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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바다(1) (겔 2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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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다(1) (겔 27:3~11)

포로 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북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두로에 대하여 예언 하였습니다. 두로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두로의 바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은총 가운데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본문말씀 4절에 “네 땅이 바다 가운데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최근 들어 지구촌에 기상 이변으로 인하여 자연 재난도 빈번하고, 금년 여름의 경우 폭염과 열대야로 짜증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 시간 아름다운 바다를 생각하면서 자연세계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기를 원합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으로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시편 24:1-2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1) 무한광대(無限廣大)하심의 표현입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나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은 다 하나님의 창조의 산물입니다. 그중에도 하늘과 바다는 끝이 없는 무한대의 상징으로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한 지명이나 인명을 보면 대부분 하나님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령 하늘 (ם󰖹אַ󰚋:Shamayim)이나, 바다(ם󰖸:yam)의 경우 그 단어를 복수형으로 쓰고 있는데(왕상 8:27), 보통 이런 경우를 ‘장엄복수’라고 합니다. 곧 피조 세계에 나타난 그 웅대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면서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짐작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3/4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편 136:6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땅을 물위에 펴셨다고 하신 말씀도 이를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피조세계의 웅대한 모습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 솜씨를 나타낸다고 노래하였습니다(시 19:1-2).

2)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엡 3:19).

곧 하나님의 성품과 경륜은 인간의 사고로 측량이 불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매일같이 지구를 자전(自轉)케 하시며, 일 년에 한 번씩 태양계를 돌게 하시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시 19:3). 바다도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힘으로 물결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중동(靜中動)으로 살아서 약동하는 것입니다.

바다 물이 움직이지 않고 그냥 있다면 그것은 죽은 바다가 되어 악취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지구 위의 어느 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도 다 거기에 동화되고 살아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내어 뿜는 각종 오염된 물이나 시궁창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것도 그 속에 들어가서 섞이게 되면 다시 새파랗게 살아서 재생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범죄하여 멸망에 이른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거듭나게 되는 구원의 도리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3) 만물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26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지으신 피조물을 다 헤아리시고 그것들이 생성하며 공존하도록 작용하십니다. 바다 속에도 각종 해초류와 어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속에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지만 그래도 모든 종(種)이 제각기 자기의 기능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자기의 계획하신 바를 성취하시며 그의 뜻을 이루어 내십니다(잠 16:4).


2.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바다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다를 통하여 제공되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출신지역이나 생업에 상관없이 바다로부터 받게 되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바다는 모든 인간 문명의 공여자(供與者)가 되는 것입니다.

1) 축복의 보고입니다.

바다는 무궁무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것을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줍니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어패류나 해초류 같은 것은 우리의 식탁에 올라 먹거리를 제공하지만 그런 것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값지고 귀한 자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의 지식이 높아지고 해양기술이 발달하면서 바다 속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개발하게 되고 거기에 묻혀있는 신비의 베일을 벗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을 할 만큼 바다를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혜택을 누리며 문명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 중 하나에 불가한 바다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야 말로 무지한 인간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의 대상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알고 거기에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풍요로움을 제공합니다.

태고부터 인간은 지구표면의 25%에 해당하는 육지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것도 땅을 사랑하고 잘 관리 해 온 사람들은 풍요롭게 생활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가난과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경우 표면적으로도 육지의 4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면적이지만 그 안에 있는 자원은 육지의 그것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무궁무진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개발하고 생업으로 이용하는 부분은 주로 기초적인 어업 정도에 불가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에스겔 47:9에 보면 성전에서 스며 나온 생수가 강을 이루어서 아라바 바다에까지 흘러 들어갔는데 이 생명 강물이 흘러들자 죽은 바다가 살아나고 많은 어족이 몰려오고 어장이 형성되어 산업이 융성해 졌다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공해로 오염된 세상이 죽음의 바다처럼 삭막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되면 모든 산업과 물질생활의 번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3) 문명의 공여자가 됩니다.

바다는 인류 문명의 장을 열었습니다. 육지에서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갈 때는 길이 막혀도 바다위에 배를 띄우면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어디든지 통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옛날부터 물길을 따라서 교통과 산업이 발달해 왔고 물물교류와 문화의 장을 열어갔습니다. 고대의 문명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이르는 대륙을 연결시켰고 히브리 문명과 희랍과 로마에 이르기까지 중세와 현대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지리상의 발견이후로 세계는 바다를 무대로 하여 공간의 벽을 허물게 되었고 어디든지 새로운 문물을 습득하는 곳에 선진 문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이와 같은 바다의 역할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축복의 방편이라고 한다면 이를 기독교의 복음과 관련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기의 전도자 바울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에게 해를 건너서 마게도냐 지역으로 들어 간 것이 복음의 서구화를 이룬 기원을 세웠습니다(행 16:6-15). 그 이후 어디든지 복음이 가는 곳에는 새로운 문명이 형성되었고 결국 세계의 복음화라는 명제를 이루어 인류 구원의 축복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도전과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몇 년 전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로 여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두 곳은 다 태평양 가운데 있는 섬나라 입니다. 하늘 상공에서 비행기 창밖으로 전개되는 검푸른 바다 물결과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볼 때 가슴이 탁 트이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면서 목회자인 나의 가슴도 저 넓고 깊은 바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6:13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하였습니다.

1)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그곳 철학자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상을 창조 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창조의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은 피조세계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통해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행 17:24-27).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의 무한광대 함과 그 위력을 볼 때 그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인간의 무능함과 초라함을 인식하게 되고 한없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옛날 욥과 그의 친구들은 서로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며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고 하시는 질문을 받고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고 하였습니다(욥 38:4, 40:4).

2) 그리스도인의 도전 정신입니다.

제가 호주에서 아름다운 휴양지 브리스벤(Brisbane) 해안을 거닐다가 그곳 청년들이 파도타기로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각기 커다란 서핑보드를 발밑에 붙이고는 원을 그리며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거꾸로 물구나무서듯 묘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곳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거기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는 것 같았습니다. 넓은 바다를 가슴에 품고 끝없이 뻗어 나가고자 하는 도전 정신이 있어서 세계를 끌어안고 인류의 꿈을 실현 하고자 하는 문명의 선구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상에 이르고자 하는 신앙적인 도전은 매우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롬 11:33). 그렇지만 그는 자기의 인생을 걸고 하나님을 아는 일에 도전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12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일입니다.

성경은 지구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물을 가리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하는 도구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박국 2:14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죄악된 행위를 거듭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 하십니다(계 16:3). 태풍이나 해일 또는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난도 하나님의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누가복음 21:25에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하나님의 축복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바다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곧 바닷물이 지구 표면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 같이 온 세상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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