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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의 풍요를 간직하라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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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풍요를 간직하라 (창 50:15-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5-21)

  사람들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그 사람으로 스스로 고통스럽게 하여 병들게 하며 인격과 삶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용서의 대상은 다양합니다. 사람일수도 있고 어려운 환경일수도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향한 용서를 추구하지 않으면 용서는 우리 안에 깊이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추고는 가면을 쓴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용서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용서해야 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용서해야 합니까?

  󰓍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해야 할 대상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용서해야 할 대상으로 온통 자신가운데 채웁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하여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분노의 감정과 참을 수 없는 생각에 지배되어, 그 감정과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감정과 생각은 그들 자신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되어 병든 인격을 만들기도 하고, 육체에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국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사람을 고통가운데 가두어 고통의 노예가 되게까지 하는 것입니다. 

  󰓎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바로 간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용서하도록 하십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이 은혜를 거부하는 것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당당하지 못하게 함으로, 영혼이 메마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 합니다.

  󰓏 용서하지 못하면 사단에게 틈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마귀의 공격과 침략에 틈을 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유린하려고 할 것이고, 자기의 영역과 거점을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에게 농락당하는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 용서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와의 대화중에 용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주님은 교훈과 기도의 가르침가운데서도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6:12)
  우리는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용서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용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편애하는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에서 성실하게 가정대소사를 맡아 잘 관리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성적으로 유혹하다가 뜻을 실현하지 못하자 모함해서 감옥에 수감 되게 했습니다. 감옥에서 왕실의 살림을 맡아주는 시종장들의 꿈을 해몽해주고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곧, 그들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요셉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서도 증오하거나 분노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억울한 과정을 용서의 삶으로 가꾸어 갔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형들 때문에 노예와 죄수로서 갖은 고역을 겪었으면서도 주어진 불행한 환경가지도 용서한 것입니다. 성적유혹과 함께 감옥에 가도록 모함한 보디발의 아내,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약속을 어긴 바로 왕실의 시종장까지도 용서했습니다. 이러한 용서가 요셉의 인생을 풍요하게 했습니다.

  요셉은 용서함으로 풍요의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용서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중동지역의 7년 흉년에 의한 대 기근의 역사를 극복해 나가는 역사의 중심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로서 치리자로도 성공했습니다. 용서함으로 형들과의 풍요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인류를 위한 복의 근원 자가 되었습니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용서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신비이며 능력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삶을 자유하게 하여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간직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게 해줍니다. 주님의 삶을 실현하는 성숙함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입니다.   

  식량을 얻기 위하여 애굽을 찾은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바로 동생 요셉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에게 행한 일 때문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4-8)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으로 인해 애굽에서 살다가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에, 혹시 자신들을 미워하여 과거에 그들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하여 앙갚음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행한 말을 성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19-21)

  요셉은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의 행위를 보지 않고, 형들의 행위를 사용하여 선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애굽에 온 것은 형들이 노예로 자기를 팔아 넘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셔서 자기 형제들과 후손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앞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바라다보는데서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불행한 환경가지도 용서함으로 그 환경이 축복의 조건이 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왜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우리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우리로 용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용서의 능력을 의지하는데서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선물과 은총은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 하나님의 용서의 능력을 가지는 데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를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3:1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이 용서의 선물을  거저 받았기에, 그 선물에 대한 감격이 우리로 용서하게 하는 근거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용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 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는 아픔을 스스로 감내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요셉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조건 없이 그냥 용서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와 형들의 가족을 애굽으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자식들을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잊어버리거나 눈감아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 용서하기위해서 꼭 가해자와 직접 만나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 증오하거나 분노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입니다.
  지금 용서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의 대상이 내 앞에 없을 지라도 ‘나는 용서 합니다’ 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선언하면서 하나님께 내어 맡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한 우리의 아픔과 병든 관계를 건강하게 회복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지금 용서하십시오. 요셉과 같이 용서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로 용서함으로 우리가 누릴 풍요를 누리게 하십니다. 
  용서는 능력입니다. 용서는 과거의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모든 악을 이겨내게 합니다. 용서는 용서하지 못함으로 붙어있는 거머리 같은 더러운 영을 떼어버리게 합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모두를 회복시켜줍니다. 또한 용서는 용서하지 못함으로 만들어진 아픔의 감정과 그것으로 인한 상처와 피폐된 삶을 새롭게 고쳐줍니다. 우리 인간들이 막지 않는다면 용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용서로 가는 열쇄는 우리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 열쇄를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열쇄로 용서의 문을 열 때에 풍요함이 다가올 것입니다.

  잠언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용서의 풍요가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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