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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본질을 간직하라! (요 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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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을 간직하라! (요 14:1-15)

시작하는 말

우리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권고가 아닌 명령으로서 불안의 시대인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크나큰 위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현대의 가장 큰 병은 쓸데없이 걱정하는 “근심”입니다. 이 근심은 불안함과 두려움, 초조함을 유발시킵니다.

만약 성도가 이러한 근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신앙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근심이나 걱정을 인간의 힘으로 물리치고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무엇이 더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벤스 해브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걱정과 근심은 인류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은 그의 모든 혁신에도 불구하고 걱정이라 불리는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월터 래라이 경이 엄청난 빚 때문에 시달리고 있을 때, 어느 날 그의 의사가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월터 경, 걱정을 그만두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는 슬픈 얼굴로 그의 의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빚이 있는 한 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걱정 때문에 나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걱정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요리사가 주전자 속에서 끓고 있는 물을 향해 끓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에 근심합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많은 일을 하게 되고, 또한 문젯거리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또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자연히 거기에 대한 부담, 즉 근심이 생깁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만약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것은 근심과 걱정거리가 아니라 보람과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즉 근심은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과 만날 때 생깁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공연히 거기에 대하여 무가치하게 근심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할 때 생깁니다. 현대를 혼돈의 시대라 합니다. 내일 일은 고사하고 바로 몇 시간 후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대입니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변하는 이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 불허의 현대 사조 역시 인간의 마음을 몹시 근심케 하는 요인이 됩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명제)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를 현대인에게 적용시키면 “나는 근심하므로 존재한다.”가 될 것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근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현대인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늘 근심의 보따리를 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내일 일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혼란스럽지 않은 오늘을 만드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4)고 말합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삶의 시간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한 쪽은 포기하고 한쪽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근심이 생깁니다. 가령 내가 선택한 그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나는 내가 선택한 그 무엇으로 인해 근심하게 됩니다.

마 19:20에 보면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이냐,  재물이냐”의 선택에서 재물을 선택하므로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즉 참다운 선택을 하지 못했기에 근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냐, 세상이냐”에서 “예수”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근심이지만 예수는 평안입니다. 이 참다운 선택은 영원한 평안을 보장합니다. 믿음으로 만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2.믿음은 근심을 해결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금심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을 때 근심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안과 안식의 본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신뢰할 때 없어집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명령은 순종해야 하며 지켜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이 말씀은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 할수록 우리들의 마음속의 근심은 사라집니다. 말씀을 굳게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의 인생을 평안과 안식으로 영원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3.믿음은 하나님을 찾아 갑니다.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요14:5)라는 질문에 우리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6절). 우리 주님 자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Navigation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도를 행하는 것이 참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놀랍게도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은 멀리 있거나 우리가 찾기 힘든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도마 앞에 계신 예수, 우리 앞에 계신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참된 길을 걷기 원하신다면 예수께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에게로 가십시오. 다른 염려가 필요 없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똑바로 걷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설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자나 석가모니처럼 “진리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진리이셨습니다(요1:18). 그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신 진리 자체이십니다(요 1:18). 진리는 곧 길이 됩니다.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시 86:11)라고 하였습니다. 길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주님은 길이시며 진리 자체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생명의 길을 택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 30:19)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 길의 안내자가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십니다. 그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많은 무지한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갈 때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 자신이 영생임을 이렇게 천명하였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 12)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생의 참된 길입니다.


4.믿음은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13 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땅과 하늘이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활짝 열렸습니다(창 28:12 ; 요 1:51).

성도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곧 그 삶이 하나님의 세계와 연결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내가 예수의 영과 그 의식을 가지고 연결시키는 작업입니다. 인간의 의식, 인간의 세계의 이익으로 기도를 남용해서는 곤란합니다(요일 3:20-23).

예수의 이름, 예수의 정신, 예수의 가치관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처리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롬 8:34).
 

끝맺는 말

히브리서 11:1-2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믿음의 본질을 정의했습니다.

The Message 성경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것이며, 이 믿음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모든 것들의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되며,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핸들이 된다”고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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