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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왕하 4:8-13, 왕하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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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많이 불렀던 동요 중에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를 '새 나라'로 표현한 것은 8.15광복을 맞이한 후에 조국을 도로 찾게 된 기쁨과 나라 발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서 우리 어린이들을 나라의 미래 일꾼으로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노래가 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의 속국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된 이 '새 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어린이들 모두가 '근면'하고 '협동'하며 '정직'하고 '화목'하며 또한 '건강'하게 자라나야 하겠다는 바람이 이 노래 5절까지의 가사 구구절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국권과 국토를 되찾고 국민으로서 출발하게 된, 우리에게 있어서는 '출애굽'과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8월 15일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8.15광복 후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의 탄압과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던 나라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새 나라'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된 아주 의미 깊은 날, 실제로 우리나라의 '건국일'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지난 8월 15일은 광복 62주년이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59년 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런 뜻 깊고도 감격적인 날을 다시금 기리면서, 우리가 받은 '새 나라' 대한민국이 정말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꼭 지켜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통하여 누리게 된 안보와 자유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애국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4장 8절부터 13절에 기록하기를 "8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11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12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수넴의 어느 "귀한 여인" 즉 귀부인이 엘리사 선지자가 자주 자기 동네를 거쳐서 다니는 것을 보고서는 그를 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엘리사가 자기 집에 들르게 될 때 좀 더 편안하게 모시고 싶어서, 아예 방 한 칸을 따로 짓고 그 방에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 등 기본적인 가구까지 마련해놓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역시 그런 정성에 보답하여 자기도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생각이 자연히 들게 되어서 그녀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수넴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조 이스라엘에서 그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바로 앞 장에서 나오는 사건에서 북조 이스라엘이 모압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예언을 해줌으로써 자연히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대답이 참 의외였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에게나 참모총장에게 어떤 청탁을 할 수 있는 연줄이 생겼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사회에서라도 그런 기회를 얻게 되면 누구나 다 얼싸 좋다 하고 덤벼들 터인데, 그 수넴 여인은 그 어떤 소원이든지 성취될 수 있는 그 절호의 기회를 사양하면서 그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이 이스라엘의 백성 가운데서 평안히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합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북조 이스라엘이 그 수넴 여인에게 만족할 수 있는, 공의롭고도 안정된 사회를 제공해주고 있었음을 보여 주며 그런 까닭에 그녀에게는 그 어떤 특혜 따위가 전혀 필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조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람이었는데, 그는 아합 왕의 아들로서 영적으로는 여전히 타락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의 재위 초기에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는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가 된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기본적인 안녕과 보호를 받고 있었고, 그저 자신이 노력만 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며, 바로 그런 까닭에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는 이 생활로 충분합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8.15광복을 더욱 값있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에게 그런 삶을 보장해 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후에 수립되었던 당시의 신흥국가 대부분이 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빠져 들어가던 시절에 유독 우리나라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하게 되었던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나라 전체가 소련의 지배를 받고 공산주의 통일국가로 시작되었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2천만이 아니라 7천만 명 전 민족이 지금의 북한과 같은 거지꼴로 살고 있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저나 여러분이나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조차 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남북이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이라도 있으니 저 북한의 동포들 역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라도 남아 있게 된 것이지, 만약 한반도 전체가 공산정권 아래 들어가게 되었더라면 독재정치 하나는 다른 그 어느 공산국가보다 더 잘 해 낸 김일성, 김정일의 손아귀로부터 그 누가 우리를 구원해 줄 가망성이라도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비록 임기 말년에 장기집권 독재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기는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이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국해 놓은 것은 정말 훌륭하고도 고맙기 짝이 없는 공헌인 것입니다.

  저는 또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내년부터 제헌절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1948년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된 날로서, 우리나라가 이제는 왕권 통치의 조선이 아니라 엄연한 법치국가로 출발하기 시작한 날로서, 건국일로서의 8월 15일과 맞먹을 만큼 뜻 깊고도 중요한 날입니다.
  물론 '주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휴일이 너무 많아진 까닭에 법정 공휴일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절기 중에 왜 꼭 제헌절을 없애야 합니까?

  우리나라의 대통령 취임선서문의 제일 첫 마디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말로서 시작됩니다.
  지금의 우리 대통령 각하께서도 분명히 그 선서를 하고 취임하셨을 텐데 어이없게도 '그놈의 헌법'이라고 스스로 법을 비하시키는 발언을 하신 분입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런 대통령이 수반이 되어 있는 정부가 하필이면 제헌절을 평가절하시키고 있으니, 이게 그저 우연의 일치로만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저라면 차라리 개천절은 정말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10월 3일을 우리나라의 '건국일'처럼 지키고 있지만, 사실 이 날에 대한 근거라는 것은 순전히 신화와 미신에만 있지 않습니까?
  정말 이 날에 '하늘이 열려서' 환웅이 이 세상에 내려왔다거나, 곰이 마늘과 쑥만 먹고 '웅녀'로 변해서 그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이 태어나서 이 나라를 건국했다는 말을 믿는 사람 있습니까?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재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국가'가 시작된 날을 건국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적인 날, 비록 같은 민족의 나라라 할지라도 이제는 잊고 싶은 왕조 시대가 아니라 근대적 국가를 이룩한 날을 자기 나라의 건국일로 삼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도 공감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나라가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것은 왕권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도 아니고 일제의 식민지도 아니고 공산독재정권의 나라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누릴 자유와 생존권을 보장해 주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마음껏 지식과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며 신앙과 종교의 자유까지 지켜 주는 것은, 결코 단군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한민족'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기독신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애국'하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애족(愛族)'도 해야 되지만 그 '애족'이 오늘날에 와서는 이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부정하고 북한공산정권을 인정하게 하는 '민족주의'라는 꼬임수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5천 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년 어간에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들뿐이었지 않습니까?
  이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안보와 보장해 주는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그 누구보다도 이 '새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정부는 그 주어진 공권력으로써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과 인권을 보호해 주는 '애민(愛民)정치'를 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8장 1절부터 6절에 기록하기를 "1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년 동안 임하리라 2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년을 우거하다가 3칠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5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 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6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제의를 받고도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아무 요청도 하지 않았던 그 수넴 여인은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1절에 나온 대로 북조 이스라엘이 7년 동안의 기근을 맞이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그녀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심으로써 온 가족들과 함께 블레셋 땅으로 피난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7년이 끝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수넴 여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땅이 주인 없이 버려졌을 경우에 누구든지 그 땅에서 3년 정도 거주하거나 경작하면 그 사람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수넴 여인은 이미 7년이나 떠나 있었던 땅에 대하여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어려워졌었고, 그래서 그녀는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직접 상소를 하려고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수넴 여인을 위하여 실로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어서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그 수넴 여인이 왕을 찾아왔을 때 마침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더욱 절묘한 것은 5절에 기록된 대로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일들은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은 당장 그녀의 집과 전토 회복을 위하여 모든 필요한 조처를 취하도록 아예 전담 관리까지 임명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 수넴 여인의 부재중에 그 밭에서 나왔던 소출까지도 다 계산해서 돌려주도록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람 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7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었다 해도 그 수넴 여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나라의 백성이었습니다.
  또한 그녀가 호소한 내용도 무슨 특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원래 그녀의 소유였던 것을 돌려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그래서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공권력을 정의롭게 사용하여 이스라엘 여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게 해 준 것이었습니다.

  자국민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은 군주국가이든지 민주국가이든지 간에 위정자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책임입니다.
  바로 그 책임을 틀림없이 잘 이행하라고 대통령과 행정부에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권력이란 다른 대선후보 경쟁자를 이긴 덕분에 얻게 된 상이 아니며 민주화투쟁 경력에 대한 보상도 아닙니다.
  그것 역시 대통령의 취임선서문에 나오듯이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이라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국민'이란 '북한의 김정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며 '노사모'뿐이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국민'임에 그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2005년 10월 17일 국내 일간지에 이런 호소문이 실렸습니다.
  "김정일 위원장님께. 저는 1987년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 씨의 딸 최우영입니다. 이 편지가 위원장님께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사회를 믿고 언제까지 죽어가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 같아 위원장님께 간청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시작되는 글이었습니다.
  서두에 보시다시피, 이 호소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북한의 김정일 앞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왜 대한민국 국민인 한 딸이 북한에 납치된 대한민국 국민인 자기 아버지의 송환을 위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북한의 독재자에게 이런 편지를 쓰기까지 되었겠습니까?

  최우영 씨는 물론 처음에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호소하고 탄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자로서 노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을 비롯하여, 정부의 무심한 반응에 혼자 속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정부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 돌려보낸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녀의 호소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 북송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저는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년이 넘도록 비전향 장기수 소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 내 인권단체와의 연대성, 자국민 보호를 남북한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정일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최우영 씨가 이런 호소문을 김정일 앞으로 보낼 당시 현 정부는 강정구 교수를 살리겠다고 손발 벗고 나서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자국민이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없어서 자기 아버지를 납치한 나라의 독재자에게 탄원을 해야 할 정도인데도 그런 소리에는 일언반구도 없고, 오히려 대놓고 6.25를 북한이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치켜세우고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면서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고 소리치는 사람을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까지 친히 나서서 감싸주는 것 - 이것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위한 정치입니까?

  탈북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994년 2월에 중국으로 탈북했던 박영세 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중문과 2학년에 재학 중에 있다가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든 부모와 함께 1964년 5월에 스스로 '월북'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김일성 면담도 하게 되었고 김일성 대학에 편입하여 졸업한 후에 평양의 중앙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의 출신성분이 문제가 되어 함경북도 남포의 탄광 말단직에서 막장 탄부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월북 30년 후에 탈북하여 일단 중국 연길까지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어떤 한국인 기업인의 집에까지 들어가서 도움을 받게 되었었습니다.
  그 집에서 그는 "고등어는 25년 만에, 김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먹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웃의 중국 사람들의 신고 때문에 중국 공안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어 용정 간수소에 갇혀서 북송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스스로 혀를 깨물고 자살했습니다.

  그 박영세 씨는 북한에 아내와 1남2녀의 자식들까지 있었지만 이들을 두고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굶주림과 처형만이 유일한 통치 수단이 되어 있는 북한과 같은 나라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남한에 가서 알려 주어야 할 책임을 배운 사람으로서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그를 도우려 했던 기업인이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박영세 씨는 아무리 30년 동안 조국을 떠나 있었다 해도 마땅히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 정부로부터 구출해 내었어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비록 북한공민증을 가진 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우리나라로 탈출해 오고 싶어 하는 모든 탈북자들을 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처럼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군포로들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6.25전쟁 막바지였던 1953년 7월 강원도 제암산 전투에서 북한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전용일 씨는 지난 2003년 6월에 탈북하여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 그의 신분을 확인하느라고 지체하는 사이에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되어 하마터면 다시 북송될 뻔했다가 우리 정부가 뒤늦게 중국과 막후교섭을 벌여서 억류 41일 만에 다행히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입국 당시 72세가 된 전용일 씨는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자들 앞에서 단 한 마디, "지난 50년 간은 한국을 위해 복무한 시절이었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어디 그처럼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국군포로만 그렇겠습니까?
  지금도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여전히 북한에 불법적으로 억류되어 있는 모든 국군포로들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일 뿐 아니라, 그 대한민국을 위해서 전 생명을 몽땅 희생시키고 있는,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평안히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대한민국 정부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대한민국의 영웅'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의 영해를 지키려던 군인들이 총격을 당해 죽어도 북한에 항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유가족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끝내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버리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서, 을지훈련은 규모를 줄이느니 연기하느니 하고, 우리 대한민국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서해북방한계선(NLL) 재설정을 고려하겠다느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면서 왜 억류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서는 한 마디 소리도 못하고 오히려 대한민국 영토까지 제 마음대로 양보해 주겠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 정도는 오히려 약과입니다.
  얼마 전에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서해교전을 두고 "안보를 어떻게 지키느냐 그 방법론에 있어서 우리가 한 번 더 반성해 볼 과제다."라는 기가 막힐 발언을 했습니다.
  북한군이 먼저 침범하고 먼저 사격해서 일어난 도발을 두고 항의하기는커녕 우리 쪽에서 '반성할' 것이 있다니요?
  이것이 정말 대한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입니까, 아니면 김정일 밑에 있는 사람 쪽에서 나온 소리입니까?
  그러니 이런 나라에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고, 그 대신에 인터넷에 보면 온통 "기회만 오면 이런 지긋지긋한 나라 하루 빨리 떠나고 싶다."는 글들이 점점 더 많이 뜰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얼마나 '좋은 백성'이며 '좋은 국민'입니까?
  일본이 차관을 제공하여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휘어잡으려 했을 때, 이 나라 백성들은 자기 손의 금반지들을 뽑아서 '국채보상운동'을 했었습니다.
  6.25전쟁 때 '서울은 끝까지 사수한다.'라고 시민들을 속여 놓고서 정부 요인들만 도망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자기 피로 지켜낸 것이 바로 이 나라 국민들이었습니다.
  정부가 실패하여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 놓을 때마다 백성들이 다시 살려내었던 것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를 끝내 이겨내고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으며, 그 이후의 연이은 경제정책 실패로 인하여 최근 5년 사이에 몇 계단 뒤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계은행이 집계한 경제규모 순위를 보면 183개국 가운데 13위 정도를 지켜내고 있는 것도, 저는 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워낙 '좋은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정말 '애민'하는 정치가들만 좀 나타나면 우리나라는 진짜로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실로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고 국민을 아끼면서 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재산과 인권 보호를 위하여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정말 '좋은 나라'로 만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일제 강점기 때에 시인 이상화 씨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조국 광복의 봄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노래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여러분은 그 '봄'을 이미 맞이했고 완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바로 1945년 8월 15일의 해방과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우리에게 이 '봄'이 오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때문에 우리는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는 행복한 '봄날'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봄'을 전혀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백성'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2천만 동포들입니다.
  북한 공산정권은 자국민의 생명, 재산, 인권 중 그 어느 것도 보호는커녕 인정부터 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와 인민의 생명까지도 다 김정일의 것이요, 그래서 받는 것이 있으면 다 김정일이 하사해 주시는 것이며 큰절하고 감사하면서 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북한 인민의 실상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애족'은 이처럼 자기네 국가로부터 국민으로서의 기본권 보호는커녕 아예 사람으로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저 불쌍한 2천만 동포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는 이 나라는 이 8월 15일이라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 보았던 우리 부모님들이 이 날을 맞이하는 심정을 꼭 좀 이해하고 공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기독신자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새 나라'에 살게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애국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국가를 맡은 위정자들이 그 공권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하면서, 바로 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로써 저 북한의 동포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 역시 이런 '좋은 나라'에 살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60여 년 전에 우리에게 이런 '새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민족 전체에게 이런 '좋은 나라'의 축복을 반드시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더욱 애국하고 애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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