악한 원수라도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돕고 계십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헤칠 수 없다”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본문7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확정하다”라는 말은 “결심했다, 확실히 고정했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라고 두 번이나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이 다시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이 생각으로 가득 채우겠습니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즉 ‘내 마음에 단단히 결심했다, 내 마음에 확실히 고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확실히 고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①하나님만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사람하면 다윗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다윗은 찬양을 즐겨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죽음의 자리에서 계속하여 건짐을 받고 난 후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 확정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찬송의 뜻에는 ‘감사, 경배’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께 찬송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지금까지는 굴에도 숨고 이곳 저곳으로 도망 다니고 피해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으로 나를 영광스럽게 이기게 하셨는데 ‘이제부터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찬양 하겠습니다’라는 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간다 할찌라도 나는 주님을 찬양 하겠습니다”라고 다윗은 마음에 다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길 가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해 놓읍시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라도 나로 하여금 찬양하도록 승리자가 되는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찬양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찬양하게 하도록 하신다고 하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소리 높여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②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을 보면 “다윗의 믹담”이라고 되었습니다. “믹담”이라는 말은 ‘금언시, 황금시’라는 뜻의 말입니다. 즉 이 시편은 ‘황금과 같은 귀한 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황금시를 쓴 시점을 보면 모두 환난 중에 쓴 시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확실히 환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 보다 어려 울때 하나님의 은혜가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의 굴에 들어가 숨어 있었을때 사울왕이 그 굴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다윗과 그 신하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꼭 죽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승리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다윗은 사울왕을 살려 보냄으로 진정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지혜로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그 걸음을 인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확정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새벽을 깨우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본문8절을 보면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깰지어다”라고 3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내 영광아 갤지어다”라는 말은 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날마다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라는 말은 자신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잘 다루는 악기인 비파와 수금을 자주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말은 단순히 새벽을 깨우며 일어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새벽은 시작을 의미합니다. 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새벽을 깨운다는 말은 시작부터 힘 있게, 능력있게 나아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자신이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자 합니다. 또한 새벽을 깨우며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비파와 수금을 깨우시고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고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는 사람입니다. 새벽을 깨우겠다고 마음을 정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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