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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을 발하라 (사 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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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라는 영화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환타지 영화입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쟁을 판타지 기법으로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 사이의 전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볼 만한 영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신학자이며 작가인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루이스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 인생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매일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기를 쓰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너무도 큰 슬픔 속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했기에 그의 간절한 기도는 정신병자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줄기의 빛이 영혼 속에 비쳐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주옥같은 명작들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나니아 연대기' 입니다.

본문은 BC 7세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말씀의 내용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범죄와 타락으로 국운이 쇠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분위기였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고, 그 후에 만민에게 복음의 빛을 발할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귀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신약시대 교회의 모습을 예언한 것입니다. 즉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촛불로서의 작은 불을 비추는 자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넓게 비추는 빛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캄캄할수록 더욱 더 빛이 필요합니다. 또한 어둠이 심하면 심할수록 빛의 진가는 발휘됩니다. 지금은 빛을 발할 때입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기 위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어둠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둠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빛 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빛이신 예수께서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반사체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 세상에 비추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1절은 '일어나라(Stand up)' 고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쿠미' 란 동사입니다. '쿠미' 는 앉아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즉 어둡다고 불평하며 있지 말고 속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비추셨던 그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추어야 할 빛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구원의 빛입니다.

세계 3대 참회록은 '어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입니다. 세 개의 참회록을 비교해 보면 상황이 다르고 과거의 모습도 양상이 다르고 변화되는 과정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저들 모두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노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지 않게 여호와의 빛이 자기들의 삶 속에 비추었다고 고백합니다. 다음으로 자기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사람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헛되게 살았는데 이제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데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 는 어두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하여 주심으로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네 빛이 임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어두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영적 어두움 가운데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신음하며 절망하던 저들을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이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를 빛의 자녀 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빛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임하면 존재가 달라집니다. 빛의 자녀가 됩니다. 어두움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혹시 패배의식 속에서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며 살아 오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이십니다. 어둠에 갇혔던 심령들이 이 빛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추는 구원의 빛을 보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 빛을 통해 구원받았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구원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구원의 빛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로 소망의 빛입니다

토니 멜렌디즈(Tony Melendez)는 심각한 선천적 기형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특히 손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발을 가지고 기타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L.A의 거리에 앉아서 악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거리의 구경꾼들에게 찬송가를 연주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로마의 교황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발로 기타를 치며 연주하는 그를 발견하고 군중사이로 손을 뻗쳐 토니를 붙잡았습니다. 교황의 이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고 온 세계는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후 토니는 교황청의 초청으로 교황을 위하여 찬송을 연주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토니는 훗날 '희망의 선물'(A Gift of Hope)이란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연주를 마친 뒤에 친구들이 기다리는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흉측하게 불구가 된 젊은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지나갈 때 미소를 지으며 애써 손을 흔들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출구를 향해 계속 걸어가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뻗치면서 말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토니, 당신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토니 멜렌디즈(Tony Mendelez)는 빛을 비춘 사람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손과 팔이 완전히 불구였지만 절망을 이겨내고 예수님을 통해서 소망을 찾았습니다. 소망의 빛이 그의 가슴을 비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소망의 빛을 다른 이에게도 비추어 소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이 소망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 빛이 희미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당시의 상황을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70년이나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소망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 두려운 것은 어려운 일 자체가 아니라 절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망하지 말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외칩니다. 어두운 터널만 바라보면서 절망에 묻히지 말고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의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복음의 빛입니다

탤런트 김혜자(金惠子) 권사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책에는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행한 선교와 구호사역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비참한 상황을 들러보던 한 여인이 하나님께 불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 김혜자 권사 본인의 심정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왜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 맞다. 그래서 널 보내지 않았느냐?" 사람들마다 말은 무성하게 잘 합니다. 비판도 잘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을 드러내면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손해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땅에서와 하늘에서 백 배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잠깐의 고난 때문에 복음의 빛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11절 이하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러므로 이제 일어나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온 세상이 진리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산 위의 등불로서 빛을 널리 비추어야 합니다.

일어나 빛을 발할 때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빛을 발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빛을 발할 때 우리를 영화롭게 하여 주십니다. 일어나 빛을 발할 때 하늘의 복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디 일어나 구원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소망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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