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노아의 후손-저주의 자손(함,가나안) (창 10:6-20)

  • 잡초 잡초
  • 1624
  • 0

첨부 1


노아의 후손-저주의 자손(함-가나안) 창 10: 6-20

우리가 두번째로 살필 곳은 함의 후손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함의 후손 가운데서 특별한 인물을 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8절에 나오는 니므롯입니다. 8-9절,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을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고 했는데 '영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르'(gibbor)는 '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가리킨다(룻 2:1; 전9:11) 그래서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파괴된 세상을 회복시키셨는데 사람만 번성케 하신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짐승들도 함께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 때 사나운 맹수들도 많이 번성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사나운 맹수들 때문에 상당히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때 니므롯이 일어나서 사나운 맹수들을 제압하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높이 받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니므롯은 모여든 사람들을 데리고 큰 성읍을 세웠습니다.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은 특이한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것은 니므롯 자신의 힘을 통하여 지배되는 왕국이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기록하였는데 고대 전쟁 영웅들을 가리켜 ‘사냥꾼의 제자’라고 부르는 관습은 사냥이라는 것이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근거에서 이 특이한 사냥꾼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은 ‘잔혹한 전쟁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조속에서 니므롯이 사람을 사냥하는 폭군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니므롯은 자신의 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였고 그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함의 후손에게 내린 저주의 일환이며 이 저주의 사술에 매인 자는 결국 그 저주를 계승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바벨 - 함무라비(Hammurabi)왕 통치시 바벨론 제국의 수도이다. 완전한 히브리명은 바벨론(Babylon)인데 동은 티그리스, 서는 아라비아 사막, 남은 페르시아 만, 북은 앗수르땅으로 둘러싸인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11장에 바벨탑을 건설하는 기록이 나오는데 바벨탑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죄악상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바벨탑을 쌓는 일에 니므롯이 큰 힘을 행사하였을 것입니다.

니므롯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죄를 행하는 사람을 보면 니므롯에 빗대어 말하기를 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니므롯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였는데 그 사람도 하나님을 그렇게 대적한다 하는 말입니다. 니므롯은 힘이 강하고 거만한 자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권세를 부리는 폭군을 말할 때는 니므롯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 15-20절에는 가나안의 후손과 그 가족들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함의 범죄에 대하여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함의 자손인 가나안에게 저주를 했는데, 여기 가나안의 후손들이 소유했던 땅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이 셈과 야벳 족속들을 섬기게 될 것이고 결국 그 땅들은 셈과 야벳 족속의 것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게 되는 거룩한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가나안의 후손들은 어느 정도 땅에서 성공을 거두고 많은 땅을 소유하고 매우 많은 자손들로 번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았는데 세상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 번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번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어느 정도 부와 지위를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당세에도 일시간의 부귀영화이며 후세에는 자취를 찾을 수 없음은 오늘날의 가나안이 후손을 찾기가 힘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당대에 세상에서 얻어지는 부와 명성과 지위만 가지고 평가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저주를 받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 보면 쉽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축복은 반드시 사실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이르게 됩니다. 다만 그 심판의 때가 잠시 보류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안목이 없으면 일시간 부귀와 영화를 보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본문에서도 함의 후손이 훨씬 번창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입니다. 결국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때에 그 많은 땅을 맡아 관리하던 가나안의 후손들은 거의 멸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흥망성쇠는 다소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흥망성쇠는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태반입니다. 당대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은 날마다 그 현실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대인의 역사를 보아도 개인적인 성공과 富라고 하는 입지는 노예생활같은 데서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적인 흥망은 아주 길게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일은 더 주의함이 좋고 개인의 일도 하나님께 축복을 쌓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순간의 선택이 아주 오랜 세월의 부귀영화와 및 영생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가나안이 외견상 셈과 야벳보다 좋은 환경과 성공을 거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셈과 야벳은 가나안 보다 훨씬 복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셈과 야벳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속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성도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세상의 부와 지위와 명성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택한 백성이 아니면 그 세상복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셈과 야벳은 그 순간의 일로써 축복을 상속했고, 함은 저주를 상속했습니다. 지금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극복된 것 같은 제도는 있지만 그들의 삶이 얼마나 학대를 받는지 모릅니다. 삶이 왜곡되고 저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제도와는 관계없이 개선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5000년이 넘는 역사가 지나도 이 저주의 사슬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중요합니다. 지금 축복을 상속받고 상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아침의 기도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진가가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새벽기도하러 오시는 분이 줄면 금방 이거 큰일났구먼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가 천년입니다. 여러분 ! 이 소중한 육체의 기회를 외면하지 마시고 육체를 바쳐서 영원한 복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