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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므리바 (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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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므리바 (출 17:1-7)

우리 옛말에"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 심성을 그대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면 그 뒤에는 반드시 불평불만과 원망이 뒤따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막 말로 떡을 안 주면 어찌 할 것입니까? 떡을 얻어먹을 만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을 주면 감사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떡 준 사람을 원망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사실 물도 한잔 못 얻어 마실 사람입니다. 그런데 황송하게도 떡을 줍니다. 그러면"뭐 이런 것까지 씩이나..." 하고 감사해야 옳은 것이지 불평과 원망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못해요. 아니 안돼요. 어렵습니다. 도무지 용납이 안 되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괴로워하며 삽니다. 단지 내 떡이 남의 떡보다 적다는 그 현실이 싫고 사람들도 싫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진 브라이스(Eugene Brice)]라는 목사님이 말하기를"지금과 다른 상황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는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직장 말고 다른 직장을 가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지금 이 가정 말고 다른 가정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지금 이 여자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났으면 좋을 텐데...내가 원하던 남자는 이 남자가 아니야"하는 이런 생각들, 즉 지금의 상황과 환경에 대한 불만이 곧 스스로를 지옥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 농부가 아들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1년을 공부한 아들이 생물학, 철학, 식물학을 공부하고 방학 때 고향에 돌아와서 그 동안 배운 지식을 동원해서 한 가지의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 불만은"하나님이 창조사역에 잘못을 범하였다."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예를 들면서"왜 하나님은 이렇게 크고 튼튼한 잎과 줄기를 가진 떡갈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열게 하고 왜 튼튼하지도 굵지도 않은 줄기를 가진 호박넝쿨에는 저렇게 큰 열매를 달리게 하였느냐?"는 그럴싸한 불만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공교롭게도 그 아들의 머리 위에 도토리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말했습니다."아들아, 그 도토리가 호박이었더라면 어쩔 뻔했냐!"아들은"아이고 하나님, 떡갈나무에 호박이 달리지 않고 도토리가 달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불만이란 언제나 이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요, 교만입니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감사와 배은망덕 사이의 중립적 입장은 없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곧 모든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미워한다."그렇습니다. 현실이 어떻든지 불평하지 않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이요, 먼저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우리들에게 참 고약한 버릇이 있다면 그것은 남의 이야기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두 세람 이상만 모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언제나 화젯거리가 되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쳐야 할 아주 못된 버릇입니다.

미국의 어느 저명한 목사님은 특별하게 생긴 책을 한 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책의 표지에는[교인 불평 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교인 중에서 목사를 찾아와 다른 어느 교인의 비행이나 과오를 이야기 할 때면 목사님은 그 불평하는 교인의 이야기를 불평 록에 적어놓고 얘기가 끝나면"내가 시간이 나면 그 사람의 잘못을 정식으로 문제 삼아 바로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하고 반드시 사인을 하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불평하러 왔던 사람은"아니 뭐 기록에 남기고 사인까지 할 만한 이야기는 못됩니다."하고는 무안해서 돌아가고 맙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40년이 넘게 교회를 섬겨 오지만 그 책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된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불평하기는 좋아하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 책임지지 못하는 비방과 원망과 불평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은 불평도 원망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나 뱉어 내기 전에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합니다."내가 다시 이 일하면 성을 간다.","내가 다시는 너 같은 인간은 안 본다.","내가 다시는 이놈의 교회 오나 봐라."불평과 원망을 함부로 쏟아 내기 전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원망과 불평은 언제나 자기위주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보세요. 내가 대접받아야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으면 불평이 생깁니다. 내가 편하고자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때로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이 미워지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원망과 불평은 반드시 다툼을 만듭니다. 그리고 불평이 다툼이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약한 습관 하나가"끝장을 보겠다."는 심리입니다. 내가 누군지를 똑똑히 알게 해주겠답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끝장을 봐야지 직성이 풀린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해버리거나 한바탕 싸워야 일이 끝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악한 모습입니까? 상처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속에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여행하는 중에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이란 곳에 도착하여 장막을 쳤습니다. 불타는 듯한 사막을 걸어오면서 심히 목이 말랐고 기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곳에서 결정적으로 물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자기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하자 모세를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물론 목이 마를 때 물이 없으면 인도자를 원망 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인도자가 자기들을 편안한 길로 인도 할 것을 믿고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물이 없음을 인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곳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출애굽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는 의식은 애굽을 떠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애굽을 떠났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면서도 그들은 곧잘 그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모세를 원망하고 나섭니다. 오늘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불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모세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위기입니다. 다툼 중에서도 가장 좋지 않은 다툼은 이런 불신앙에서 비롯된 다툼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다툼이지만 틀림없이 먼저 시비를 거는 사람이 불신앙적인 사람으로 보면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편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편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것이거든요.

자, 이제 이 다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 특이합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반석을 치라"그리고는 그 반석에서 생수를 솟게 하셔서 죽어야 마땅할 원망과 불평하는 자들을 살려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실은 우리들의 행위로야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이지만 그래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수없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듭 거듭 현실에 불평하며, 버릇처럼 인간관계의 원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망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은혜 베푸시는 그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이 우리를 살립니다. 마치 오늘 원망과 불평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에게"너는 반석을 치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웠듯이 오늘 우리도 일으켜 세웁니다. 우리에게 불신앙적인 불평이 생길 때 다툼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기도의 반석을 쳐야합니다. 남을 원망하고픈 마음이 일어 날 때 믿음 없는 자 같이 행동 하지 말고 사랑의 생수가 샘솟는 반석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불평은 원망을 낳고, 원망은 다툼을 낳습니다. 그리고 다툼은 불신앙입니다.

어떤 사람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가서는 우표 한 장을 샀습니다. 그런데 거스름돈이 없다는 이유로 우표를 팔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우표 한 장을 사러 갔던 이 사람은 우체국 직원의 이와 같은 불친절한 태도에 몹시 기분이 상하고는 모처럼 써 가지고 부치려던 편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분한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섰습니다. 마침 그때에 잘 아는 사람 하나가 우체국 앞을 지나가다가 반가이 인사를 합니다. 잔뜩 화가 난 이 사람은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인사를 했던 사람이 화가 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이 사람은 더욱 속이 상해서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문을 발로 차 버립니다. 집 안에 있던 부인은 집이 무너질 듯이 요란한 문 닫는 소리에 놀라 달려 나와 보니 남편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눈치만 살피던 부인은 부인대로 화가 나서 옆에 있던 가정부에게 꾸지람을 퍼붓고는 방으로 들어 가 버립니다. 그러자 말없이 집안일을 돌보고 있던 가정부는"내가 돈이 없어 가정부 노릇을 하니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수도 물을 틀어 놓고 한참이나 울고 났더니 집안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불평적인 태도가 여러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원망과 불평이란 이렇게 건설적이지 못하고 파괴적인 것입니다. 나 하나의 원망과 불평이 전부를 망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그리 불만입니까? 무엇이 그리 불평입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생각하고 말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늘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장이 므리바입니다. 얼마나 불평할일 많고 원망할일이 많습니까? 하지만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이 원망과 불평이 우리 속에 일어 날 때마다 그것을 깨트릴 수 있는 반석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반석 앞에 서보십시오. 말씀의 반석 앞에 서십시오. 찬양의 반석, 은혜의 반석 앞에 서서"너는 반석을 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평의 근원, 원망의 뿌리를 해결 받는 현대의 므리바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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