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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 (신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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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

(신4:1-8)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3)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1.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흔히 ‘지식산업 사회’ 혹은 ‘뇌본주의’(腦本主義, Brainism) 시대라 부릅니다.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통해서 보면, 근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건보다 두뇌에 의해 창출된 콘텐츠가 경쟁력과 수익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단순 노동에 의존하여 능률성과 효율성으로 경쟁을 할 수가 없으며, 조직원인 사람의 지식과 창의성이 경쟁의 무기가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腦)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기술, 발명이 중심이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운명과 경제발전을 좌우하게 되는 요소는 바로 인간의 두뇌에서 창출되는 지식, 정보,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퀄컴(Quelcomm)사는 휴대전화의 CDMA(부호 분할 다중 접속방식)방식을 개발해 이동 통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생산 공장이 없이도 그 기술 수출만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돈을 벌어들여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두뇌에서 빚어진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력으로 잘 만든 영화, 방송, 미디어나 게임 컴퓨터 관련 저작물 등의 콘텐츠 한 편으로 수 백억 달러를 벌고 인터넷 정보나 게임 타이틀로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바로 ‘뇌본주의’(腦本主義, Brainism) 시대입니다. 참으로 머리를 잘 사용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는 지식형 인간을 찾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장차 세상 사람들이 일컫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으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지혜”란 히브리어로 ‘하캄’인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신앙(믿음)과 행위,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식”(히브리어 ‘빈’)은 인간의 지성에 근거한 이해력, 분별력, 통찰력 등의 종합적 사고력을 뜻합니다. 스승을 통해 습득되는 학문, 세상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사과 세 개를 두 아이가 어떻게 나눠 먹으면 좋겠느냐?” 라는 교회학교 선생의 질문에 믿음 좋은 아동부 어린이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나씩 나눠 먹고 한 개는 하나님께 바치면 되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어린이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만약 “한 개 반씩 나눠 먹으면 됩니다.”라고 대답한 학생이 있었다면 이 학생은 지식형 인간입니다. 이에 대한 더욱 더 분명한 설명이 되는 성경을 보겠습니다.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이 말씀 속에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랑”은 “지혜”에서 나오는 사랑,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지혜를 말합니다. 파스칼의 말대로 지혜가 지식보다 나은 것입니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지식이 많은 사람, 지식형 인간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과 문화 속에 사는 인간 사회에서는 지식형 인간보다 지혜형 인간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지혜가 너를 보호하리라. 지혜를 사랑하라.”(잠4:6-7),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잠8:11)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냐는 어떤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께서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어 버려졌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가버렸습니다. 또 한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지극정성을 다해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길을 떠나며 주막 주인에게 가진 돈을 털어주며 강도 만난 사람을 계속해서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만약 치료비가 더 들면 여행에서 돌아와 갚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율법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식과 분별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혹시 강도 만난 자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은 시체를 만질 경우 7일 동안 부정(不淨)하다는 율법지식(민19:11,16) 때문에 강도 만난 자를 그냥 피해 지나갔던 것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지식형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지혜형 인간입니다.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지혜형 인간입니다. 지식만 갖춘 사람은 절대로 자기 손해 볼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을 함께 갖춘 사람은 만약 강도 만난 자를 돕다가 그가 죽어서 율법에 따라 그 시체를 만지게 되어 자신이 부정해지는 것 보다 혹시라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혜형의 사람은 불쌍한 사람, 약한 사람, 병든 사람 등에 이웃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은 똑똑하다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존경받지는 못합니다. 소위 가진 자로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덕망있는 사람으로 존경받는 것은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기업도 소위 이웃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지식형 기업은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합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주는 지혜형 기업들이 환영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열두 가지 재주꾼이 저녁거리가 없다.”라는 속담처럼 많은 박사학위를 받고도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인데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지식이 많은 사람이 지혜롭다면 이런 사람은 금상첨화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머리 똑똑한 선비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배우지 못한 동생이 있었습니다. 형이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하게 되어 동생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동생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얹혀사는 것이 미안하여 농사일을 거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글만 읽은 형이 땔감을 하기 위해서 나뭇가지에 올라 자르다가, 가지와 함께 굴러 떨어지고, 여름에 논두렁에 물이 넘쳐 터진 둑을 막아야 하는데, 삽으로 바깥에서 막으려니 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보다 못하여 말하길 “형님, 나무를 자르고 둑을 막는 방법을 글로 써보시지요.”라고 하자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과 글로는 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는 하지 못하는 공허한 지식주의를 풍자한 것이지만,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데에도 지식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훨씬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지식은 육적으로 아는 데(知)에 중점을 두지만 지혜는 영적으로 믿고(信) 믿는 대로 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1:23-25)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딤후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지혜형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나라 사람이 되어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되 가감하지 말라(2절),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데 있어 자신에게 불리한 조항은 빼버리거나 자신에 유리하도록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3: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즉 아주 사소하고 별로 값이 나가지 않는 농작물의 십일조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정작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버렸도다.”,

곧 사회 지도자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정의로운 생활,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의 실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과 사람의 신뢰를 받을만한 생활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액수가 많든 적든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하되, “의와 인과 신”도 역시 철저히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하기 쉬운 일에는 생색을 내며 자랑하고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여 책임을 회피해가는 위선적인 생활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철저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비록 어린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장차 왕의 두뇌로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 왕궁 교육을 받으며 왕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왕궁 음식이었습니다. 왕궁에서 나오는 중요한 음식이 모두 바벨론의 신전 우상의 제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음식들을 먹게 되면 자연히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폐허되고 나라 민족이 이미 망해 포로되어 끌려온 주제에 감히 왕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철저히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다. 왕궁에서 나오는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그 사실을 왕궁 관리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상의 제물 외에 먹을 만한 것은 채소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포로가 채식만 해서 얼굴이 파리해지고 깡마르게 된다면 관리는 그 책임을 지고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단1:10)

다니엘이 이 관리에게 제안합니다. “나는 결코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열흘 동안 채소와 물만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우상의 제물을 먹은 포로들의 얼굴과 비교해서 그들만 못하다면 처분대로 해도 좋습니다.”(단1:13) 관리가 다니엘의 제의를 받아들여 열흘 동안 시험했습니다. 열흘 후에 보니 “(단1:15)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도 철저히 말씀대로 생활한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단1:17-20)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이렇게 지식과 재주, 명철과 지혜가 뛰어나게 된 다니엘은 포로 출신으로 바벨론 출신의 여러 총리와 방백들보다 월등하여 전국을 다스리는 수석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를 시기하던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고자 했지만 모든 면에서 아무 틈이나 허물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의 충성됨에 아무런 그릇됨이나 허물됨이 전혀 없었습니다.(단6:4) 그야말로 다니엘은 지혜와 지식이 있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16세기 일본 무왕 다다오키 호사카우가 어느 날 한 정치가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폐하는 어떤 사람이 가장 유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호사카우는 “유능한 사람이란 아카시 만(灣)의 굴 같은 사람이오.”라고 대답했고, 정치가는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고 말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아카시 만은 여러 만 중에서도 폭풍우가 가장 심한 곳입니다. 거센 파도가 그 지역에서 서식하는 굴을 매섭게 때리곤 합니다. 그래서 가장 맛 좋은 굴이 그곳에서 생산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능한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탄생한다는 의미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도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시므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마지막으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이 깨끗해야만 합니다. 본문 3,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바알브올의 일”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입성을 눈 앞에 두고 모압 땅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을 통과하게 내버려둔다면 모든 농사가 쑥밭이 되어 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무당 발람을 초청하여 엄청난 복채(卜債)을 주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푸닥거리(굿판)을 벌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복채를 받고 발람이 여러 차례 이스라엘 저주하고자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발람으로 하여금 저주 대신에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저주가 실패로 돌아가자 발람은 많은 복채를 받은 터라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살며시 귀뜸해 준 것이 바로 음행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모압이 숭배하는 바알브올 신전에서 최고의 산해진미 잔치상을 베풀고, 최고의 미인들로 구성된 여사제들을 동원하여 가장 매혹적인 춤을 추게 하여 우상의 제물을 정신없이 먹고 우상숭배를 조장하며 여사제들과 음행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발람의 술책대로 40여년 동안 광야 생활로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초청되어 모압 최고의 미녀들에 홀딱 빠져 음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염병을 내려 죽인 사람의 수가 무려 24,000명이나 되었습니다.(민수기 25장)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음행하는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생존했습니다.”(4절) 이들만이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바알브올의 일”입니다.

세상이 온통 음행으로 더러워지는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사람들”, 즉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생활하는 거룩한 성도들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사람이 귀하게 쓰임 받으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그래서 성경 야고보서 3:17-18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 백성이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 되시고, 지도자들이 “지혜와 지식이 있는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며, 깨끗한 생활로 이 시대에 다니엘 처럼 귀하게 쓰임 받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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