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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나는 사람들 (몬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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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 1;4-7  생각나는 사람들

도입

사람들은 흔히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받은 것 없이 이쁜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쁜 사람들은 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쁜 것입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가 이쁠 수 있습니다.  환한 웃음이 이쁠 수 있습니다. 

목사의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노 목사님이 성도들은 세 부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너무 너무 신앙생활을 잘 하기에 예뻐서 기도해 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저절로 목사가 위해서 기도해 주게끔 만드는 사람입니다. 

또 한 부류는 일부러 기억을 뒤져서 기도하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에 적극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보다는 덜 관심이 가게 됩니다.  편애를 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살고자 하는 자식이 더 생각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날마다 속을 뒤집어 놓아서 기도하게끔 만드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딴지를 걸고, 말썽을 일으킵니다.  도무지 기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으면 저절로 그 얼굴이 떠오릅니다.  몸서리가 쳐지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빌레몬은 어떤 부류였을까요?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빌레몬을 생각할 때 바울은 저절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골로새 지방에 복음을 전했을 때 바울은 빌레몬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복음의 전진 기지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기꺼이 자기 집을 교회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그의 아내와 아들도 복음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생각합니다.  “만일 빌레몬이 없었다면 어떻게 골로새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만일 빌레몬의 가족이 없었다면 어떻게 전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여러분, 이런 생각해 보셨나요?  “만일 내 아내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만일 내 남편이 없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물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저 인간만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그건 오히려 저 사람이 할 얘깁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속을 썩여서 기도의 대상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믿음으로 기도를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뭔가 문제가 있을 때 기도를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문제가 있는 빌레몬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이 넘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기도이 대상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사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아니 기도를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저주와 비난을 받으며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과연 그의 어떤 모습이 바울로 하여금 그를 늘 생각나는 사람, 기도해 주고픈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1. 믿음의 교제

바울은 왜 빌레몬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함께 5-6절을 읽겠습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참으로 기쁜 소식들을 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수고해서 이루어 놓은 골로새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중심에는 빌레몬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있는 믿음을 칭찬합니다.  빌레몬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그것만으로도 빌레몬을 칭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방신이 주도권을 잡고, 크리스찬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쫓아다니던 당시에 주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빌레몬은 칭찬 받을 만 했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성도들을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들과 더불어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안락한 삶을 누리던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교제로 인하여 교회는 점점 더 든든히 자리 잡아 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전도했지만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빌레몬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쉽게 말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빌레몬아!  너의 그 믿음의 교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선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너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단다.”

다시 말해서 빌레몬은 자신의 믿음의 교제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빛을 드러내었고,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지요.  바울이 보기에 이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고 놀라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빌레몬은 단지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믿음의 행등으로 인하여 자신의 믿음을 만인에게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엄길청박사가 쓴 봉사의 목표라는 책을 보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면 재벌에 속하는 60대의 한국인이 있답니다.  하루는 기자가 그에게 물었답니다.  “이제는 쉴만도 한데 왜 젊은이들 틈에서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십니까?”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물론 나는 지금 내가 쓰기에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에게 나누어 주기에는 부족하답니다.  그러니 일을 할 수 밖에 없지요.”  실제로 그는 일년에 약 600만불(600만불의 사나이?)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단지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 단지 이 땅의 부귀와 영화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레몬은 자신만을 위해서,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던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의 친구가 있습니다.  요나단입니다.  비록 그는 전쟁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다윗과의 우정은 두고두고 귀감이 됩니다.  자신아 받아야 할 왕권을 포기하고 오히려 다윗을 두둔하던 그의 우정은 바로 믿음이 있었기에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그의 우정, 그것이 바로 믿음의 교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믿음의 교제가 넘치는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울러 믿음의 교제가 넘치는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사랑의 만남

빌레몬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것이나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함께 7절을 읽겠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믿음을 갖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물론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사랑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법이지요.  내가 신뢰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냥 믿음직할 뿐이지요.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 바보는 없습니다.  사랑을 곧 믿음을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할 때 여러 가지 조건을 보고 믿음직한 사람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믿음이 어느 정도 이성의 행동이라면 사랑은 감정의 표현인 것입니다.

빌레몬은 주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성도들과 아름다운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 사랑의 모습은 많은 성도들에게 평안을 안겨 주었습니다.  함께 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건 “자, 천만원 마음대로 써”라는 말일 겁니다.  우리 집 사람 소원이 백만원 다발로 따귀 맞아 보는 것이랍니다.  물론 그리고는 그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는 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은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설령 산다할지라도 그 삶은 기쁨이 아닌 권태와 저주일 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고, 또 사랑할 그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지는 우리가 잘 압니다.

~~~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를 본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작은 오두막을 무엇에 쓰시려고 짓고 계십니까?”  그 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습니다.  “이 작은 집 안에 진실한 우정을 나눌 친구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겠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인생이란 누군가와 오두막 속에서 함께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자 했습니다.  이 인생의 오두막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그 사람들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작은 오두막 속에 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작은 오두막 속에 정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거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두막 속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로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혼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와 함께 믿으며 함께 하나님 앞에서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네 신앙생활도 하나의 오두막 생활입니다.  이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더불어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생활을 잘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생활을 잘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불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에 보내 주신 믿음의 형제들과의 관계입니다.

~~~  한 때 인기를 끌었던 광고 가운데 초코파이 광고가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정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백화점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떠듭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는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위한 회사라고 떠듭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당이라고 외칩니다. ~~~

그러나 이러한 외침들 속에서 참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외롭습니다.  냉정한 손익계산과 치열한 권력의지가 바탕이 된 거짓 사랑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인정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쵸코파이 광고가 아무리 정이라는 말을 많이 해도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백화점 광고가 우리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조건 따지기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이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조건 없는 사랑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냉정한 현대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따뜻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공허한 거짓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빌레몬과 같은 참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겁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바로 이런 사랑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 할만 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을만 하기에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내세울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가정, 그 가정이야말로 천국입니다.  그 교회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의 상태는 절망적입니다.  육신은 쇠약해졌고, 다가오는 시련의 그림자는 점점 깊어갑니다.  도무지 어디에서도 기쁨과 평강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인 바울에게 이른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빌레몬에 대한 성도들의 자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바깥으로부터 다가오는 엄청난 고난과 어려움을 내부의 기쁜 소식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도 기쁨과 위로가 되는 단어입니다.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사랑의 가정, 사랑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어려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빌레몬과 같이 평안함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복한교회 - 김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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