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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 찬양의 능력 (시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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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찬양의 능력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00편 4절)

기독교는 찬양과 감사의 종교
마음·뜻·정성 다해 감사 찬미할 때
기적 충만한 은혜의 삶 살 수 있어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을 만나려고 하면 상당히 힘이 듭니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을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국가의 장관이나 수상, 대통령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항상 만나 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길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길을 모르면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길을 알면 쉽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 길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한다

하나님께 무조건 울부짖고 고함치고 간청하고 요구한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바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양하므로 그의 궁정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굉장히 평범하고도 간단한 길이 우리 앞에 열려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감사와 찬양을 등한히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의 성소에도 정면에 향단이 있고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매일 향을 피웠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향을 피워서 향이 성전에 가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향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5장 8절에 보면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찬양 드리는 것이 향이 되어서 하나님이 기쁘게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사와 향은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 앞에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향을 피워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 이름과 그 보혈을 의지하고 향은 우리 감사와 찬양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찬송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향을 피우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내려다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은 그 찬송을 보좌삼고 와서 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려면 하나님 보좌를 예비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찬송이 하나님의 보좌요, 보좌가 예비되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와서 좌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궁정 문에 가면 천사들이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들어가려면 천사들이 문을 열지 않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그 문이 스스로 열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은 제사가 되고 향기로운 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96편 8절에 “야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 갈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예물은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찬양하므로 하나님의 보좌에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95편 2절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멀리멀리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채찍을 받고 벌을 받은 것은 원망과 불평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니 하나님은 떠나가고 불뱀이 와서 그들을 물고 찢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원망, 불평하면 하나님은 떠나고 원수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계신 곳에 살려면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입술에 감사와 찬양이 떠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종교 중에 가장 감사와 찬양이 많은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성도들은 모이면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임재하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로 안내하는 길이 되고 하나님 지성소에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길을 항상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2. 마귀를 쫓는 무기이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모셔올 뿐 아니라 마귀와 귀신을 쫓는 무기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악신에 잡혀 고통 당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악신이 떠나갔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악신이 그에게 붙었습니다. 악신이 붙으면 그가 고함을 치고 온갖 욕을 하고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아무도 사울 왕 근처에 갈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수금에 악신은 견딜 수 없어 떠나가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1970년에 덴버 포스트 지에서는 음악과 식물의 성장속도를 실험해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요란스러운 음악이 나오는 방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과 조용하고 경건한 음악이 나오는 방에 각각 식물을 넣었습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식물의 성장 속도를 비교해 보니 요란한 음악이 나오는 방에서 자란 식물은 약 36센티미터 자랐고 그 뿌리는 약했으며 줄기는 스피커와 반대편으로 스피커의 소리를 안 들으려고 굽어져 있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에서 자란 식물은 46센티미터가 자라고 뿌리가 길고 털이 많으며 줄기는 곧게 자랐습니다. 조용하고 경건한 음악이 흐르는 방에서 자란 식물은 51센티미터로 가장 길게 자랐습니다. 경건한 음악을 들려준 식물은 뿌리와 줄기가 매우 튼튼하게 잘 자랐으며 식물은 스피커를 향해서 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 찬양은 마귀를 쫓는 무기가 되지만 세속적인 광란의 노래는 악령을 불러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경건하고 아름답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는 우리 심령을 살리고 심지어 말 못하는 동물들까지라도 잘 자라게 만들고 식물들까지라도 성장하고 튼튼하게 되고 열매를 잘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큰 것입니다. 세속적인 광란의 노래는 악령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경건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찬양을 부를 때 천사들이 오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과 감사는 마귀가 두려워하는 무기 중 하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와 찬송을 하면 빛되신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에 어둠의 마귀가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보고 사라지는 것처럼 어둠의 권세인 마귀는 빛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움츠러지고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에 마귀는 찬양과 감사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이 오시도록 보좌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3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을 쫓을 때 찬송을 많이 불러야 됩니다. 저는 과거에 귀신 쫓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귀신을 쫓으려면 1시간, 3시간, 어떤 때는 6시간씩 계속 기도하다가 좀 쉬었다가 기도하다가 또 쉬었다 기도하는데 쉬는 시간에는 찬송을 부릅니다. 기도를 하다가 찬송을 부르고 또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데 그때마다 귀신이 말하기를 “찬송 부르지 마라. 찬송부르지 마라”고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것을 제가 종종 봤습니다. 찬송은 귀신을 쫓는데 굉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3절에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오셔서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로 11절에도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피로써 원수 마귀를 내어 쫓아 주시는 것입니다. 보혈의 찬양을 많이 할 때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마에서 해방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헨리 프로스트는 미국인 선교사로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때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중국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향에서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슬프고, 좌절되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프로스트 목사는 선교본부에 갔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Try Thanksgiving’(감사를 해보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당시 그는 그 체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해도 물러가지 않던 흑암이 감사를 하자 햇빛이 비취고 어둠은 사라지고 마음은 가벼워지고 치료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는 마귀를 몰아내고 우리 인생의 흑암을 거두어 햇빛을 비춰주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찬송과 감사를 마귀가 두려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돈 고셋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며 찬양 사역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찬양 사역에 헌신하게 된 이유는 바로 부인인 조이 여사 때문입니다. 조이는 목사님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에서 반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항상 마귀의 눌림에 시달리고 고통 당했습니다. 마귀는 조이 여사의 귀에 대고 늘 말했습니다. “너는 21살까지 밖에 살지 못한다. 21살 되던 해에 너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울증에 걸리고 마음의 고통에 눌려 눈물을 흘리고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신경 안정제를 먹으며 여러 가지 치료를 해도 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조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그 마음에 말하기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라.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이 여사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헌신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둠의 세력들을 완전히 쫓아주셨고 그 이후 그는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찬양 사역으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찬송과 감사는 하나님의 보좌가 되므로 마귀가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을 때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우리는 바로 하늘 보좌에 접근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두 세 사람 모일 때마다 감사하고 찬양하고 교회에 모일 때마다 감사하고 찬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 때 언제나 큰 부흥이 왔을 때는 성도들이 모여서 감사와 찬양을 많이 불렀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을 때 하나님 성령이 역사하셨고 부흥이 사라진 교회는 감사와 찬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모두 다 침울하고 우울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셔 오지만 감사하고 찬송하지 아니하면 흑암의 세력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이렇게 살기 어려워지고 흑암의 세력이 많은 것은 광란의 음악이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감사와 찬양의 음악이 끊어지지 아니하면 자녀들의 심성에도 좋고, 부부간의 마음에 평안과 안정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임재함을 늘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고난 중에 역사하시는 통로이다

감사와 찬양은 또한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수렁에 빠지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빠졌을 때 그때가 바로 찬양을 부를 때인 것입니다. 왜 고통 당할 때 찬양을 불러야 합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통 당할 때 우리가 찬양을 부르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고통당하면 원망, 불평, 탄식을 합니다. 더욱 고통이 증가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초청해 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에 들어 왔을때 여리고를 하루에 한 바퀴씩 7일 동안 돌고 7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고함을 질렀습니다. 전부 모여서 “야훼를 찬송하라. 하나님은 크시도다”라고 크게 고함을 치자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원수의 진이 찬양을 통해서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엿새 동안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째날 일곱 바퀴를 돈 것은 비유컨대 기도와 같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찬양을 높이 부르면 원수의 진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는 슬퍼하고 탄식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서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베옷을 입고 성전에 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 성령께서 임하셔서 “이 전쟁은 내가 싸울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야훼께서 너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이 한 것은 거룩한 성가대를 조직해서 그들이 적군이 쳐들어오는 골짜기 언덕위에 올라가서 일제히 찬송을 부르도록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자 하나님께서 복병을 주셔서 복병을 일으켜 세워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치게 만들고 또 저들끼리 싸우게 만들어서 전쟁하지 않고 멸망하고 큰 승리를 얻게 만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 자중지란이 일어납니다. 스스로 물러가고 스스로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가져오는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4. 해방과 자유의 능력이다

감사와 찬송은 해방과 자유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근심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염려가 우리 마음을 묶고 좌절과 절망이 우리를 짓누를 때, 아무리 기도하고 가슴을 쳐도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감사와 찬양을 부르면 쇠사슬이 끊어지고 해방과 자유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흑암은 광명으로 변하는 기적이 찬양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은 찬양의 위대한 능력이 가져오는 역사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굶주리고 깊은 감옥에 들어가서 쇠고랑을 찼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그들 두 명은 일어나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처지가 못 됩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많이 얻어 맞고 굶고, 쓰라리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쇠사슬에 매여서 드러눕지도 못하고 감옥 깊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찬양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 빌립보 옥사에 일어나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더니 옥사가 뒤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들의 차고가 사람 손에 의하지 않고 다 풀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다 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 가운데 일어나서 해방과 자유를 가져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로 26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찬양과 감사는 지진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서 모든 묶인 줄이 끌러지고 묶인 밧줄이 풀려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와 찬양은 마음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사와 찬양을 할 때 위로가 오지 않습니까? 그 위로가 우리의 심령에 굉장한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쁜 찬송, 슬픈 찬송, 위로의 찬송, 용맹스러운 찬송 등 찬송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기쁠 때는 기쁜 찬송을 부르면 더욱 기뻐지고, 슬플 때는 슬픔을 위로하는 찬송을 부르면 슬픔이 위로가 되고, 위로의 찬송을 부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은혜가 넘쳐나고, 우리가 겁날 때는 용맹스러운 찬송을 부르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주님 앞에 나가면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서 우리 영도, 마음도, 몸도 치료를 받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2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도할 때 송축부터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문이 열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를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우리의 삶속에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의사는 1998년 한 해 동안 신앙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매 주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병원에 입원할 확률이 적고 입원하더라도 빨리 치료되어 입원기간이 짧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손뼉치고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마음에 긴장을 풀게 하고 치료를 가져오므로 생명을 평균 7년 연장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1999년 듀크 대학에서는 약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예배에 참석하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우울증과 고혈압 치료에 매우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감사와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여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찬양과 감사의 종교인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해야 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일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에 부흥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부흥이 오려면 우리 하나님 앞에 통회와 자복만 해서는 안됩니다. 감사와 찬양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감사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하며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의 성령은 비와 같이 쏟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적이 충만한 승리의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너무나 세상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많아서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어두움을 쫓아내고 절망을 쫓아내고 우울증을 쫓아내고 감사와 찬양이 아버지의 임재하심을 햇빛같이 우리 가운데 가져오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와 찬양을 통하여 슬픔이 사라지고 좌절과 절망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찬송하기 싫을 때 찬송하고, 감사하기 싫을 때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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