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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의 사람으로 자유 하라 (롬 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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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영의 사람으로 자유 하라
본문 : 로마서 8:5-11

  오늘은 우리 민족이 36년간의 일본제국의 지배와 압박에서 해방을 맞이 한지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고 일본의 히로히토 천왕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 해방의 날은 우리 민족의 주권과 재산과 생명과 함께 자유를 되찾은 날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8.15 해방의 성격을 “도적 같이 불의에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견해대로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은 우리의 어떤 노력에 의해서 쟁취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경륜과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그런 까닭에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복 후 우리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 남북분열과 함께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는 지금의 시대는 사람들이 극한 개인주의, 물질탐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파괴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것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참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인간형은 어디에 있는가, 확인해 보는데서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인간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인간형을 이룰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입니다.

  이것은 태어난 그대로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인(The natural man) 그대로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나 생활이 육체가 좋아하는 대로 지배받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즐길까? 하는 육체적인 욕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롬8:5)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의식이 없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의(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마음속에서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느끼게 하는 양심의 가책을 깨닫지 못합니다. 육에서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나 선생님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성경의 모든 기적은 신화와 같은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일들이 생소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연에 속한 사람(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고전 2:14)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를 우습고 이상한 이야기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니 은혜니 축복이니 하는 것들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장님이 꽃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귀머거리가 교향곡의 아름다움에 감탄치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것을 알고 깨닫게 하는 영적인 기능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자연인들은 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영의 일들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일축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는 것, 지옥이니 천국이니, 영생이나 멸망이니 하는 것을 믿게 하려고 논쟁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논쟁으로 설득된 사람은 또 다른 논쟁으로 설득되면 그 믿음을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과 능력이지 설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도다”(고전 2:4-5)고 했습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육의 사람은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육신일 뿐입니다. 육의 사람은 육으로의 지식과 지혜를 가졌을 뿐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볼 때에 육의 사람은 육의 노예 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육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곳에서 자유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적인 사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5장 21절에서 “이런 일(육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신적인 자연인에서 구원받는 자유의 사람이 되십시오.

  영의 사람입니다.

  사람은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자유 한 사람이 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 하셔야만 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영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과 생활이 더 이상 육체만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바로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면서 육의 사람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영은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영이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이 새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6:32-36)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본문에서 좀 더 교리화 시켜서 말씀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2)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롬8:5)

  영의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어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영의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은 겉모양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물은 마치 물과 포도주처럼 다릅니다. 물과 포도주는 액체이기 때문에 동일한 특성을 갖습니다. 고정된 모양이 없고, 흘러내린다는 점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맛도 다르고, 마셨을 때, 몸의 반응도 다릅니다. 화학적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은 겉모양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육으로 사는 사람은 땅의 것만 보고 삽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삽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육의 사람은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나 영의 사람은 성령으로 난다"고 하셨습니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은 출생 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은 삶의 결말도 다릅니다. 종말의 순간에 맞이할 결과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의 사람이 되면 영적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이해력을 열어주셔서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드와잇 무디(Dwight Moody)목사님께 찾아와 “목사님, 목사님께서 만약 저의 10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시기만 하면 제가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제안 같군요. 그러나 제가 먼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런 후에 내일 아침 10가지의 질문을 가져오시면 제가 대답해 드릴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청년은 “예,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하면서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튿날 그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자, 준비되었습니다. 질문을 하시지요.” 그러자 그 청년은 “필요 없습니다. 지난 밤 하나님께서 저의 의문에 모두 다 응답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안다’는 말이 두 종류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기노스코(ginosko)’입니다. 이것은 경험으로 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말은 ‘오이다(oida)’라는 말로 ‘직관적으로 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경험으로 알기도 하지만 직관으로 아는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서 영적인 직관으로 깨닫게 하여 알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갑자기 모든 일들이 불을 켜듯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로 알게 되고 믿어지며 천국과 지옥이 알아지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알게 되고 모든 성경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영의 세계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육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영의 사람으로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만드는 성품을 이루어 갑니다. 바울은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으로의 비인격적 모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면 영의 세계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영의 세계의 기쁨을 가지게 되고 그 세계의 즐거움과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이 왜 기쁜지 평화로운지 즐거운지를 알지 못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 왜 교회를 가기를 좋아하고 예배를 귀히 여기는지, 왜 화를 내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지, 왜 술집에 가지 않는지, 왜 손해를 보면서도 굳이 깨끗하고 의롭게 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적인 신앙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아는 사람입니다. 육의 무지에서 자유로워 영의 지혜로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알게 하시는 영적인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육의 사람에서 해방된 자유를 가지십시오. 

  영의 사람을 완성시키는데서 더욱 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람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되 영을 따라 살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사람, 그 사람이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신을 따라가는 신앙인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지만, 그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복종시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여전히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영화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영의 세계를 깨닫고 영의 기쁨과 즐거움 평화를 알면서도 육신의 일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되 육신을 쫓아가는 성도는 영적상태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서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매일 젖만 먹는 신앙입니다. 아직도 말씀의 깊이가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고난과 역경을 격을 때에 극복하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쉽게 육신의 욕구를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 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했습니다.(갈5:16-17) 

  바울은 그의 서신중에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머물지 말고 자라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 온전한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만족해서는 아니 됩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영적인 사람으로 더욱 온전하십시오.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됨으로 참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참된 그리스도이이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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