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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의 하나님 (고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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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위로의 하나님     
♠본 문; 고린도후서 1:3~6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의지할 것 없는 이 몸 위로받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위로 받길 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위로받고 살아야할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가정생활에서 오는 갈등, 사업의 어려움, 육체의 질병, 대인관계로 인한 상처 등 가지가지 일들로 괴로움과 좌절과 탄식 속에서 몸부림을 치기도합니다. 이러한 때에 필요한 것이 마음의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 자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어의 한계와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린도후서 1:3~4)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로라는 단어가 아홉 번이나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 위로에 대해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一.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 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든지 제한이 없는 위로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어떠한 위로입니까? 본문에“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환난 즉 어떠한 환난이라도 하나님은 능히 위로 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십니까?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십니다. 전지자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개입하신다면 위로받지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하셨습니다.

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하십니다.

본문 5절에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되 넘치는 풍성한 위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언제나 위로하는 일이었습니다. 위로라는 것은 같은 입장에서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고통 받는 것입니다.

옛날 하와이 군도의 한 섬인 모로카이 섬은 나환자들만 모여 살던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어느 날 벨기에로부터 다미엔(Damin)이란 선교사가 그 섬에 찾아 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이 썩어가는 나환자들에게 열심히 전도했으나 나환자들은 비웃으면서“자신은 건강한 사람이니까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들처럼 되었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고민에 쌓여있던 다미엔 선교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주님! 나도 문둥병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문둥병자가 되므로 저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선교사는 스스로 손에 상처를 내고 상처 난 손으로 나환자들과 악수하며 생활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다미엔 선교사는 감각이 점점 무디어지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가는 죽음의 병자가 되었습니다. 저들과 똑같은 나환자가  되어 그들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문둥병자인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의 전도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모였던 수많은 나환자들은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한 감동을 받고 일대 회개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신문에 기사화 되었던 일입니다. 암에 걸린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친구를 본 같은 반 학생들이 모두 삭발을 했습니다. 까닭은 항암치료를 받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위로라는 것은 같은 입장에서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고통 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 예수님은 결코 말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서 몸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가난한 이들과 몰인정한 세상에서 냉대 받는 이들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애굽으로 피난가신 것은 난민들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목수 가정에서 땀 흘려 일하신 것은 노동자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예수님이 학교에서 배우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는 배우지 못한 분들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었던 제자 가룟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여 은 30에 팔리신 것은 인간관계에서 배신당해 괴로워하는 이들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인류의 구원과 함께 억울한 자들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실패하여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망하는 것 같으나 다시 흥하여 승리한다는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천대받으며 살아도, 배신을 당하고, 온갖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보다 더 가난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 보다 더 실패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 보다 더 큰 수치를 당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 보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돕는다는 뜻입니다. 이 보혜사를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위로”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으로 위로자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위로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위로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신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면서 주의 자녀들을 위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 주님의 성전에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장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이사야 66:13)라고 하셨습니다. 위로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주의 성전에서 위로를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성전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열왕기상 8:29에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아 새 힘을 얻으며 험한 세상을 살아갈 삶의 방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사모하여 모이기를 즐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하나님께서 삶에 시달리고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장소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는 곳입니다. 가정이 육신의 안식처이듯, 교회는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가정에서 육신이 새 힘을 얻는 곳이듯, 교회는 영혼이 새 힘을 얻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일수록 더욱 부지런히 주님의 성전을 찾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하여 소원을 아뢰며 예배드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은총이 성전을 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영웅인 나폴레옹이 구라파의 모든 나라를 정복한 후 세계 정복을 꿈꾸다가 워터루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참패의 원인은, 전투 장비를 진지에 배치하고 승리의 꿈을 키우고 있던 중 갑자기 내린 비로 진지는 온통 진흙구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흙구덩이 안에서 전투 장비를 실은 마차가 꼼짝할 수 없는 사이에 적의 공격을 받아 그만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장담한 세계적인 영웅이었지만 잠시내린 비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 기자가 그를 찾아와 물었습니다.“페하!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그러자 나폴레옹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하다가 말하기를 “전투가 치열하던 어느 날 아침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던 때였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친 심령들을 위로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며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5:6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하셨습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찾아야 할까요?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니)”(잠언 2:4~5)하셨습니다.

또 어떠한 마음으로 찾아야 할까요? 마태복음 7:7~8에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구하되 주실 때까지, 찾되 찾을 때까지, 문을 두드리되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쉬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 어디에도 참된 위로를 주는 곳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 그 누구도 참된 위로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그 무엇으로도 참된 위로를 주는 것이 없습니다.

참된 위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위로하시기에 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위로를 베푸시는 장소는 거룩하신 주의 성전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즐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로 새 힘을 얻어 험한 세파를 이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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