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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과 형통에 대한 성도의 자세 (약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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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형통에 대한 성도의 자세 (약 5:13)

사람은 누구나 한 평생 형통한 날들이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고 만사형통을 기원하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을 보고 한 해의 소원을 빕니다. 입춘이 되면, 대문에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치 날씨를 사람의 뜻대로 바꿀 수 없듯이, 우리 인생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형통한 날도 만나고 곤고한 날도 만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지혜자 솔로몬은 말하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전개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우리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단 5:23). 잠언 16장 9절에 이르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하는 사람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형통한 날도 곤고한 날도 허락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형통한 때나 곤고한 때를 막론하고 성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고난과 형통에 대한 성도의 자세’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함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고난의 때에 가져야 할 성도의 자세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고난을 만나면 당황합니다. 욥기 4장에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게 이르기를 “3)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4)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욥과 같은 위대한 인물도 졸지에 엄청난 고난을 만나자 그만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만나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급적 빨리 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판단을 그르치게 되고 그 결과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게 되고, 마음을 지키면 긍정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100:5) 하신 대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국가적인 존망의 위기를 만나 두려워하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1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교의 신들을 보면 대체로 폭군과 같이 변덕스럽고 포악합니다. 그러한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언제 그들의 신이 돌변해서 횡포를 부릴는지 알 수 없어서 늘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진실무망하시며, 절대로 선하시며,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이행하시며,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인자하심이 무궁하신 신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실 때에도 선하신 뜻에 의해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육신의 부모도 자기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못 본체 하지 않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징계합니다. 하물며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사셔서 자녀로 삼으신 성도들이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수수방관 하실 리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모든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성도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 마음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함을 믿어야 합니다. 시편 119편 92절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고난을 이겨낸 경험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안심하고 딛고 설 수 있는 반석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125:1)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여건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나아감으로 요동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에는 우연히 다가오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할 때 고난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성숙시켜 줍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행할 바를 알려 줍니다. 그러기에 시편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67,71)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죽는 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른 제자들은 다 도주하였으나 혼자 대제사장 관저의 뜰에 들어가서 하인들 틈에 끼여 앉아서 불을 쬐면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종이 불빛에 비친 베드로의 얼굴을 보고는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놀란 베드로는 그 말을 부인하였습니다.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말하기를 “너도 그 당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고 부인했습니다.

한 시간 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기를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이처럼 부인하다니 얼마나 처참한 패배입니까? 그가 세 번째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났을 때 마침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니 주님께서 돌이켜 연민어린 눈으로 그를 마주 보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그는 자기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으며 더 이상 자기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겸손히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같이 고난의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욥이 그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랬습니다. 모세는 무려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난의 학교에서 연단을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도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2장 10절에 이르기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은 고난이 다가올 때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인격을 성숙시키시려고 고난의 학교에 들여보내셨구나 생각하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헛된 자만을 꺾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우상이 가득한 이방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많은 고난이 따랐을까요?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한번은 무리가 던지는 돌에 맞아서 쓰러졌는데, 사람들이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다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행 14:19).

오늘날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사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성도들이 무수한 고난을 당한 것을 생각할 때, 그 분들의 수고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그토록 혹독한 고난을 수없이 당했으면서도 사명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을 통해서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 1:)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고난을 만났습니까? 사도 바울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과 함께 계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하신 대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큰 위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고난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줍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편을 택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링컨은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유능한 명장이 없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의 때에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땅만 쳐다보던 우리로 하여금 시선을 들어서 멀리 하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기도할 때,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던 생각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생각으로 바꿔주십니다. 믿음의 생각은 믿음의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므로 복된 결과를 얻게 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마음이 홀가분해 집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마음에 위안을 얻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기도는 곧 힘과 능력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결과를 산출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불변하는 가르침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하나같이 기도의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고난의 밤에 낙심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때를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며 영적 성숙을 도모하는 값진 기회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형통할 때 가져야 할 성도의 자세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 국민은 몇 년 전에 IMF 국가부도를 만나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어서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한 가지 경제적인 번영에 도취되어 기업이나 국민들이 무절제한 투자와 낭비를 일삼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 결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하신대로, 우리는 외환위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첫째로, 형통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삼상 13:14).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준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찬송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수록되어 있는 시편은 본디 곡조가 붙은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시편에 수록된 150편 가운데 다윗이 지은 것이 절반이 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시편 57편에서 그는 말하기를 “7)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찬송 중에 거하시는 신이십니다(시 22:3). 그러므로 우리는 형통할 때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형통함이 하나님의 복 주신 결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편, 사울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을 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자기를 위해 승전비를 세웠습니다(삼상 15:12).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영광을 자기가 차지한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형통함으로 인해 마음이 즐거우십니까?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누리는 형통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알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형통할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기던 날, 아무 어려움이 없이 순조롭게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너무 기뻐서 왕의 체신도 다 잊고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안치한 다음,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곧 감사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말하기를 “반딧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촛불을 주신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전깃불을 주신다.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딧불도, 촛불도, 전깃불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하셨습니다. 두 말씀 다, 일 할 때에 일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몸이 건강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아시고 그 건강 가지고 주의 일에 열심 내시기 바랍니다. 몸이 병들면 교회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젊음이 있을 때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늙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열심히 충성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의 일을 하라고 주신 줄 알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데 힘써야 합니다. 재물이 항상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23장 5절에 이르기를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재물이 나의 수중에 있을 때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고,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해야지, 그것이 독수리처럼 내 손에서 날아가 버리고 나면 하나님의 일에 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보면, 지금은 할 일이 많아서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지만, 나중에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열심을 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처럼 위험한 생각은 달리 없습니다.

오랫동안 밭을 갈지 않고 방치하면 잡초와 잡목이 무성한 불모지가 되고 말듯이, 우리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지 않고 방치하면 은혜를 상실한 황폐한 심령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형통한 때에 세상 일로 바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직분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고난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형통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따라서 고난이 큰 유익이 되기도 하고, 형통이 화가 되기도 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 고난의 때나 형통할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복 된 기회로 선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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