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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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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블스 목사는 그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서 최근 당신의 목회에서 새로운 고민을 말한 바가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이 어떤 신앙일까? 나는 지금까지 균형잡힌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을 하고 있다. 그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은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교회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 자신의 목적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삶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내가 이 땅에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세상의 종말의 때”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행1:7-8절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엉뚱한데 호기심을 갖지 말고 복음전도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28: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명령하셨고, 행20: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믿음을 계승한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명령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가장 큰 존재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복음을 전도하는 사람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1.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겔3:18절을 보면 “네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해서 그들이 멸망하면 그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 죽음에 대한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내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내 친구가 어떤 병으로 죽어갈 때, 내가 그 치료법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그 치료법을 알려 주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치료법을 알면서도 숨기거나, 무관심하고 게을러서 치료법을 알려주지 않으므로 인하여,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죽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무서운 범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엄청난 영원한 생명과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을 내 이웃, 내 친구, 내 가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닌 사람들 가운데, 예수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예수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인 것인지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긴급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인간적인 행복이나 육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이 복음이 나를 통해 불신자들에게 전해진다는 이 사실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요, 감격적인 일이요, 참으로 위대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복음전도는 천국에 가서는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서 찬송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이 땅에서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구원해 내는 일은, 오직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땅에 살아 있을지라도, 내가 복음을 전해 줄 사람이 죽으면 끝나버리는 사명입니다.
따라서 오늘 만약 내가 기회를 놓친다면, 영원히 그 사람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긴박하고 중요한 일입니까?

“성령님 갈급합니다”라는 책에서 셀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랄프 네이버 목사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간호사였는데, 그 아내를 통해 종교에는 관심이 없는 한 의사를 친구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랄프 목사는 “이 사람을 어떻게 주님께 인도할까?”를 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랄프 목사는 “성경책을 한 권 구입해서 생일날 주면서 성경공부를 함께 하자고 해야지”생각하고, 구입한 성경책을 자기 책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느 날 그 의사와 야구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랄프 목사의 마음에 성령(성령의 소욕)께서 “그 의사에게 영생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육체의 소욕)은 “아직 야구이야기가 안 끝났으니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랄프는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를 위해 영국에 갔다 3주 후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여보 왜 우는 거야”
“그 의사가 죽었어요”
“아직 나이가 어린데. 어쩌다가?”
그가 수상스키를 타러 갔다가 떨어졌는데, 다른 보트가 그 사람을 위를 지나가서 몸이 잘라져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랄프 목사의 책장에는 성경책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 의사의 장례를 랄프 목사가 집례하게 되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그 의사의 집에 가서 그의 부인을 만났는데, 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랄프 목사님, 제 남편은 당신을 존경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과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어요”
이 말을 들은 랄프 목사는 그날 밤 성령께서 “내가 이미 그 의사의 마음을 준비시켜 놓았으니 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에게 영생에 대하여 말하지 못했던 이 사건을 자신의 생애동안 가장 후회되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였습니다.


3.그 사명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복음전도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따라서 내 이웃이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명보다 서둘러 감당해야 할 어떤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고 나면 이 사명을 수행할 시간 하루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을 살고 나면 일년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는 더 이상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복음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돌아오도록 도왔다면, 우리는 그와 더불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일에 내 삶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 삶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나는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다. 비전을 따라 살자”라고 몸부림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로 인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세계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그리고 이 얼마나 위대한 기쁨입니까?
죠지 스위팅 박사는 “한 사람이 이 땅에 1천년을 살면서 한 사람을 전도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글래스고우의 유명한 설교가 존 하퍼 목사가 무디 기념교회 초청으로 타이타익호를 승선하고 미국을 향해 가던 중 배가 빙산과 충돌해 파선하고 말았습니다.
바닷물에 떨어진 하퍼 목사는 구명대 없이 헤엄치던 중, 다른 쪽에서 널빤지 조각을 붙잡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 젊은이를 발견했습니다.
하퍼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젊은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자 그 젊은이는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파도가 치는 바람에 하퍼는 힘에 겨워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떠올랐습니다.
몇 분 후 다시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하퍼는 그 청년을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습니까?”
“아니오. 아직 안했습니다”
이때 다시 큰 파도가 와서 하퍼 목사를 삼켰고, 젊은이는 구조대에 의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얼마 후 그 젊은이는 뉴욕에서 열린 기독청년집회에 참석하여 “여러분, 저는 존 하퍼 목사에 의해 마지막으로 전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외치던 그 말이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라고 울면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퍼 목사는 죽었지만 그를 통해 복음을 전해들은 청년은 살아 남아 하퍼 목사를 이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어 없어진 후에도 남을 수 있는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 어떤 고난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러분, 이 얼마나 역설적인 말입니까?
이 짧은 구절의 말씀은 함축적이면서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구절입니다.

여기 바울이 자신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불충분하다거나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에 완전하고도 충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남은 고난이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이 고난의 사실을 증거하는 복음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모든 성도들은 이 사실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예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고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하면서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의 가장 큰 기쁨은 주님의 위대한 명령을 감당하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에 비유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날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발 밑에 엎드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 당신을 위해 내가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네 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네 가족을 구원하라. 네 이웃을 살려라”는 주님의 음성에 “예 주님, 그 명령을 감당하는 길이라면 어떤 대가라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내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여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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