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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서원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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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 속에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사람을 선택해서 쓰시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서 경영 컨설팅 전문 회사에 의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에 대한 평가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나사렛 예수 귀하,
  귀하가 의뢰한 열두 명의 인적 사항을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 및 검사를 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명만을 제외하고는 공동체의 간부로서는 자격 미달입니다. 그들은 단체 관념도 없고 협력 정신이 부족해서 경영관리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성정이 너무 과격합니다. 안드레는 한 마디로 무능력자입니다. 남을 지도할 사람이 못 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공동체의 이익을 제쳐 놓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도마는 매우 부정적이고 질문뿐이며 추진력이 별로 없습니다. 마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및 가나안인 시몬은 사회 혁명을 노리는 과격한 불온 사상에 깊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추천한 열두 명 중 그래도 긍정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가룟 유다 한 사람뿐입니다. 그는 비교적 유능한 편입니다. 사회 지식도 풍부합니다. 실업인다운 예민한 감각과 판단력도 가졌습니다. 사교성도 있어 권력 상층부와도 잘 접촉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강한 동기가 있고 의욕도 가득차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 컨설팅 전문 회사는 가룟 유다 한 사람만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달리 일자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경영 컨설팅 전문 회사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기준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전적으로 신뢰하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는가를 보십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붙잡고 절망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가를 보십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로 인하여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서둘러 야곱을 외갓집 하란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부모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자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야곱이 일어나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벧엘에서의 야곱의 서원이 곧 우리들의 서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본문 21절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서원은 하나님께 구두(口頭)로 자신을 바치는 행위, 즉 실행을 맹세하고, 제물을 바치며, 어떤 일을 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경건한 열심과 헌신의 표시가 함께 드려졌습니다. 야곱의 서원은 어떤 것을 소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확신의 표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는 서원은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평생 섬기며 살겠다는 의지요 발로이자 신앙 고백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에서 이제는 자신의 하나님으로 직접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체험으로 인격적으로 섬기겠다는 서원입니다. 남이나 제 삼자의 객관적인 하나님에서 이제는 나의 주관적인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족이나 부모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과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믿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때 진정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은혜입니다. 체험적인 신앙의 세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주후 1세기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안디옥교회의 감독으로 시리아에서 복음의 역사를 많이 펼쳤습니다. 그의 노년기에 로마의 트라얀 황제(AD 98~117)가 동방의 도시들을 순회하던 중 안디옥을 방문했습니다. 황제는 이그나티우스의 명성에 끌려 그를 만났지만, 기독교를 멸시했던 황제는 혹독한 말로 이그나티우스를 빈정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사악한 마귀, 사람들을 속이는 자가 있구나!”
  “나는 마귀가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입니다.”
  “네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본디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리스도가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답을 들은 황제는 적법한 절차도 없이 그를 로마로 압송해 콜로세움에 세웠습니다. 약 4만 5천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고, 그를 맹수에게 던지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때 이그나티우스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맹수의 이빨 사이에 낀 하나님의 곡식으로 빻아져서 주님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고자 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자들의 그를 덮쳤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이 조롱은 주후 1세기 때부터 행해진 박해의 유형입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며 온갖 멸시의 포화를 다 퍼부어 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최후의 승자가 누구였는가를… 이제 우리도 더욱 분명하고 다부진 마음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어떤 박해와 환난이 있어도 ‘나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몸, 마음,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드리면서 섬겨야 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바로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섬김의 도구로 드려야 합니다. 이 시대의 이그나티우스처럼 목숨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거룩한 빵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함께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서원하고 그 서원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하나님의 전을 섬기겠습니다

  본문 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것은 우상이나 일반적인 예배의 대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다만 꿈과 그 꿈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약속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런 대상의 경배를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돌기둥 위에 기름을 부운 것은 돌기둥을 거룩하게 구별하려는 행위로서 야곱이 하나님께 그곳과 자신을 헌신하는 신성한 의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서원한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야곱이 후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이곳에 제단을 쌓겠다는 뜻으로 훗날 이 서원을 지킵니다. 따라서 이곳 벧엘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임재하심을 뜻하는 기념 처소가 될 뿐만 아니라 오는 세대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영적 예배의 장소를 상징하는 영원한 모형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역사적 사건을 교회와 연관지어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갈대아 우르를 떠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처한 장소가 아무리 힘들어도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고센 땅에 400년 동안 머물게 하셨습니다. 애굽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통의 땅이었습니다. 탄식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결국 그 땅은 70명의 보잘것없는 부족이던 야곱 일가를 200만 명 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탄생시킨 땅이 되었습니다. 고센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치료받았던 베데스다 연못가는 병든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머물기 어려운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머물러 있던 장소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장소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장소에 찾아오십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성장하신 곳은 나사렛입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을 촌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나사렛 동네에서 성장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정말 선하신 예수님이 성장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피하고 싶은 환경은 아닙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환경, 모든 사람이 버린 환경, 소외감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버린 것과 같은 황폐한 곳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아직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그 환경이 축복의 환경임을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와 환경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소와 환경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입니다.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까? 외로움 속에 살고 있습니까? 쉽게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조용히 참고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여러분이 처한 장소와 환경이 축복의 벧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천국이 됩니다. 기적의 장소가 됩니다.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임재입니다. 예수님을 모셨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사는 환경이야 어떻든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가장 큰 은혜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루스가 벧엘이 됩니다. 하나님의 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전을 잘 섬깁시다. 또한 우리가 있는 곳이 거룩한 성지가 되고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게 합시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전을 짓고 잘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본문 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십일조는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겸손한 신앙 고백의 행위입니다. 야곱의 십일조 서원은 율법이 아닌 조부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른 것입니다. 십일조는 돈을 가지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위해 돈을 쓰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maaser'라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단순히 10%를 의미합니다. 5~9%를 드리는 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10%가 아닌 다른 어떤 숫자를 드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총 수입의 10%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란 실상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영적 전쟁의 행위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공급자로 신뢰하기보다는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는 원리를 신뢰합니다. 재정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그 분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 체제에 우리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그 체제는 사탄의 주관 하에 있기에 저주받은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은 우리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창고란 당신이 영적으로 공급받으며 양육 받고 있는 지역교회입니다. 그 창고가 선교 활동이나 구제 사역, 또는 개인적인 인연이나 친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창고는 여러분을 알며, 돌보아주고, 이끌어 줄 영적 권위를 맡은 사람들이 있는 지역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십일조란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시며, 맘몬의 영은 나의 삶에 권세를 끼치지 못한다’라는 믿음의 선언을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이요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여러분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어떤 사람에게든 믿음을 요구합니다. 수입의 10%가 그냥 남아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창고문을 열어 축복하는 하나님의 재정 원칙입니다. 십일조는 주님께 속한 신앙계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서도 십일조 하는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십일조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콩글톤 경은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 한 명이 다른 하녀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오! 나한테 5파운드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는 하녀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나에게 있으나마나한 5파운드가 하녀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구나…”

  그는 정말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5파운드를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부엌으로 하녀를 찾아가,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되었으며 그녀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 뒤, 5파운드를 건네주었습니다. 하녀는 감격하여 그의 친절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콩글톤 경은 부엌을 나와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한 자신의 작은 선행을 기뻐하며 잠시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안에서 하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난 참 바보야. 왜 10파운드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심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에서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태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광복기념 주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복주시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나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전을 섬기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기로 서원을 하고 평생 지키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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