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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많은 물에서 나를 건지소서! (삼하 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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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물에서 나를 건지소서! (삼하 22:12-26)

시작하는 말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구원의 크신 은혜에 대한 찬송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특색은 단순한 감사만이 아니라, 자신이 당하던 환난의 때가 얼마나 두렵고 초조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그 환난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를 노래하고 찬양을 합니다. 

다윗은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17절)라고 그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많은 물이란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5-6)를 말합니다.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재앙과 환난을 말합니다.

“많은 물에서 나를 건지소서”라는 이 말씀은 다윗의 기도인 동시에 모든 인류의 기도이며, 오늘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반드시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1.많은 홍수의 재앙에서 건지소서!

노아 당시의 인류는 시집가고, 장가가느라 바빴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는 인위적인 성적인 타락을 말합니다.

세상살이에 빠져 들어 갔습니다. 세상살이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사로잡혀 빠져 들어갔습니다.

인류는 정신없이 살아갔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삶은 결국 심판을 초래하는 삶이었습니다. 

죄악을 관영시키는데 바빴습니다. 하나님을 탄식시키는데 바빴습니다. 홍수의 재앙이 임할 때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을 준비하는데 바빴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홀로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고 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노아에게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창6:14)고 하나님이 계시하셨습니다.

홍수의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방주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방주를 짓되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지어야 자기에게 유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주를 말없이 지었습니다. 이유나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은 자기의 거처인 동시에 하나님의 거처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구원받는 길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살았습니다. 의롭게 살았습니다.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에 들어갔습니다. 방주는 더디어 홍수위에 떠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많은 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많은 물에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2. 스올(죽음)의 재앙에서 건지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지중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 속에서 사람들이 풍랑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무리가 요나에게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욘1:8)라고 물었습니다.

요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욘1:9)고 대답했습니다. 요나의 생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매 “여호와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였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욘1:17)고 했습니다.

요나는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속(스올, 무덤, 지옥)에 있었습니다. 바다의 큰물이 무덤이었습니다. 물고기 배속이 스올이었습니다. 곧 사망을 뜻합니다. 삼일 삼야가 지옥이었습니다.

다윗의 모진  생활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생활이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살다 보면 스올의 배속에 들어간 듯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망과 생명과는 한 발자욱 차이밖에 안 되는 생활이었습니다.

요나가 스올에서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2:4)라고 회개했습니다.

요나가 지옥 같은, 무덤 같은 큰 물결 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하고, 서원하고, 맹세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셔서 스올에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큰 많은 물에서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서원하고, 다짐하고, 맹세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했을 때 요나는 니느웨로 갔습니다. 요나가 순종한 것은 기쁘고 즐거워서 순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순종은 곧 스올이요, 무덤이요, 지옥의 권세아래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큰 풍랑에서 건져 주소서 !

광야에서 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후 제자들을 따로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 있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수리나 떠났습니다.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했습니다. 시간은 밤 4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밤을 4경으로 나눕니다. ①1경은 오후 6-9시까지 ②2경은 9-12시까지 ③3경은 12-새벽3시까지 ④4경은 새벽3시-6시까지로 나눕니다. 밤 4경을 강조한 것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시간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시간임을 말합니다.

풍랑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자를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선 교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는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중에 골목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도적이나, 깡패나, 강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방범대원이나, 경찰을 만나면 제일 반갑습니다.

아무리 큰 폭풍이라도 폭풍중앙에는 사방 몇 km의 핵(눈)이 있습니다. 태풍의 눈은 무풍지대입니다. 바람 한 점 없습니다. 그곳이 태풍속의 지성소 즉 하나님이 계셔서 운전하시는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지중해의 유라굴로 태풍 속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이 만날 수 있는 자는 단 한분 밖에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자는 단 한분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풀무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인자와 같으신 분, 하나님의 아들 한분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만나야 할 분은 오로지 한 분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릴 도울 수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봉사단들, 병원의 환자들,  노약자들,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 교회만을 찾아다니는 구걸인들, 마음고생 하시는 이들, 몸 고생 하시는 분들, 생활고에 시달리시는 분들, 중한 병에 시달리는 자들 모두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야 삽니다.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고 놀랬습니다. 그때에 우리 주님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마14:28)라고 청했습니다. 예수께서 “오라”(마14:29)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14:29)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물위를 걸어가는 생활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 주님을 향해 가는 길은 살얼음을 걷는 길입니다. 한 시라도 주님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다와 바람과 파도의 물결을 바라볼 때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붙잡아 주실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끝맺는 말

“많은 물에서 건저 주옵소서” 이 기도는 다윗의 기도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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