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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성령 (요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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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보혜사 성령
본  문: 요한복음 14:16-20절(신약p.172)

여러분의 기도 덕택으로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잘 다녀왔습니다. 출발전에는 아프카니스탄 사태와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등으로 많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또 현지에서도 지진이 일어나 여러모로 걱정될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의 손길로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오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우리 장로님 기도중에도 살인적인 더위라고 했는데 이틀동안은 정말 살인적인 더위였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니 너무 싱싱하고 건강해서 너무 좋습니다. 어저께는 아파트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축 늘어지더라구요. 단독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저는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면, 성령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도행전19:2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나옵니다. 아볼로라는 사람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더니 에베소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처럼 지금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그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만 내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 성령님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도 있고, 잘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그 성령님을 바로 알고 그 성령님을 우리가 의지하고 성령님을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삶을 살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삶이 가장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영육의 삶에 놀라운 힘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님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가를 예수님께서 너무나 좋은 표현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하니까 헤깔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분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신데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겁니다.

우리로서는 이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고 믿음으로 믿을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자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구속사역을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늘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성령하나님은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 성령, 예수 그리스도도 보혜사 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보혜사이시고, 성령님도 보혜사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고 이제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그대로 이루가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이루어가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시대다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보혜사로 우리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교회를 돌아보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뜻은 위로자, 변호사, 헬퍼-도우는 자- 카운슬러-상담자- 가이드-안내자- 후원자, 친구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보혜사라는 뜻은 굉장히 넓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령님은 제가 열거한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이와같이 위로자로, 변호사로, 도우시는 분으로, 상담자로, 안내자로, 후원자로, 친구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서 잘 아시고 성령님과 친밀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만도 피곤하고 기쁨이 없고 능력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서 풍성한 계시를 통해서 성령님은 나의 보혜사시다라는 사실을 깨달아 성령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친밀하게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이 땅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베니 힌 목사님의 책 중에서 이런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령님 ” 이 말은 굉장히 친밀한, 바로 내 곁에서 내 가족처럼 느끼는 삶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이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항상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따라합시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뜻이 그런 뜻입니다. 보혜사란 뭐냐? 이번에 익사사고가 났는데 한 사람이 빠지니까 그 사람 건지려다가 다른 사람도 끌려 들어가 버렸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우리는 도울 수가 없어요. 도울 힘이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 성령님께서는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지켜주시고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고아와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 저도 양친이 다 떠났지만, 나이가 들면 고아라는 말은 의미가 없잖아요.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이 곁을 떠나면 얼마나 외롭고,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찾습니까? 부모님께 전화를 합니다. 내가 찾아갈 부모가 있어요.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버려도 나를 안아줄 부모가 있기 때문에....그런데 고아는 내가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요. 지쳐서 넘어질 때 누구 하나 붙들어줄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왜냐?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로마서 8:26에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신다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 도우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도와주느냐? 예수를 같이 믿지만도 내 마음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면서 “주여, 성령님 도와 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사는 줄 알고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님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실줄 믿습니다.
자이툰부대의 황중선 사단장을 아실 겁니다. 그분은 몇 달전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다른 사단장이 갔습니다. 많은 여러 목사님들이 그곳에 가서 깜짝 깜짝 놀라는 겁니다. 이 황소장은 영관장교때도 그랬고, 준장으로 사단장때도 그랬고 그분이 가는 곳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서너명밖에 안 모이는 곳에 수백명이 모이는 겁니다. 왜냐? 제일 앞에 사단장이 앉아서 눈물로 기도하는 겁니다. 자이툰 부대를 가니까 그곳이 영적인 교회로 변해버렸습니다. 황중선 소장이 매일 새벽마다 앞에서 기도하는데 늘 눈물로 기도합니다. 이 부대를 성령을 지켜주옵소서. 그리고 그 기도중에서 중요한 기도는 쿠르드 족을 위해서 늘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이 적으로 대치해있는 쿠르드족을 주께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러니 성령께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그곳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대치한 그 민족은 굉장히 위험한 민족입니다. 자살특공대를 조직하여 폭탄을 안고 그냥 달려드는 민족입니다. 부대앞에는 콘크리트로 막아두었습니다. 혹시라도 로켓으로 공격할까봐.

이런 위험한 곳에서 그분이 근무하는 동안 사고는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떠나고 난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에서 폭탄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부대원들에게 피해가 없었지만 주변에는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또 그 후에 장교 한 명이 자살했습니다. 황소장이 떠나고 난 뒤에 그런 어려움들이 그 부대안에 일어났습니다.
그 위험한 지역에서 황소장이 우리는 연약합니다. 제가 이 부대를 지킬 수 없습니다. 오 보혜사 성령이여, 우리의 부대를 지켜주시옵소서.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지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날마다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십시오. 정말 성령님이시여, 보혜사 성령이시여, 나를 지켜주시고, 마음을 지켜주시고, 우리 가정과 직장과 기업과 일터와 교회를 지켜주시옵소서. 사모하시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보혜사성령께서 지켜주실줄 믿습니다.


둘째,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이 뭐냐?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그때 그때마다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박사학위를 몇 개 가져도 인생길을 지혜롭게 걸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다 가져도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밝은 지혜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땅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할이 뭐냐? 캄캄한 밤에 방에 들어갔을 때 전기 스위치를 탁 켜면 환해집니다. 불이 들어오면 사물이 다 보이는 겁니다. 성령이 마치 이와같습니다. 캄캄한데 성령의 불이 내게 임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되고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지혜가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을 사모하세요. 그래야 우리는 모든 것을 깨우쳐서 지혜로운 길로, 복된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많은 구슬을 가져도 꿰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십년 신앙생활하고 이십년, 삼십년, 사십년 신앙생활했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르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내가 어떤 상황에 직명했을 때 그 말씀이 생각나서 그 말씀으로 그 샹황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가 없었다면 그 말씀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이 뭡니까?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은 말씀을 필요한 상황에서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 상황에서 말씀을 믿음으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시험을 물리치시는데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십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따라합시다.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시고라고 했을 때 신명기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이겼습니다. 다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 말씀으로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떤 결정의 순간에 직면할지라도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실로 믿습니다. 그럴 때 이기는 겁니다.
시편 119:9에 “청년이 무엇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리이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갈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역사할 때 그 말씀을 가지고 싸워서 이긴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6:17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성령에 충만하지 않으면 그 말씀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칼을 꽂고 폼만 잡고 다니는 겁니다. 폼만 잡고 다니지 마세요. 원수가 나타나도 칼을 쓸줄을 몰라. 항상 지는 겁니다.
이삼십년 믿으면 칼도 멋있는 칼이 되었겠지요. 그렇지 않아요. 품은 잡았는데 마귀가 오면 그 칼을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할 때는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십니다.

물질의 유혹이 옵니다. 뇌물을 줍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면 그 뇌물을 물리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의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셔서 이기게 역사하시는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들을 말씀을 칼로써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 같은데 아무런 힘이 없어요.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을 날마다 순간마다 놓치지 마시고 내 속에 역사해주시기를 사모하십시오.

오늘 말씀에도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싫어하는데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모할 때 적극적으로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콘트롤 해주시고, 우리를 지배해주시고, 다쓰려주실 줄 믿습니다. 생각나게 해주시는 겁니다.
“너 이래서 되느냐?” 부부가 싸움을 하려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때 말씀이 생각나면 하고 싶은 말도 멈춰버립니다. 순간순간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말씀이 생각날 줄 믿습니다.


셋째,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가이드이십니다.
요한복음 16: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보혜사 하나님이십니다. 진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줄 믿습니까?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그분만이 구원의 진리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진리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고, 구원의 생명을 얻도록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고 고백할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음을 축원합니다. 진리가운데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겁니다.

둘째는 요한복음 17:17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니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인생이 성공과 모든 좋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야 할 모든 축복의 길이 이 속에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께서는 우리는 말씀가운데로 진리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의 걸음을 이끌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짧게 여행을 해봐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가이드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가이드를 잘 못만났어요. 그래서 풍족한 성지여행을 못했어요. 다음에 한번 더 가야 되겠습니다만 상당히 아쉬움이 많아요.

잘못된 가이드를 만나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이 가이드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마귀이 가이드를 잘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의 가이드를 꼭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마귀는 이시간도 우리에게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많은 것으로 혼란을 주고 유혹을 줍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가다가 그 별이 잠시 보이지 않자 혼란이 와서 헤롯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성령의 빛을 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기도생활,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마귀가 이끌어가는 별을 보고, 마귀가 유혹하는 유혹을 따라 잘못된 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이걸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마귀의 인도를 받아서 갑니다. 오늘 여러분,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이 시간에 보혜사 성령을 다시 만나고,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귀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직업을 바꿀 때,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때 특별히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 많이 하세요. 직장생활에 스트레서 많이 받는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면 “저 사람 팔자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표내고 창업한다고 야단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패합니다.

남이 하는 것은 좋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끝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띌 때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기도많이 해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유혹하는 다른 소리를 듣고 그 길로 속아서 가기가 쉽습니다. 보헤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넷째, 보혜사 성령님은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미워하게 하시고, 죄를 두려워하게 하시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6:7-8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이 가시는 것이 유익이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승천하셔야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이 뭐냐?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이 보혜사의 역할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성령님의 역할은 뭐냐?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그 죄에 대하여 책망합니다. 양심의 소리가 들립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니고 해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성령의 책망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어 버리고 맙니다. 둔해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잘못된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두려워 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혜사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책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래서 죄를 자복하고, 죄와 싸워이겨서 거룩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축복속에서 존귀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책망의 음성을 우리가 듣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이 얼마나 귀중한지요.

마지막으로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comfort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세상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까? 가정에서도 누가 상처를 받습니까? 가까운 사람들끼리 상처를 받습니다. 관계없는 사람들과 상처받는 일이 없습니다. 부부간에 상처를 받고, 부모 자녀간에 상처를 받고, 직장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에서도 성도들끼리 상처를 받습니다.

남의 교회 성도에게 상처받는 일 봤습니까? 구역안에서 상처받고, 그렇지 않습니까? 가까운 사람들과 상처받는 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사람이 성령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그 심령이 강팍하게 됩니다. 악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험한 인생을, 얼마나 거친인생입니까? 풍요로운 인생으로 살아가려면 보혜사 성령의 위로가 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보세요. 아무리 많은 상처가 있어도 성령님께 기도하고,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내게 충만하게 임할 때 모든 상처가 사라집니다.

위로를 적절하게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다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매일을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저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성령의 위로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성령의 치료를 받을 때 새싹이 돋아나듯이 내 속에도 새 힘이 쏟아날 줄 믿습니다. 절망과 좌절감은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는 겁니다.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 겁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위로가 없으면 그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예배 시간에 성령의 충만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427장 찬송을 부를텐데 성령충만하면 내가 매일 기쁘게 살아가는 겁니다. 얼굴 표정을 보면 느낄 수가 있어요. 한번 웃어보세요. 성령이 충만한 얼굴인가?

R.A. 토레이라는 유명한 성경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 오늘도 나를 성령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나는 성령충만없이 하룻길을 걷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는 또 종종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성령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내가 성령충만치 못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말을 조심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 하지 않을 때 하는 말은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실언일 수가 있고, 이웃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있기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성령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유보합니다. 내가 성령충만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때 나는 종종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이기적인 결정을 할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모합니다. 나는 목이 타도록 사모합니다. 목마른 사슴처럼 사모합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합니다.”

토레이 박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걸음도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모두가 빠짐없이 성령을 사모하고, 그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남은 인생, 험하고 힘든 인생길이지만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밝은 웃음을 짓고,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속에서 힘차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 갈 수 있는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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