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의 성전 건축 (슥 4:6~9, 고전 6:19~20)

  • 잡초 잡초
  • 1837
  • 0

첨부 1


마음의 성전 건축 (스가랴4:6~9, 고린도전서6:19~20)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마음의 문을 열고 여러분의 마음의 방에 예수님이 거하는 거처가 되게 하셨습니까?

로버트 멍어는「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에서 믿는 자의 마음을 주거지로 비유하여 거기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이 기뻐하고 칭찬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내 마음의 방에 주님이 거하시고 주님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보실 때 칭찬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아니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가? 믿는 자들은 죄에서 구원받고 내 마음의 방에 주님이 오셨기에 죄를 이겨야 한다. 그리고 거룩해지도록 해야 한다.

빌2:15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며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부르심인 것이다. 즉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의 중요한 사역의 하나는 자기 몸을 더러운 데 내던지지 말고 거룩하게 지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새 성전을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어딜 가든지 어떻게 지었느냐고 묻는다. 얼마나 힘드셨느냐고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한다. 사실 할 말이 많기에 그렇게 대답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아름다운 교회를 지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이다. 보이는 교회는 건축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거룩한 전으로 건축되지 아니하면 마음의 건축, 그것이 우리의 해야 할 일이다.

성경말씀을 보라.

1. 예수님은 자기의 몸이 성전이라 하셨다. (요2:20~21)

예수님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시고 그 성전을 삼일 만에 짓겠다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어서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하였다. 저들은 성전을 돌과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로 생각하였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2:21을 보라.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다. 즉 자기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면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다시 살게되는데 그 주님의 몸이 참 성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생각한 성전과 달리 주님은 자기 육체 즉 몸으로서의 성전을 말한 것이다.

2. 그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고후6:16)

교회는 성령의 사귐,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백성이라 한다. 그중 성도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때 여기 백성에 해당되는 말이 ‘라오스’다. ‘라오스 투 데오스’ 즉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믿는 내가 교회란 말이다.

고후6:16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였다. 성전의 특징은 깨끗함이다.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되면 안된다. 예수가 장사하는 무리들로 가득했을 때 성전을 청소하셨다면 교회된 내가 깨끗해져야 함이 마땅하다.

고후6:17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혼합 신앙으로 더러워져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어둠과 빛이 짝을 지을 수 없고 의와 불신이 함께 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를 이룰 수 없듯이 바알 신앙과 하나님의 신앙이 혼합되어서는 안된다. 죄를 피하고 죄를 이기고 죄를 물리치는 자가 되라. 부적을 붙이고 다니고 점치러 다니고 도끼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고 세상 것,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청소해야 한다. 교회를 더럽혀서는 안되지 않는가?

3. 내 몸이 거룩한 성령의 전이다. (고전6:19)

주님은 요14:1 이하에서 제자들의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의 몸이 그분의 처소가 된다. 성령으로 임재하신 보혜사를 받으면 내 마음의 방은 성령이 거하는 전이 된다.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에 이젠 내 몸으로 하나님께만 오직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령의 전이 된 몸을 가지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몸 안에 죄를 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죄는 몸 밖에서 짓는 죄라면 음행은 자기 몸에 짓는 죄이다. 그러므로 창기와 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사창가, 홍등가에 가서는 안된다. 내 마음의 방을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거하도록 빨리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그러므로 건축을 시작하라. 하나님 나라의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을 다 버리자.

고전6:9~10에서 나열된 음란, 우상 숭배, 간음, 탐색, 남색, 술수와 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당 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 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불의의 유혹을 받아 거룩한 성전의 건축, 마음의 건축을 방치하고 있다. 빨리 건축하라.

여기 스룹바벨에게 주신 스가랴의 예언 속에 영적 건축의 원리가 들어있다.

첫째, 주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

그렇다. 성령으로 될 수 있다. 능으로도 안되고 힘으로도 안되지만 실망하지 말라. 아브라함의 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고 이삭 때문에 하갈과 사라가 분쟁이 났을 때 주의 말씀이 임했다. 그때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씀이 왔을 때 깊은 근심을 버리고 약속의 자녀를 붙잡고 계집종의 자녀는 버렸다.

이렇게 성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정리하게 하신다. 성령이 말씀을 주시든지 특별한 계시를 주시든지 사람을 만나게 하시든지 성령님의 신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 마음이 거룩하게 되는 원리는 성령을 의지하는데 있다.

둘째, 큰 산이 평지가 되리라. (슥4:7)

산은 장애물이다. 건축을 완성하려는 자에게 산은 방해물이다. 그러나 산은 “네가 무엇이냐?”며 건축을 하려는 스룹 바벨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예언한다.

영적으로 산은 죄악의 덩어리이다. 그 산은 인간이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죄악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죄를 인하여 두려워할 때 하나님의 돕는 손이 있다. 그 손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으면 산은 깨지고 가루가 된다.

사41:13에서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돕는 하나님은 내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 하였다. 죄악의 산 앞에서 지렁이처럼 무능하고 힘이 없고 방법이 없지만 거룩한 하나님이 도와주기에 승리한다.

사41:15 “이가 날카로운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고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

큰 죄, 작은 죄, 보이는 죄, 보이지 않는 죄 등 모두 다 깨뜨리고 평지를 만들 수 있다. 마음의 성전을 세우는 건축은 주님의 돕는 손을 믿어야 된다. 그때 우리는 노래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된다.


셋째, 시작한 손이 마치리라. (슥4:9)

거룩한 마음을 품고 건축을 시작한 스룹 바벨에게 선지자는 약속한다.

“그 시작한 손이 건축을 마무리 하리라.”

그렇다. 마음의 성전 건축도 마찬가지다. 깨끗해지기 원하고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세워지기 원하는 나의 인생 속에서 거룩한 삶이 완성될 것이다. 

나는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로버트 멍어의 책 중의 한 페이지를 소개하려 한다.

서재면에 보면 예수가 마음의 방의 서재에 들어오셔서 잡지와 그림들을 쳐다볼 때 당황하게 되었다. 선반에는 그분의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책이 있고 크리스챤으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집지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그때 로버트 멍어는 “주님, 이 방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크리스챤의 집이면서도 신앙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을 걸어놓고 으스대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의 방에 누가 보겠느냐고 더러운 그림과 테이프로 채워두지 않았는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참되지 못한 것을 전부 갖다 버려라. 마음의 서재 선반에 성경책을 꽂아라. 성령을 묵상하라. 벽에 걸린 그림을 떼고 나를 기억나게 하는 주님의 초상화를 걸어라.”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다. 바로 마음의 방을 건축하고 주방을 청소해야 한다. 온갖 욕구로 가득한 메뉴를 제거하고 하늘 양식의 메뉴를 두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분과 나는 건축가들이다. 2006년 2월에 보이는 교회 건축을 봉헌하고 금월 8월달은 건축 헌금 드리는 달로 정하고 헌금 드리기를 기도 제목으로 삼았지만 마음의 건축은 때때로 보이는 건축보다 죄의 방해로 인해 훨씬 어렵다. 그러나 거룩한 삶에로 부르신 소명을 따라 이 세상 속에서 빛으로 나타내는 거룩한 크리스챤이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의 방에 예수를 모시고 세상의 인기, 명예, 돈, 주식 등의 메뉴판을 말씀의 메뉴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내 몸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마음의 성전 건축, 고통스럽고 귀찮다. 한 순간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제를 멈추면 안된다. 관습과 전통이 가로막고 세상의 오락과 더러운 상처들로 얼룩진 과거와 사단이 가로막아도 건축되어야 한다. 어떤 장애물도, 어떤 큰 산도 평지가 될 것이기에 계속해야 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