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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 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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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고린도후서7:8~10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찬송가 474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찬송 가사도 있지만 우리 인생길에는 참 근심이 많습니다. 그 ‘근심’이라는 놈은 염려라는 누이가 있고 걱정이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이 세 놈은 같은 패거리입니다. 이놈들은 우리들이 누리는 행복을 빼앗아 가는 놈들입니다. 그 놈들이 계속 우리 속에 머물면 ‘불신앙’이라는 것과 ‘질병’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고 결국은 우리를 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탄 원수 마귀라는 놈은 우리에게 늘 이 삼남매를 우리 속에 심어 놓습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걱정도 팔자’ 하면서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별것 아닌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막상 닥치지도 않은 문제인데 저 멀리 있는 것을 끌어다 앞에 두고 이 삼남매와 함께 청승을 떨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 근심, 걱정, 염려를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가 전혀 근심 염려 걱정 없이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근심, 걱정, 염려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근심 하나 만을 이야기 한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식적인 근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근심입니다.
이 육적인 근심은 세상 근심을 말하는 것이고 영적인 근심은 하나님의 뜻때로 하는 근심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적인 근심에 대하여 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영적인 근심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니 하나님도 근심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창6장 6절에는 하나님도 근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인 동성 동격적 표현이지만 어떻튼 하나님도 근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세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호되게 책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근심을 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요즘말로 말하면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교회 안에 온갖 문제가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근친 상간문제, 소송문제, 혼인문제, 우상제물 문제, 은사 문제 등등 골치 아픈 문제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아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적어 보내면서 심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심지어 고전 16:22절에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큰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크게 후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근심케 한 책망이 전화위복이 되어 교린도 교회가 회개를 하고 바르게 서게 된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근심이라는 것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세상 근심이 있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적인 근심, 세상 근심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어떤 것을 말하며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 세상 근심이란 무엇일까?

세상 근심이란 육신의 근심을 말하는데 이 근심은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사망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먼저 세상 근심이란 무엇이며 이 근심은 왜 우리로 사망을 이루게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봐야 합니다.

A. 세상 근심을 가져다주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많지만 몇 가지만 살펴봅니다.

1)죽음에 대한 근심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가족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근심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예외없이 다 근심 걱정하고 심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사람이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근심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오직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서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참으로 믿는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설피 믿는 사람과 가짜로 믿는 사람은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바들바들 떨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니엘 같은 이, 그리고 바울 같은 이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2)질병 근심입니다.
질병은 사람에게 고통뿐 아니라 슬픔과 근심을 주며 생의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그 누구도 질병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현대인이 최고로 무서워하는 질병은 암과 뇌출혈입니다. 특히 암 병은 우리 믿음의 테스트하는 인류 최고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암은 하나님의 초대장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암은 하나님의 초대장이다. 그러기에 암병에 걸리거든 죽을쌍하지 마세요. 할렐루야 하세요.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거든 여러분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 이름 다 적어서 하루에 한명씩 소환하세요. 보고 싶다고.. 그러면 다옵니다. 그때 간곡하게 전도하세요. 나는 이제 암에 걸려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았다. 나는 예수 믿고 천국 가는데 너도 예수 믿어야 해! 그러니 내가 믿는 예수 꼭 믿으라 하고 전도하시고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해주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죽어 장례 치를 때 여러분 영정 앞에서 울면서 약속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 부탁대로 교회 나가겠소. 천국에서 만납시다. 할렐루야 아멘?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질병으로 그의 생애를 망치지 않습니다. 질병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질병으로 그의 인생이 동요되지 않는 것입니다.

3)자녀 근심입니다.
잠언17:25절에서 이르시기를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식 문제로 근심해 보지 않은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아마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그 부모들의 마음에 기쁨과 기대를 주는 사랑스런 대상이 되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커지고 나이가 들면 자식으로 말미암는 근심이 하루도 그칠 날이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자식이라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내 자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자녀 되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4)환난과 재난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환난과 재난이 닥칩니다. 어느 날 갑자가 홍수가 나서 힘쓰고 애써 세워놓은 농산물이 다 떠내려갑니다. 죽으라고 가르치고 길렀던 아들이 사고로 죽습니다. 밤 잠 안자고 일구어 놓은 사업이 다른 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부도가 납니다. 이런 종류 이외에도 각가지 말못할 재난도 닥칩니다. 그래서 인생 가도를 성공적으로 잘 달려가던 사람이라도 어느 샌가 실패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런 불행한 일이 밀어닥쳐 행복했던 우리네들 가정이 큰 소용돌이 속에 잠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어느 누가 근심하지 않을 자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때에도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손안에서이루어지고 그러기에 지금 당장은 내가 엄청난 고통을 겪으나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 보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환난과 재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B. 세상 근심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1)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 갑니다.
근심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생애에 넘치는 활기는 간 곳 없습니다. 웃음도 옛 얘기요 수심에 찬 얼굴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참담한 것입니다. 아무리 웃으려 해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2)뼈를 마르게 합니다.
잠17:22절을 보세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근심은 마음의 고통이 극심한 상태를 말합니다.
근심에 빠져서 의욕을 상실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세요. 그 사람은 얼마 못가 병상에 눕게 됩니다. 왜요? 근심이 뼈를 바르게 합니다. 결국 뼈가 마르면 여러 종류의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화병도 걸리고 관절염도 걸리고 소화기 장애 혈관장애등 각종 질병이 심령에 근심 걱정 많은 사람에게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근심을 없애야 합니다.


C. 어떻게 물리쳐야 할까요?

이런 근심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이겨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1)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평안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근심에 잠긴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이 아닙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평안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그 어떤 근심도, 어떤 환난도,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있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이 여러분 속에 임하시면 근심걱정 염려는 떠나갈줄 믿습니다.

2)모든 근심을 주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맡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자기에게 맡기면 당신이 해결사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권고하신다는 말은 돌보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맡겨 버리시길 축원합니다. 질병도 맡기세요. 자녀 문제도 맡기세요. 옆에 사람에게 말하세요. “주님께 맡겨 버립시다.” 아멘!

3)주님의 자세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를 우리 눈으로 보면 골치아프고 근심 걱정거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각으로 보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만 문제를 볼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마11:28~30절을 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배우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뭘까요? 주님의 자세를 가지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되고 그러면 그 문제가 고통과 근심꺼리가 아니라 축복과 기쁨꺼리인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시각에서 보면 환난이고 재난이지만 하나님 시각에서 보면 기회요 축복일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근심에서는 벗어 나와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선의의 근심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아셔야 합니다. 이 근심을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근심이 육신적인 근심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적 근심을 의미합니다.
세상 근심이 우리에게 사망을 주는 것이라면 이 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생명을 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을 이루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생명에 활기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A.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부끄러운 신앙을 근심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왜 이만한 믿음밖에 없는 것일까? 이같은 신앙생활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 것일까? 내가 이렇게 믿어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근심은 우리 성도가 해야 하는 근심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늘 제자리에 머물러 앉은뱅이 같은 신앙생활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으로 근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런 근심이 전혀 없다면 그의 신앙이 성장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크게 근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2)주일성수 못하는 일에 대해 근심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성도들 중에 주일 성수 개념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가 주일예배를 여가 생활로 여깁니다. 시간되면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삶이 취미생활처럼 여겨지면 큰일 납니다. 회사는 죽어도 안 빠지면서 주일을 빼먹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주일성수에 대해 근심해 본 일이 있는 것입니까?
왜 나는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생활을 못하는 것일까? 성수주일을 못하는 일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까? 만약 우리에게 이같은 근심이 없다면 주일을 지키는 일에 평생 실패할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에서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 것입니까?

3)순종치 못하는 생활을 근심해야 합니다.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치 못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생깁니다.
순종을 못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순종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음에 큰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순종하는 일에 깊이 회개하고 순종의 생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4)믿음이 연약하여 짓는 죄를 근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연약하여 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 대하여 마음으로 깊이 뉘우치는 마음과 함께 큰 근심에 쌓이는 것입니다.
왜 나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지는 것일까?
왜 나는 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처럼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술, 담배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크게 근심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핑계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이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나가지 못할 때 이같은 근심이 끊임없이 일어나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일은 내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 내 마음속에 큰 불안을 심어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B.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1)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써 회개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저절로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학생이 되고나서 경험한 근심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새벽기도에 빠지면 '어쩌지, 이렇게 예수를 믿고 주의 종이 된다는 사람이 이래가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까? 근심이 태산 같았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한분이 출석을 부르면 네라고 대답하면 안됩니다. 한주간 동안 읽은 성경 장수를 대답해야 합니다. 최일환! 그러면 21장 그래야 넘어 갑니다. 14장 그러면 잡은 하루 세까 다쳐먹었냐? 묻습니다. 그래서 그 강의 사간 전에는 쉬는 시간에 열심이 성경 봅니다.
한번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성경을 못읽어 대답을 제대로 안하면 출석으로 체크를 안 해줍니다. 그러기에 엉겁결에 14장하고 대답은 했는데 사실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 거짓말을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요? 그래서 그 다음 주에는 그때 못 읽은 장수까지 채워서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거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을 때,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감동으로 이런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도 그 잘못된 일에 대한 근심이 없을 때 그 사람은 전혀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마음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마다 이 근심이 우리의 마음에 슬픔을 주고 안타까운 마음을 주며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마음을 주므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2)우리로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만듭니다.
우리들 가정에 갑자기 예기치 아니했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이 일은 내가 지난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생활을 해 왔더니 하나님께서 나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구나, 마음에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근심은 곧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연장되어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게 되며 순종하는 생활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했습니다. 곤고한 날에 뭘 하라구요? 생각하라! 이 말은 뭐 하라는 말입니까?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려 맞어, 내가 지난주 그 짓을 하더니 맞을 줄 알았어”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생활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단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나 자녀들의 몸에 예상치 아니한 병이 생겼습니까? 어쩌다가 감기가 걸렸거니 우연한 일로 넘기지 말고 자신의 신앙생활과 결부시키는 생활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할 수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3)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반드시 회개라고 하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같은 근심을 통해서 우리로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새힘을 주십니다. 회개하면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새롭게 됩니다. 할렐루야!


3.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할 수 있는 것인가? 

1)성령이 그 마음에 내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욱 분명히 말씀드린다면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그 사람의 신앙적인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식적으로 자꾸 거역하는 생활을 할 때, 성령이 주시는 근심을 고의적으로 소멸해 버리게 되며, 그런 사람의 마음은 점점 굳어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영영 생겨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사람은 함부로 죄를 못 짓습니다. 또 하나님이 두려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나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다고 하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그사람은 영적 근심을 하게 되고 결국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아버지가 두려워야 합니다. 두려워야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근심에 젖어서 매일매일 세상일에 허덕이며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늘 마음을 아파하고 마음에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다준다고 하셨습니다. 질병과 실패와 파멸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생긴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소망이 있으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근심으로 회개하는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무쪼록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일 듯 일어나 회개의 열매를 맺으므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결실로 축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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