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벧전 4:15~19)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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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본문 : 베드로전서 4 : 15 ~ 19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상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의 표정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사람 속에 있는 기쁨이 얼굴로 나타납니다. 영적 신비를 경험하여 마음속에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하면 우리 몸 안에서 세포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는 사랑의 혁명, 기쁨의 혁명, 감사의 혁명입니다. 젊은 남녀들이 사랑하여 예뻐지는 모습을 보면서 “너 예뻐지는걸 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구나.”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우리 몸에 있는 기쁨이 얼굴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남녀 간에 사랑을 하면 호르몬으로 도파민, 옥시토신, 엔도르핀이 나와 약 18개월~30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호르몬이 끝나면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도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성령을 통한 사랑의 호르몬은 늘 지속됩니다. 성령에 우리 마음을 열어놓으면 늘 새로워지고 성숙해집니다. 그리고 늘 새로운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성령을 통한 사랑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모습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먼저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내 얼굴 모습, 내 외모, 그리고 내가 입은 옷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보일 수 있을지 바라봅니다. 그 때 무엇보다 눈을 바라보는 것이 소중합니다. 우리 눈 속에 자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밝고 총명하면 내 영혼이 뛰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흐리고 게슴츠레하면 내 영혼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쁘고 감사한 모습이 내 눈으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불안하고 분노에 찬 모습으로 눈이 흔들리고 있는가를 우리 스스로 아침마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지닌 밝은 얼굴, 따뜻한 얼굴, 기쁜 얼굴은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얼굴이 사나워지고, 낙담하는 모습을 갖고 있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분노하게 되면 나 자신도 무너질 뿐만 아니라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도 어둡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매우 소중합니다.

  한국 갤럽이 1984년~20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서 한국인 18세 이상의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종교와 종교의식’이라는 조사를 했는데, 2004년 조사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신교인은 아주 적극적이어서 일주일에 한번이상 교회에 가는 경우가 70%가 넘었습니다. 천주교인은 40%가 넘었고, 불교인은 3.5%로 나왔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적극적이며 부지런한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인은 나이 18세~24세의 청년층, 대졸이상의 고학력층,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종교 이미지 조사에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비종교인을 대상으로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37%가 불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17%, 개신교는 12%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없다는 사람들이 30%가 넘었습니다.

개신교가 그렇게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기쁨으로 감사하며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갖는 축복된 말씀을 증거 함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한국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한국 개신교 교회의 이미지에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요?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났지만 가톨릭교회가 우리보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970년대 이후 가톨릭교회는 끊임없이 정의를 세우는 교회, 민주주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교회,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는 교회라는 이미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개신교 교회는 할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감당하며 가난한 이웃을 위해 개신교가 상당한 부분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 종교기관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봉사의 약 70%가 개신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교회는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에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미지 관리 때문에 우리가 실패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적으로 기독교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교회는 1970년~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인 급속한 성장과 함께 발전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기독교 정치인, 기독교 기업가, 기독교 교육자, 기독교 문화인 등의 달란트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세상에 비춰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인 표현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교회 너 성공했다, 너 출세했다, 너 성장 많이 했다.”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마음속으로부터 존경과 기대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대형교회들이 등장하며 대형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게 된 것도 1970년대부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는 위기와 문제를 야기 시켜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교회는 일종의 성장증후군, 또는 성공증후군(The success syndrome)에 빠졌습니다.

하버드 의대의 심리학자인 스티븐 버글래스(Steven Berglas)는 「성공증후군」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탁월한 재능을 가져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성공증후군 때문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갑작스럽게 곤두박질하면서 성공이라는 자리에서부터 실패의 자리로 내려오는 현상을 성공증후군이라고 말하면서 성공을 지탱할 기본적인 성품이 함께 뒤따르지 않으면 성공했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성공이 우리의 성품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성공이 우리의 성품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까? 그는 성공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의 네 가지 측면을 다음 네 가지 알파벳의 A에 속하는 것 중 하나 이상의 빠질 염려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 번째, 거만과 교만(Arrogance)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외로움의 고통(painful feeling of Aloneness)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파괴적인 모험추구(destructive Adventure-Seeking)에 도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간음(Adultery)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약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증후군에 빠지면, 성공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성공을 성숙의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고 이런 위험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성공 신드롬은 엄청난 값을 치루어야 한다고 지적해줍니다. 성공했을 때 거만해지고, 자기 스스로 홀로 있을 때 다른 사람과 왕따 된 느낌 때문에 아파하며, 자기 파괴적인 모험을 함부로 하게 되고,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는 위험성에 빠지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위기입니다.

성공이라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런 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집단에도 해당되기에 교회에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중세 가톨릭교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성공했을 때 오만해지고 거만해졌습니다. 세속으로부터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악을 행했고, 얼마나 많은 거짓 우상을 섬겼던 과거의 역사가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한국 교회들도 역시 비슷한 양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권력, 세상의 재력, 세상의 능력을 교회가 다 가진 것처럼 오만한 적은 없습니까? 자존감이 지나쳐서 자만심과 허영심에 들뜬 기독교와 교인을 양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주님 앞에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 겸손해지는 대신 자만심으로 뭉쳐있지는 않았습니까?

「소명」이라는 책을 쓴 오스 기니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열심을 가진 사람들 속에 자만심이 가득한 사람이 많이 있다. 소명(Calling)의 왜곡된 모습이 바로 자만심을 갖은 기독교인들이다.”
우리는 소명을 받을 때 굉장히 흥분하며 경이감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라고 인정했다. 너는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야.”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스스로 열등감 속에 빠져있던 삶에서부터 벗어납니다. 그리고 자존감을 가지며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나가면 자존감이 아니라 무서운 자만심으로 빠지게 됩니다.

소명의식이 철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여러 민족 중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선민입니다. 우리는 독특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것을 자랑할 만한 백성입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으나 그들은 그것을 독점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계 인류와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축복임을 잊고,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우월의식을 가지며 다른 민족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심판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온 세상을 위해서 택한 것이지 너희만을 위해서 택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으면서 그것을 오만한 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오만한 지도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속에는 분명 제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명함에 무슨 그렇게도 많은 직책명이 있습니까? 총재와 회장과 사무총장이 그렇게 많고, 연합기관이 그렇게 많으며 세속사회에도 없는 증경 회장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교회 연합모임일수록 이런 잘못된 영적 지도자들이 행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이웃과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축복입니다. 그것은 결코 나만을 위한 축복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것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교회로서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왕따 된 외로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괜찮으니 우리는 갈 길을 간다는 것만으로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요? 한국 교회는 무모한 세속적인 이벤트성의 집회만을 양상하고 있습니다. 섬김은 사라지고, 지배라는 틀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려는 집회가 곳곳에서 난무하고 있습니다. 선교도 하나님의 뜻으로 사랑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복주의적인 사고 속에서 선교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다시 되돌아 봐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한 열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권력과 재물과 쾌락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음행, 정신적인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먼저 가하지 않고, 왜 교회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주어질까요? 그것은 바로 책임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초신자에게 먼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에게서부터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 평신도들에게 먼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직분자들에게 먼저 임합니다. 목사에게 먼저 임합니다. 장로에게 먼저 임합니다. 결국 목사가 되는 것, 장로가 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죽는 순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죽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장로가 되려는 사람은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죽겠다고 생각해야 장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받은 자로부터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달란트를 더 준 사람, 물질적인 축복을 더 준 사람, 명예를 더 준 사람들부터 심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기 죄의 크기를 더 깊이 실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작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교회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과 시대 앞에 책임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섬기고 나누며 봉사하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축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위기가 닥쳤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징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먼저 매를 드셔서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히브리서 12:6)

징계가 없는 아들은 사생아이지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기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직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는 데도 더 이상 징계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로마서 1:28)

불의한 마음을 품어도 하나님이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시 우리가 갖고 있는 연약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하게 하려고 우리를 이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안 들여다봐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시기에 나의 생각, 나의 언어, 나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교만하고, 예배드리면서도 교만할 정도로 우리 삶에 교만이 뿌리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다시 겸손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이 땅을 살리는 역사, 변화시키는 역사가 임하여 소망교회의 이름처럼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만큼 축복받은 귀한 교회를 섬기게 하신 것 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웃을 섬기며, 이 땅 위에 고통 받는 연약한 교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나누는 복된 교회로 세워 주옵소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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