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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닛시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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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출 17:8-16)

스펜서 존슨이 쓴 「선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작은 일에서 큰일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바른 선택은 행복과 축복의 열쇠인 것입니다. 선택을 위해서 좀 더 생각하고 신중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스펜서 존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멋진 집을 원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것은 화목한 가정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쫓다가 정말 필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필요한 것을 먼저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필요한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도움이 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과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버리고 파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자가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과 싸워서 승리한 내용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돔 사람들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내 반도에서 그 세력을 뻗치며 유랑하던 유목민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 침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민족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깃발’은 전쟁시 용기와 힘을 복돋워주며 동시에 소속 의식을 고취시켜 주는 상징물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의지하고 따르는 자의 승리의 깃발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여호와를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여호와 닛시’의 큰 승리의 은혜를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본문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이스라엘의 승리가 모세의 손에 좌우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세의 손 역시 다른 사람, 즉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 등과 같이 똑같은 평범한 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 지팡이는 일찍이 뱀이 되었던 지팡이, 애굽의 10대 재앙을 내린 지팡이, 홍해를 가른 지팡이, 반석을 쳐서 물을 냈던 기적의 지팡이입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의 표현으로 손을 들어 간구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의 표현입니다. 기도할 때 이스라엘이 강해져서 승리하지만 기도를 쉴 때 아말렉이 강해져서 실패하게 됩니다. 모세의 손은 과거에는 애굽인을 쳐 죽인 혈기의 손이었으나 하나님에 의해 사용됨으로써 능력의 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손을 하나님이 붙드시고 사용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고 싸우십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는 살인적인 법의 모든 내용을 알았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기도했고, 끝까지 감사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의 감사기도는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순교적 기도야말로 기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니엘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감사하며 기도한 일로 사자 굴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고픈 사자의 입을 막으셨고, 그를 살려 사자 굴속으로부터 건지셨습니다. 대신 그를 죽이려고 음모의 덫을 놓았던 사람들은 사자의 밥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도 평생 순교적 기도를 드린 다니엘은 다리오 왕과 고래스 왕 시대까지 형통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말렉 앞에 있는 모세처럼, 사자굴 속에 있는 다니엘처럼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쟁터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반드시 ‘여호와 닛시’ 승리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의심과 낙심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기도합시다. 기도의 사람, 기도꾼이 되어 반드시 승리하는 ‘여호와 닛시’의 교회와 가정과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협력의 사람이 됩시다
  본문 12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아말렉을 물리친 승리의 원동력이 모세의 능력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인간으로서 모세는 자신의 손 무게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연약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를 듣고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모세는 80세의 노인이었기에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인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왔는데 이는 지도자와 아랫사람 간의 모범적인 관계의 일례입니다. 사실 사단의 군대와 싸우는 영적 전투의 최일선에 서서 고군분투하는 지도자는 그 누구보다도 힘을 잃기 쉽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아론과 훌처럼 기도와 격려로써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비난과 방해자도 있었겠지만 아론과 훌이 계속 확고하게 모세의 팔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 옆에서 말없이, 최선을 다하여 돕는 아론과 훌이 있었기에 모세가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같은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돕는 아론과 훌과 같은 좋은 협력자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모세를 우뚝 서게 하고 빛낸 조연들입니다. 앞에 나서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협력하는 것은 더욱 아름다고 향기롭습니다. 모세만 되려고 하지 말고 아론과 훌이 되어야 합니다. 시기와 방해의 사람이 아닌 협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전에 두 마을이 이웃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마을은 불평촌이었습니다. 불평촌 사람들은 봄부터 겨울까지 무엇에든지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황사 때문에 먼지가 많다고 불평했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모기가 많다고 불평했고, 가을에는 나무 잎사귀가 많이 떨어진다고 불평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춥다고 불평했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생겨도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의심과 염려로 감사하지 못했고, 언제나 불평 속에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어떠한 일에도 감사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시련을 만나도 감사했습니다. 봄에는 꽃향기를 감사했고,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을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탐스런 열매를 감사했고, 겨울에는 나무 가지에 하얗게 쌓인 눈꽃을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불평촌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 가서 사람들이 말끝마다 감사하는 소리를 듣고 몹시 놀랐습니다. 그곳에서 약간의 감사를 배워 감사를 살짝 흉내만 내다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집안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잇,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괜히 감사만 실컷 하고 왔네.”
  불평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의 눈에는 장미꽃의 가시만 보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이 인격 그 자체입니다. 그는 불평의 눈을 가지고 있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불평의 조건으로 보이고, 불평의 입을 가지고 있어 입을 열면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문제는 본인만 불평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를 불평 인생으로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영적 전투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어떠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겸손하게 협력하는 아론과 훌과 같은 협력자들이 되어 ‘여호와 닛시’의 승리를 늘 맛보며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충성의 사람이 됩시다
  본문 13절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그 백성들을 파한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와 아론과 훌의 협력으로 된 결과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는 충성되고 헌신적인 일꾼입니다. 어쩌면 산에서 기도하는 모세와 아론과 훌보다 더 위험하고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불평하고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사명감으로 충만하여 목숨을 내놓고 아말렉과 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충성스럽게 일해야 합니다. 구경꾼이나 비판자의 태도가 아니라 땀과 피를 흘려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하는 여호수아가 많아야 합니다. 모세만 되려고 하지 말고 싸움의 현장에서 목숨 내놓고 충성하는 여호수아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여호수아처럼 전쟁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학교와 직장과 사업터에서 포기하거나 물러서면 안 됩니다. 방관하거나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무엇이나 누구 때문에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호수아처럼 싸워서 크게 승리해야 합니다. 삶의 아말렉을 쳐서 파하는 능력의 여호수아가 됩시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유대인 의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독인 나치 시대에 잔혹하기로 유명한 감옥에 끌려가 수년간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중한 진리를 담고 있는 이야기 하나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44년 성탄절 전후에서 1945년 신년 연휴 즈음까지 불과 2주 사이에 일이었습니다. 이 의사가 수감되어 있었던 수용소에서 많은 유대인 수감자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무슨 질병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악명 높은 가스실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수감자들이 죽은 이유는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 수감자들의 마음은 이미 어린아이와 같은 꿈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찬 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집에 돌아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트리 위에 전등을 밝히고, 옛날처럼 가족들과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탄절이 지나도 전혀 석방될 기미가 보이질 않자 이전보다 더한 절망감으로 많은 수감자들이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몸에도 악영향을 미쳐 그들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연말, 연초 2주 남짓 되는 이 시간 동안 수많은 수감자들이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일이 있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히틀러가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4개월 남짓 되는 그 시간만 잘 견뎠더라면 수감자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 4개월을 못 참고 절망 속에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말렉의 세력 앞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고 인내하여 여호수아 같은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생존과 신앙의 경쟁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 협력의 사람, 충성의 사람이 되어 여호와 닛시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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