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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꿈과 미래의 비젼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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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37:5 - 11
제목 : 요셉의 꿈과 미래의 비젼

<들어가는 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당시의 백만장자 4043명의 생애를 조사, 연구해 보았다. 그런데 그들 모두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삶의 분명한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었고,
둘째 인내의 사람이었고,
셋째 가슴 속에 불타는 꿈(비젼)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비젼) 이 있는 사람만이 발전 합니다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사람은 이상을 품은 비젼만큼 높아 집니다.그리고 꿈과 이상은 현실을 고난을 넘게 합니다. 그래서 귀머거리요 벙어리요 소경이었던 헬렌 켈러는“날 때부터 장님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눈이 있어 보기는 보아도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비전이 있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잠29: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默示)”라는 말은 영어성경에 보면 비젼(visi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보다 명확한 뜻을 위하여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하-존-@/zj; (chaz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원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Revelation)되는 하나님의 뜻(비젼)을 지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방자히 행하거니와"(이파라)는 문자적인 뜻은 벌거숭이가 되다.
멸망하다. 사라지다는 뜻입니다. 즉, 망하긴 망하되, 확실히, 완전히, 쫄~딱 망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나라와 이 민족, 세계를 이끌어 갈 모세와 같은, 요셉과 같은, 다니엘과 같은, 다윗과 같은, 에스라와 같은, 룻과 같은, 에스더와 같은 민족의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도 이 시간은 요셉의 꿈(비젼)에 대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 묶여진 곡식 단 들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비젼)

1)비전(꿈)이란 무엇일까요?
로마에 가면 한 대학 정문에 설립자가 After that what?(후에 무엇을) 이라는 글이 적어 놓았습니다. 이 학교 설립자가 대학 다닐 때 돈 많은 여인이 장학금을 준다기에 찾아갔습니다. 이 귀부인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이 장학금을 받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등록금을 내야지요! 여인은 또 묻습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졸업을 해야죠? 그 다음에는? 법률변호사 시험에 패스 해야죠!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결혼 해야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죠. 그 다음에는? 늙어야죠. 그 다음에는? 이 청년은 대답에 심각함을 느끼면서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죽어야죠. 이 때 여인은 아니 이 돈 받아서 고작 죽기 위해서 장학금을 받아가려고 하는가? After that what?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공부한 후에 학교를 설립하고 이런 글을 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고작 잘 살고 죽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말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여러분 분명한 방향이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전이 없을 때 방향이 없습니다. 비전 있는 자만이 인생의 분명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전(꿈)이란 무엇일까요?
비전이란 "현실성 있고 믿을 만하고 매력 있는 자신의 미래상입니다." "우리들이 도달해야 할 종착지입니다". 목적보다 앞선 것입니다. 목표보다 우선되는 것입니다. 비전은 바로 우리의 미래 자화상입니다. 우리의 미래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 이제  요셉의 미래의 꿈(비젼)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자화상을  봅니다. 

2) 일어나는 곡식 단
요셉은 꿈꾸는(비젼) 가운데 자기가 묶은 곡식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이 묶은 단들은  자신의 단을 향해 절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곡식 단 이란 무생물입니다. 스스로 일어서고 누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의 곡식 단이 일어섰다는 것은 누군가 일으켜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일어서고 싶다고 일어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야만 일어설 수 있는 곡식단과 같은 존재입니다.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장자의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스스로를 높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이실 때까지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마20:27,23:12-13) 애굽에 팔려 간 것은  하나님은 요셉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길을 순종하여 걸어갔기에 그를 애굽 제국의 국무총리로 높이신 것입니다.

3) 넘어지는 곡식
요셉은 형제들의 단이 자신의 단에 절하는 것을 목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형제들이 자신에게 장차 절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스스로 서고자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 넘어지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반드시 일으켜 세우시지만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추십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 했으며, 형제들이 스스로 서고자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 넘어지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이 형제를 멸시하고 억압하려는 데서 기안된 그릇된 욕망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교만보다는 겸손을, 시기보다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형제를 존 귀히 여기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겸손한 자들을 높은 자리로 올리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본문에 나타나는 요셉이며, 이런 모습은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하나님께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는 겸손한 신앙 자세로 교회와 사회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둘째 :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절 함

1) 하늘의 별과 같은 형제들
요셉이 꾼 두 번째 꿈은 첫 번째 꿈의 연속이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증거 해 줍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해와 달로 형제들을 열 한 별로 나타낸 데서 알 수 있듯이 장차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돌아갈 무한한 영광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메시지는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열 한 형제들은 이스라엘 부족의 조상들이 됨으로써 그 부모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해와 달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별과 같이 존귀한 자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모두 그의 자녀 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후사들인 것입니다.

2) 별과 같지 않은 형제들
하지만 형제 들 은 이 꿈을 단지 부모와 자신들이 장차 요셉에게 절하리라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좁은 소견을 보였습니다. 물론 꿈이 계시하는 바는 부모와 형제들이 장차 요셉에게 절하게 되리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사실이 못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형제가 형제를 섬기게 되리라는 것은 그 형제가 매우 높게 되리라는 것으로서 오히려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더욱이 그 꿈은 형제들을 별에 비유함으로 형제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는 것이었는데도 형제들은 이 소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동생을 비웃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보고 사태를 파악하였습니다. 요셉을 편애하는 아버지와 자신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절하게 되리라는 등의 상황만 생각하고 동생을 미워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그들을 하늘의 별처럼 불렀는데 조그마한 일로 인해 그들은 하늘의 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서도 땅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모든 분쟁과 불화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자신의 고귀한 지위를 다시한번자각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셋째 : 꿈(비젼)에 대한 반응 들

1)꿈(비젼)에 대한 편견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을 고생하고 있는 저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 바가 있습니다. "당신은 철학, 신학, 의학, 음악의 4개의 박사 학위를 가진 유명한 학자이기도 한데 왜 하필이면 아프리카에 가서 그 고생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 참 이상합니다. 사람이 꼭 그렇듯 고생스럽게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슈바이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를 동정의 눈으로 보지 마시오.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십니까?"

이것이 생을 바로 사는 사람의 꿈(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영광되고 행복한 일일까요? 이런 비전이 있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면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꿈 을 마음에 둔 것을 봅니다.

2) 아버지 야곱의 마음
성경이 없던 당시에 꿈(비젼)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는 매우 귀중한 매체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것을 알았기에 요셉의 꿈 이야기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이미 야곱은 벧엘 에서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린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에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 꿈의 진척 상황을 지켜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계시는 이처럼 쉽게 그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꿈의 계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며 인간의 판단에 따라서 용납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요셉의 꿈에 대한 자신의 반응 한계를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마음에 두고 침묵 했던 것입니다. 이는 가장 완숙하고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3) 오해한 형제들
하지만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즉각 요셉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자신들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일에만 급급할 때는 이처럼 천박해질 수 밖 에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을 섬길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요셉의 꿈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형제가 형제를 섬기는 위치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열심히 봉사 한다면 그것은 결코 천박한 일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종의 형체를 지니고 내려오셨고(빌2:5-11) 섬김의 일생을 사셨지만 아무도,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 까지도, 그를 천박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 신앙인 까지도 예수의 인품과 삶을 칭송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과 위선을 일삼았던 높은 지위에 있던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의 뜻에 겸손히 순응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꿈은 성취되는 것이며 하나님은 최상의 것으로 비젼(꿈)을 이뤄 주심을 믿으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전능하신 야웨 하나님
꿈과 이상을 갖게 하옵소서.
현실만보고 주저앉지 말게 하시며
적은 일에 목숨 걸지 않게 하시고
부드러움 속에 겸손하게 하시며
미래의 꿈 과 자화상의 목표 속에 살게 하소서.
고로 하나님 자녀의 형상을 이루게 하소서
그리스도 예수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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