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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 (단 6: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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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단 6:25-27)

제가 지난 주일에 ‘섭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성경에는 ‘섭리’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성도들은 오늘 설교 제목이 ‘기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 “아, 오늘은 성경에는 ‘기적’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가 보다.‘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틀렸습니다. 성경에는 기적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기적”이 12번, 기적과 비슷한 말인 이적이 42번, “기사(奇事)”라는 말이 60번, “표적”이라는 말이 59번, 모두 합해 180번 가까이 나옵니다.
기적, 이적, 기사, 표적, 말들이 조금씩 다른데, 거기 따라서 뜻도 조금 다른 경우도 있는데 “모두 기적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사도행전에 “기사와 표적”이라는 말이 몇 군데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6장 8절을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표적이라는 말 앞에는 어깨번호가 붙어있고 난외주에 “또는 이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사에서 ‘기’자 따고 ‘표적’에서 적 자 따면 기적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적이란 말이 몇 번 나오나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기적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된 것,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최대의 기적입니다.
부활 사건은 성경의 기둥과 같습니다.
성경의 끝,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들, 기적입니다.

성경을 부활을 기둥으로 하고 창세기의 천지창조 기적과 요한계시록의 초자연적인 현상들이라는 기적들을 양쪽 벽으로 한 집과 같은 구조입니다.

또 성경에는 기적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는 큰 기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엊그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이 말은 주일낮예배 설교에서도 할 것입니다.’ 양해를 구하고 말한 것이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형을 속여 장자가 받을 축복을 가로 채고 외삼촌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에서 이십 년을 지나면서 많은 재산을 모으고 처자식을 여럿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에서가 복수를 위해 사백 명을 거느리고 마주 나옵니다.
야곱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동원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며 기도를 하지요.

그 다음에 야곱 일행과 에서가 가느린 살기등등한 사백 명과 부딪힙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로 보아서는 에서가 부하들에게 ‘야곱을 죽여라!’ 호령하며 달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33장 4절을 보면 반대로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없지만, 기적 같이 느껴지지도 않지만 기적입니다.
큰 기적입니다.

오늘은 8월 첫 주일, 8월은 통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기도해야 하는 ‘하나 추구의 달’인데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남과 북이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적에는 급진적인 기적과 점진적인 기적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급진적인 기적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 급진적인 기적입니다.
고라가 모세에 대해 반역했을 때 땅바닥이 갈라져서 그들을 삼킨 것, 급진적인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 무덤에서 걸어 나온 것 급진적인 기적입니다.
베드로의 말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일어나 뛰어 서서 걷게 된 것, 급진적인 기적입니다.

이스라엘 장정 육십 만, 부녀자와 노약자를 포함해서 추산 이백 만 명이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점진적인 기적입니다.
주로 어부 출신인 예수님의 제자 열한 명으로 시작된 적은 신앙공동체가 초대교회가 되어 유대교의 박해, 로마의 박해를 이기고 줄기차게 성장해 나간 것, 점진적인 기적입니다.

기적이라고 하면 급진적인 기적만 기적인 줄 알고, 급진적인 기적만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그런데 흐르다보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이단들이 바로 그런 점을 이용합니다.
설교준비에 참고하기 위해 기적에 대한 예화집을 보았더니 첫 번째에 이런 것을 헛된 믿음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해놓았습니다.

급진적인 기준을 물론, 점진적인 기적에서도 하나님의 숨결과 손길을 느끼는 사람,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급진적, 점진적, 이런 말을 하다 보니 8월의 과제인 통일과 연결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다음 주일이 북한선교주일인데 그 때는 설교를 제가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이야기들을 중간에 끼어 넣는 것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정책이 다릅니다.
남한의 통일정책은 점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신뢰를 형성하고 민족공동체헌장을 채택하고 공존공영을 추구하고 민족공동생활권을 형성하고, 통일헌법을 만들어 총선거를 실시하고 차차 이런 과정을 밟아 통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단계나 과도단계 없이 고려연방민주제로 통일부터 하고 보자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통일방법은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점급적(漸急的) 통일입니다.
점급적(漸急的) 통일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점진적’에서 ‘점’ 따고 ‘급진적’에서 급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양쪽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극적인 개입을 해서, 오늘 설교의 주제에 맞추면 기적적으로 개입을 해서 통일이 이뤄진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급진적으로 개입해서 통일을 주실 날이 임박한 것도 믿습니다.

‘기적 이야기는 아무래도 허황되게 느껴진다. 믿기 어렵다. 기적 이야기만 없으면 부담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적 문제가 걸림돌이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그런 분들은 진정한 의미의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천지만물 질서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필요해서 그 질서를 잠시 바꾸는 것입니다.
기적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질서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보니까 개미들이 죽은 지렁이를 자기들의 집으로 옮기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개미 여러 마리가 붙어서 애쓰지만 아주 조금씩 밖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보다가 딱해서 나뭇가지를 가지고 지렁이를 번쩍 들어서 개미집 입구까지 옮겨 주었습니다.
그 때 내가 개미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개미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떠들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지렁이가 공중으로 날아서 우리들 집 앞까지 올 수 있단 말이야!’
‘기적이야, 가적!’
우리들이 기적에 대해서 떠드는 것은 이 개미들이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제약이 많고 좁은 눈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부족해서 기적으로 여기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일식이나 월식을 기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컴퓨터, 지금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를 기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세기 전 사람이 다시 살아온다면 컴퓨터를 보고 틀림없이 기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동차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컴퓨터의 이동기억장치, USB입니다.
지금 이 USB에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교회에 부임해서 한 설교원고, 주보원고, 각종 문서, 쓴 글들, 박사학위 논문, 다 들어 있습니다.
제 책상 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있는 것을 다 옮겼습니다.
저의 교회 10년 목회가 이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도 기적입니다.

지금도 컴퓨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신기합니다.
제가 컴퓨터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서 ‘혹시 될까?’ 하고 컴퓨터를 잘 아는 전도사님에게 다 옮길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옮길 수 있답니다.
그러면 옮겨달라고 했더니 10분 만에 다 옮겨주었습니다.
십 년을 분으로 환산하면 오백이십오만 육천 분인데 그것이 10분 안에 다 옮겨지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나 중국 같이 사회주의 국가였거나 아직도 사회주의인 나라에서도 성경이 발행됩니다.
북한도 형식적으로 발행한 성경이 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그런 곳에는 성경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때 그곳의 성도들이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마이크로필름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그 때 이름 소련을 상대로 쓰던 방법인데 신구약성경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서 우편물 속에 넣어서 보내는 것입니다.
손바닥만 한 마이크로필름에 신구약성경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마이크로필름 해독기에 얹으면 사람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실무를 맡았던 장로님이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천국에 가면 책에 우리가 한 일이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잘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일을 어떻게 다 기록하고 보관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이크로필름을 보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USB는 마이크로필름보다 더 적은 크기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USB 보다도 더 간편한 방법으로, 이것보다 더 적은 것에 우리가 한 일을 모두 기록하고 게실 것입니다.

기적을 믿으면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기적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 기적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기적을 발판으로 해서 다음 단계로 뛰어 가야합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적 이야기들 가운데 오늘 다리오 왕의 이야기를 본문으로 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저는 설교본문을 신구약성경 66권에서 골고루 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올해는 아직 다니엘서에서 본문을 택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26절, 27절을 보세요, 다리오왕이 하나님에 대해서 놀라운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다,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다,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그 다음 보세요,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적을 행하시는 이로서”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이방 왕인 다리오도 하나님께 대해서 이렇게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 우리의 고백이 이것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이방 왕인 다리오도 하나님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이라고 증언하는데 우리가 기적을 믿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는 다리오 왕이 좋지 못한 본보기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리오 왕은 하나님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으나 거기에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하나님께 그렇게 좋은 고백을 했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부터 나도 그 하나님을 믿겠노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알기는 했는데 믿지는 않았습니다.
아는 선에서 멈췄습니다.

만일 다리오 왕이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보호해주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적과 기적을 베푸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리오 왕은 크게 칭찬 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28절에 고레스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 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령을 내린 임금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고레스 왕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45장 1절에서 3절까지를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 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이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회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얼마나 큰 칭찬이며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까?
우리나라의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칭찬 받고 복을 받는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서 41장 2절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도 고레스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만일 이 때 다리오 왕이 ‘하나님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하나님을 믿겠다!’ 했으면 다리오 왕은 고레스 왕 이상으로 그 이름이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리오 왕이라는 이름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이 다리오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다리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모릅니다.
고레스 왕은 역사에는 쿠루스(Cyrus)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페르시아의 초대 왕이고, 기원전 546년에서 529년까지 다스렸고, 이런 일들을 했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분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더욱 굳게, 강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을 칭찬하시며 앞에서 한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기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급진적인 기적도 있고 점진적인 기적도 있습니다.
이것을 직접적인 기적, 간접적인 기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남은 몰라도 나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의 눈이 흐리기 때문입니다.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밭에 익은 곡식, 들에 핀 꽃, 아침에 돋는 해에서 기적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밤이 지났는데 해가 안 뜨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매일 해가 뜨는 것이 기적이라고 한 분도 있습니다.

내 삶에 있었던 기적을 발견하셨으면 그것을 발전시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신앙의 도약대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큰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8․15 해방, 기적입니다. 큰 기적입니다.
우리나라는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시켰습니다.
윤리면에서, 도덕면에서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기적을 체험했으나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아,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능력으로 변함없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갔어야 할 터인데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절했습니다.
그 결과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다 죽어갔습니다.
내가, 이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기적을 체험한 다음에 그들은 다시 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다음에 실망해서 숨고,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가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이렇게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입니다.

지금도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예비군가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참 많이 불렀습니다.
예비군가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직장마다 피가 끓어 드높은 사기…’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의 용사들이 되어 정말 드높은 사기를 가지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다시 뭉쳤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를 이룩했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두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순교의 면류관을 썼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또 하나의 사례는 바울입니다.
바울이 이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유럽으로 갈까, 아시아로 갈까 고민을 합니다.
자기는 아시아로 가고 싶은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밤에 환상을 보지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환상을 봅니다.
환상도 기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보고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구나!’
인정합니다.
이 인정이라는 말을 결단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교회가 십여 년 전의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기적입니다.
이 성전을 준공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입니다.
성전을 막 지으려는데 IMF가 터졌습니다.
성전기공을 미루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착공하자고 고집을 부려 그렇게 결정하면서 한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로서의 영감과 언론인 생활 수십 년에서 얻은 통찰력을 가지고 내린 결정입니다!’
IMF 때문에 성전건축이 중단되었을 때 정말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빵점 목사, 빵점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공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더군요.
다시 한 번 그 영감, 그 통찰력, 저의 신앙, 저의 체험, 교회역사학도로서 공부한 것, 모든 것을 합해서 할 수 있는 말이, ‘교회의 오늘은 기적입니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그 기적을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다리오 왕처럼, 알기는 했으나 믿지는 않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홍해를 건넌 다음에 불평하고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 되지 마세요.
부활의 기적을 초대교회로 연결시킨 제자들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환상이라는 기적을 세계선교로 확대시킨 바울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최근 아프간 인질 사태는 한국교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교계를 잘 알고, 영적인 깊이가 있는 분들이 만나면 나누는 질문이 있습니다.
‘샘물교회, 참 모범적인 교회인데, 그 교회가 선교를 열심히 하다가 지금 이렇게 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랜드, 정직한 크리스천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그렇게 노사분규에 휘말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브란스 병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선교기관인데,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기관인데 이 기관 역시 장기파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일들에는 분명히 영적인 교훈이 숨어 있을 텐데 그 교훈이 과연 무엇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다보면 ‘아, 한국교회가 이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경고로구나!’ 하는데 의견이 모아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을 바탕으로, 그 기적을 확대시키며 이기시기 바랍니다.
‘제2의 기적’을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한 진통입니다!’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교회를 10년 동안 섬길 수 있었던 것도 기적입니다.
10년 전에 창원극동방송 사장으로 잘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장로님 몇 분이 좀 뵐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이 교회의 임시담임목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후임자가 하루 빨리 정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연락을 받고 ‘교회에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나?’ 염려했습니다.

다른 급한 일도 있어서 부산에서 마지막 비행기로 올라와서 분당 어느 음식점에서 그 분들을 만났더니 정말, 천만 뜻밖에 담임목사로 올 수 없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놀라서 안 된다고, 정말 안 된다고, 저의 부족한 점들 여러 가지를 들어서 강하게 사양했습니다.
그 일이 발전되어서 그 뒤 몇 가지 과정을 겪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부족한 점들을 많이 말했는데 그런 부족함을 그대로 안고서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목회할 수 있었던 것, 기적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수필을 많이 썼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쓸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표한 수필들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아세요?
‘음치와 찬송가’라는 수필입니다. 1978년에 발표한 수필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 제가 이런 수준 높은 교회를 섬길 수 있었던 것, 기적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에서, 여러분이 그렇게 사랑하는 신앙공동체인 이 교회가 걸어온 길에서, 이 민족이 걸어온 길에서 기적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발견하셨으면 그 기적을 통해 더욱 강한 믿음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그 기적을 확대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교회에 대해서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큰 기적,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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