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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림(창 16:1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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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6: 15-17:8
제목: 기다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앟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육 세이었더라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선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다리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린다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예전에 제 첫애를 낳을때 보니까 저녁에 들어갔는데 한밤이 되어도 애가 나올생각을 안하는겁니다....진통이 오면 당장 나올거 같았는데...나올려다가 또 들어가고..또 나올려다가 들어가고 이렇게 8시간인가를 씨름하니까 애가 나오더라구요...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전 그때 밖에서 기다렸는데.. 하도 안나오니까 그 불편한 병원의자에서 꾸벅꾸벅 졸았더랬습니다....나오는것은 확실한데..빨리 안나오니까 힘든겁니다...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렇지 않습니까?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은 있는데 그게 될듯 될듯 하면서도 안됩니다...시간은 계속가고 있지 나를 보니까 아무것도 된게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 조바심이 생기고 그리고 이것이 더 심해지다보면 결국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세상길이나 내 방식대로 살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우리 인생에 이러한 상황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것만은 마음에 꼭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것은 아는데 과연 언제 그 약속이 이루어지느냐하는것입니다. 그 때를 알면 좋겠는데 그 때를 모르는겁니다. 이게 힘든겁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시지만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을 오래 걸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어린 다윗을 선택해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재로 다윗이 왕이 된것은 거의 13년이 지난뒤였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이미 어린시절에 장차 되어질일에 대해서 알았지만 실재로 그 꿈이 이루어진것은 애굽의 노예로 끌려간지 17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굽 궁궐에서 바로 왕 공주의 양아들로 자란 모세는 40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일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지만, 실제로 출애굽의 영도자로 부름 받은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도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무려 25년 후에서야 아들을 주신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이 이런 사례들을 성경에서 읽을때 보면 이건 남의 이야기니까...그리고 이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니까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옛날이야기도 아닙니다. 충분히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성경을 읽는다거나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이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주실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때 어떻습니까? 저도 성경말씀을 읽을때나 다른 목사님 설교를 들을때 말씀이 깨달아지면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던일을 멈추고 책상앞에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땐 너무나 행복하고 기쁩니다. 그런데요 그게 그때뿐이에요...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든게 다 그래로입니다. 변한게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고난이 있고 ...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고 ... 이런 시간이 오래 흘러가다 보면 자칫 신앙에 회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거 맞아?” “하나님이 정말 전지전능하신 거 맞아?” “하나님이 약속한 건 다 이뤄진다는 거 맞아?”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거 맞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이런 신앙의 회의에 빠진 적이 없습니까? 없으면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면서 크냐 작으냐의 차이만 있지 다 이런 신앙적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건 잘못된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격는 통과의례와 같은 겁니다. 이런것들을 겪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도 자라도 신앙적으로도 더 성숙해지는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중에 “로마는 하루아침에 되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만사가 다 그런겁니다. 냄비처럼 갑자기 뜨거워진것은 또 금방 식어버려요...그러나 뚝배기는 달궈지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식는것도 그만큼 느린법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루아침에 온 우주를 만드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천히...하나 하나씩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 인생에 역사하실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천히 이루어가십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미련한 마음에 하루아침에 물 붓듯이 축복해 주시면 얼마나 신나고 좋을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게 위험한겁니다. 갑자기 잘 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듣고 보잖아요. 갑자기 로또 복권 수십억 원 당첨되어서 돈 벼락 맞은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봤습니까? 미국의 예인데요..한 방송국에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당첨금을 받은 후에 어떻게 사나 알아봤더니 이게 충격적이었습니다. 20명을 조사해봤는데 이중에서 15명이 이혼을 했고, 3명이 마약과 알콜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폐인이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의 둘은 있던 것을 다 날리고 예전보다 더 어렵게 살더라는것입니다. 여러분! 빠른게 좋은게 아닙니다. 아무리 빠르면 뭐해요..무너지면 소용없는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우리가 할만하면 주시는겁니다. 왜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나에게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보시기 위해서 잠시 유보시키는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방법을 잘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없는 가장 좋은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는 175년이었습니다.(창25:7)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때는 75세(창12:4)였고, 아들 이삭을 낳은 때는 100세(창21:5)였을 때입니다. 이 나이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86세, 99세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시던 75세 때 어떤 약속 주셨습니까? 창12:2~3 보면 세 가지 약속이 나옵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고, 이름을 창대케 하여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시고, 복이 흘러넘쳐 남에게 나눠주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신다는 약속들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약속들이 성취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첫 단추는 무엇보다 떡 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를 주시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75세 노인이요, 그 아내 사래도 65세이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해 주시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신이 납니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하나도, 아니 그 첫걸음인 아들 하나 낳는 것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아브라함도 당장 뭔가 될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몇 년이 흐른 후 답답해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넌지시 떠봅니다. 혹시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혹은 취소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닌지 ... 창15:2~3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양자를 들이는 방법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후사를 잇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를 이끌고 밖에 나가셔서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줍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처럼 많은 자손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마음을 다져 먹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립니다. 세월이 또 흐르고 10년째가 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이번엔 아예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부부지간에 의논합니다. 당시 자식을 낳지 못하던 여인들은 죄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에 사래가 마음에 큰 짐을 안고 있었는지 남편에게 여종 하갈을 취할 것은 권유합니다.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 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 ” 이것은 불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 시대에는 일부다처인 줄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일처는 시대를 초월해서 지켜야 할 창조 원리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사래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믿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수단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하갈이 아이를 잉태하자 오만방자해져서 여주인 사래를 괄시합니다. 이쯤 되니까 사래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아브라함을 들들 볶고 강짜를 부립니다. 하갈을 학대합니다. 결국 가출 소동까지 일어나고 난리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1년이 지나고 하갈이 출산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6:15절~16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때 하갈이 낳은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로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의 한 번 실수로 두고두고 이스라엘과 원수요 세계를 혼란케 하는 결과가 나타난 겁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본문 17: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99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장(章)은 16장에서 17장으로 넘어가지만 사실은 단 한 절(節) 차이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13년의 갭(gap)이 있습니다. 이 기간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블랭크(blank)와 같은 시기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만나주시고 축복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정말 괴로운 시기였을 겁니다. 10년 기다리다 실수했는데, 이스마엘의 잉태 후 가정불화 속에 1년을 보내고 그 후에도 13년 동안을 근신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13년이란 긴 세월을 또 다시 기다려야 했던 아브라함!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하나님이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어떤 축복이라도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간을 질질 끄실까요? 아마 마음으로는 당장 다 주고 싶으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방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때에 주십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게 응답하십니다. 3개의 베스트입니다. (3best=The best thing+The best way+The best time)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재벌 총수가 있습니다. 그에게 외아들이 있다고 하면 자기 재산을 주고 싶을까요? 주기 싫을까요? 우문이죠. 무척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직 어립니다.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당장은 줄 수 없죠. 기다려야 합니다. 공부도 시키고 훈련도 시키고 사람 노릇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보다 하나님이 더 답답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되 보통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을 보면 아직 시원치 않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드러났잖아요? 10년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그때 믿음의 수준이 어땠습니까? 인간적인 가능성만 따져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능성이 아직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있을 때 자기들 방식으로 해보자고 작정했던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한심스러운 수준이요 함량미달입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줄 수 없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시려고 계획하시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 그것을 감당할 만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기에 때에 따라서는 이미 주신 것을 거두어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말에 ‘병주고 약주기’라는 말이 있죠. 보통은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좋은 의미로 병 주고 약 주시는 분입니다. 중병에 걸려 고생하던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도 몰라보고 예수님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믿음 주셔서 천국 영생 얻게 하시고, 이제는 병까지 고쳐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병 주고 약을 주십니다. 고난  주시고 축복 주십니다. 왜 그런가요? 축복보다 형통보다 신앙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선(先) 신앙, 후(後) 축복입니다! 신앙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변장된 저주입니다. 반대로 신앙을 연단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돈이 곧 축복이 아닙니다. 신앙 없이 ‘돈’을 얻으면 ‘독’이 됩니다. 감당할 신앙이 있을 때 돈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도저히 아브라함에게 무작정 축복해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13년의 침묵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는 그 기간 중에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면서 근신했습니다. 시련기였지만 ‘신앙의 연단기’였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난 중에 인내하고 연단을 받으면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소망’이란 말은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계획’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생을 위한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이뤄주십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런 사실을 알면 시련과 고난의 때에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강철왕 데일 카네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난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쉽게 낙심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 한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펄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배의 그림이었습니다. 마치 자기 신세를 묘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밀물은 반드시 온다!” 그는 이 말에 큰 감동을 받고 마음을 다져먹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외쳤습니다. “그래, 좋다! 밀물이 오면 나는 큰 바다에 나가리라!” 결국 하나님이 그를 믿음이 있는 부자,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원리를 기억하시고, 고난의 때에 낙심하지 말고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합당치 못한 점이 있다면 갱신되는 계기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그것을 기대하십니다.    미켈란젤로는 바위 돌을 갖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만들어내는 대단한 조각가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탄하면서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그 조각상의 형상은 처음부터 바위 돌 속에 있었소.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냈을 뿐이요 ... ”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불합당한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깎아냅니다. 세속적인 욕심, 자기 고집, 자기 편견, 잘못된 가치관, ...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을 만들고 크게 축복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대하는 신앙의 수준은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본문 17: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13년 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는 세속적인 욕심, 인간적인 판단에 빠지지 말고 온전한 신앙을 가지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그 수준에 오르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연단해 주셨습니다. 17:2절 이하를 보면 그에게 다시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시고, 이름도 바꿔 주십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람’은 ‘큰 아버지’ 혹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열국(列國)의 아버지’ 혹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아브라함이 겨우 한 가족이나 한 부족의 아비가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온 세계 인류의 아버지가 되는 모습이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되려면 온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면서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그런 신앙을 갖게 됩니다. 100세에 이삭을 얻었고, 나중에는 모리아 산에 이삭을 번제물로 자칠 정도가 됩니다. 롬4:18~19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 특별히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단에 묶어 놓고 칼로 내리치는 장면은 정말 놀랍습니다. 전혀 요동치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자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알고 담대히 바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제지하며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창22:12 “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게 온전한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하나님 절대주권신앙’이라 부릅니다. 그 후 아브라함의 후대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축복의 대로가 활짝 열립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오래도록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침묵의 13년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장이라도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신앙 때문입니다. 내 딴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했어도 아직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자라는 2%가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거칠 것이 없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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