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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보혈의 능력 (히 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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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보혈의 능력 (히 9:11~14)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피는 우리에게 영양을 가져다 주고, 우리 몸의 노폐물을 다 가져가 버리고, 나쁜 병균의 침입을 막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 종류의 피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를 사람들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단순히 피라고 부르지 못하고 '보배로운 피, 보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보혈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그리고 이 피를 믿는다면 구원의 문제는 완전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풍성한 생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체험적으로 구원을 누릴 수 있는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피 속에 그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가운데 예배당만을 열심히 다니는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교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는 구도자와 교회원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구별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 세속적인 성장의 개념을 끌어와서 머리 숫자를 늘리기 위하여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아무나 교회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숫자는 늘어나고 건물은 바벨탑처럼 올라갈지는 몰라도 이미 타락한 교회요 죽은 교회일 뿐입니다(계 3:1).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임재하는 존재방식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피를 대가로 하여 우리 주님의 소유가 된 혈연 공동체입니다. 그저 함께 모여서 도와주고 위로하고 사는 정도의 도덕종교가 아니라, 동질의 생명을 가진 혈맹적 관계요, 생명을 함께 책임지고 가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교회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까지라도 참여시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증거를 제아무리 많이 제시하고 자랑하며 스스로 확인한다 할지라도, 정작 교회 생활을 온전히 해 나가는 것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익한 것입니다. 구원은 교회가 확증해 주는 것이며 교회를 이루는 삶을 통해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토록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교회에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초청을 받았다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교회에 나아왔다고 강변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없이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없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하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라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것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결국에는 죽게될 지경에 이르렀고, 구사일생으로 유다라는 형의 도움으로 종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고, 얼마 지나서 감옥에 갖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있고 큰 나라인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요셉이 노력을 해서일까요? 요셉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였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작정하셨고, 때가 되매 친히 섭리하셨던 것입니다.만일 들에서 깊은 웅덩이에 빠져 있을때에 그 곳을 지나가는 상인들이 30분만이라도 늦게 지나갔더라면 그는 영락없이 그 웅덩이 속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억울했지만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총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도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본문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가지고 있는 세가지의 강력한 능력을 뚜렷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구속이란 값을 지불하고 건져낸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속죄는 특별히 죄값을 지불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교회만 오면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우리에게 왜 십자가가 필요하며, 십자가가 외치고 있는 2가지의 사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너는 죄인이다
(2) 십자가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내가 왜 죄인이냐? 왜 내가 죄 값을 지불해야 하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으나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3가지를 들어서 답을 하고 있습니다.
(1)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끊어진 죄인이다 (원죄)
(2) 너의 마음 속에는 죄에 대한 욕망이 가득 차 있다. (동기)
(3) 너는 그것을 따라서 여러 가지  잘못을 행실로 저질렀다.(자범죄)

"나는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간음을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며, 다른 사람에게 분을 품은 것이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부모님을 살인했으며, 형제를 살인했으며, 친구를 살인했을 수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지적하십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오 하나님! 나는 추악한 죄인입니다."고 인정을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이 영원한 속죄의 말씀은 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은 절대로 죄인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거절하며, 분을 품는 자들에게는 이 말씀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며, 도리어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인간은 십자가 앞에서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과 십자가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요? 흑인, 백인, 황인종일까요?  이 지구 상에 약 60억의 사람들은 각기 다 제각각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닮았을까요?
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육신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인격, 즉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서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가장 위대한 특권을 가진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드리며,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은 가장 악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렘 17:9 "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철저한 반대자인 마귀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3:36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분들, 과연 그 분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는 삶을 누리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이, 하나님의 한없는 따사로운 미소가 비쳐지고 있는데 반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를 향해 있으며, 그의 생명의 줄을 놓는 순간에 그는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나의 이름은 아닙니까?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죄를 짓는 나의 연약한 육체,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인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생명의 피로 말미암아 나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는 성경의 핵심이요 우리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 12장에 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순히 특출나게 뛰어나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떠돌아 다니는 소수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그들을 하나님께서 데려다가 이 세상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선대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도구로 모델하우스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서 오늘 나같이 몽매 무지한 자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지금의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종살이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압제가 가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에게 나아가서 "내 백성을 가게 하라".... 그러나 애굽 왕은 비웃으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애굽 땅에 10가지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졌습니다. 마침내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 양을 집집마다 준비하여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와 문안방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밤(정월 14일)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을 받은 천사들이 이스라엘과 애굽 백성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그 심판의 칼이 그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갔고, 그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집은 멘 처음 태어난 것을 모조리 죽였던 것입니다. 그날 밤 어떤 집에서는  대성통곡하며 공포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칠흑 같은 깜깜한 밤에 누가 그 피를 보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그 피를 보고 넘어 가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했던 것입니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피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밖에다가 그 피를 발라 놓고, 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싸움도 하고, 자녀들을 훈계하기도 하고, 오락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피를 보고 넘어 가리라"
그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든지 간에 상관없이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넘어 가리라"
이것이 바로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서 인류에게 들려주는 복음입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도 내가 내 속에 어떠한 악심이 있으며, 어떠한 잘못이 있을지라도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악하고 추하고 위선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 다니고 싶어도 이들 때문에 안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거룩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추한 위선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인정하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이 모인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모여든 사람들의 행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더럽고 추한 죄를 완벽하게 가리워서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그날을 유월절이라고 명명하여 그후 그들은 피의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피의 제사는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대표자를 의미합니다. 그는 1년에 한번 이날 속죄일(7월7일)에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들고 성소에 들어갑니다.
성소의 규모는 2/3는 성소이며, 1/3은 지성소라고 하는데, 이 지성소를 1년에 한 번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등불을 들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거기는 칠흑과 같이(유월의 그날 밤과 같이) 캄캄한 곳입니다. 그 곳에 바로 이 짐승의 피를 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짐승의 피는 오직 하나님만이 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교회 목사들을 초빙하는데도 학력, 학위가 기준이 된다고 하는데, 여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자기의 학벌을 가지고, 자기의 무슨 지위를 가지고, 자기의 물질을 가지고........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그릇에 새빨간 피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단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피가 없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두루마기 같은 옷에는 방울이 달려 있어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면 대제사장이 살아 있어 기도하고 있는 것이요,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밖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그 소리가 오직 희망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나의 죄를 짐승에 전가 시켜서 나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 피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명예, 물질, 건강, 부귀영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속에 있는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나의 허물을 보시고, 연약함을 보시고, 나의 죄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일날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그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가 경배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선행과 물질과 명예와 허물과 연약함을 보시지 않습니다.
천사도 흠모할 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무궁하시고 자애로우신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 그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 그 피를 보시고, 우리를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보시고, 우리가 드리는 큰 절을(예배) 기뻐받으시며, 우리에게 친히 말씀을 들려주시고 당신의 뜻을 펼치셔서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내가 나 자신을 볼때에 한심하고, 답답하여서 자기 자신이 마음에 안들지라도, 나를 그 피로 구원하신 주님은 나에게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셔서 오늘도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완벽하게 섭리하셔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과 지식으로 보기에는 심히 연약할지라도 독생자 예수 그리도를 잔혹하게 그 십자가에 내어 주시까지 사랑하신 우리 아버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7절을 보면 대제사장은 짐승 피를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무서운 공포속에서 그 자리에 나아갔지만, 이제는 그 짐승의 피가 필요가 없습니다.

12절에 "자기의 피--예수님의 필"로 영원한 속죄를, 즉 한번 죄를 용서하시면 영원한 용서를 이루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할 때 그 죄를 수십번 반복해서 회개를 해야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했던 회개를 습관적으로 또다시 오늘하고, 지난달에 했던 회개를, 작년에 했던 회개를  눈물 콧물 흘리면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교회당을 못짓게 데모하는 것입니다. 그 피로 구속하신 자애로우신 우리의 아버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10장10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장14절"저가(예수 그리스도)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100%)  온전케 하셨느니라"           
우리 인간과 같이 계약금 10%, 중도금 50%, 죽을때에 100% 용서해 주마가 아닙니다. 단번에 100%, 영원히 100% 온전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왔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창고에는 다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죄악들로 하나님의 창고에는 가득가득 할줄로 믿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마땅히 저주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한마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 길이길이 참으셨고, 기다리셨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고백할수 있도록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빛을 비추시고 섭리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자백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택하신 자녀들을 말입니다.
이렇게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자를 그 피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 생애 속에 깊이 간섭하시어서 항상 최선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을 하는 우리에게 "너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10장 17절"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나는 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죄에 대해서만큼은 건망증이 생겼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18절"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10년전에 지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오늘 지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앞으로의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그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그 피 때문에 당당하게 의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19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오늘날의 성소(성전)의 실체는 예수님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된 신자 자신의 몸이 성전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모시고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신자들이 연합하여 인격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산에 가서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악을 쓰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깊이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해도 다 들으시고 전달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신 내 생명되신 주님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거룩하신 예수님 앞에 이런 죄를 짓고 나아갈 수 있겠는가고 말씀하시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19절에서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행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물질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업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그 피를 힘입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 속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그 피가 그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피가 그의 전 인생을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속죄를 믿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영원한 속죄를 풍성히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2. 예수님의 피의 능력은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를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예수님의 피는 나의 인격과 나의 영혼을 샘물처럼,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흐르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 생활은 얼마나 오염되고 실패하고 그래서 온통 죄투성이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피는 살아 있어서 계속해서 매순간 순간마다 나를 적시고 정결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나에게 있어서 계속해서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피는 나에게 불필요한 더러운 쓰레기는 다 가져가 버리십니다. 예수님의 그 피는 나를 공격해 오는 적들을 완벽하게 막아주십니다. 바로 이 놀라운 능력을 성령님께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양심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것을 알고 믿는다고 고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 자동차 뒤에는 물고기도 달고 다니는데도, 맨날 내가 저지른 죄는 왜 이다지도 많은지...................

계 12장 10절 ~ 11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이들은(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참소(고자질)를 합니다. 그래서 내 양심을 비참하고 괴롭게 만듭니다. "나는 틀렸어, 나 같은 자가 예수님을 믿을 자격이 없어......." 
그런데 이 마귀를 꼼짝 못하게 하고 승리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1절 (1) 어린양의 피
  (2) 자기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3)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마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더럽고 추한 모습을 고자질 할지라도 예수님은 당신의 찢겨진 손과 발을  그리고 머리와 허리를 온 몸을 보이시면서 그 피로 속죄되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꼼짝 못하고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그피를 적시기만 하면 열등감과 자각과 어떤 콤플렉
스로 괴로워하고 그래서 열번 스무번 회개하고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것이 해결 안된 것들이 단번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뭐가 안되는 일이 있으면 "천벌을 받은거야!"라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는데, 어떻게 나를 얻으셨는데 싸구려 시장에 흘러가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피에 적시기만 하면 양심에 찌려 질질 끌려 다니면서 살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입술로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신앙고백을 하고 고상한 말을 하는 나! 그러나 여전히 죄 속에 빠져 있는 나! 내 입으로는 복음을 말하면서 내가 수습할 수 없는 나! 그런데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섬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그 피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그 피는 나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아울러 나를 비굴하게 쓰러지고 넘어지는데 그냥 머물러 두지 않으십니다. 일으키고 또 일으키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예수님의 그 피를 적용시키시면서 나의 양심의 죄에 넘어질 때마다 일으키시고, 나의 행실의 죄에 넘어질 때마다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의 그 피가 나를 새롭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 할 때 의기소침 하거나 팔팔 잡아띠지 마십시오.
'원래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그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정말 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당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그 피 때문입니다."

지금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7장 24~25절"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며, 예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온전히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번만 구원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한 밑천 떼어주었으니 잘먹고 잘 살아라고 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께 예수님의 그 피를 보이시면서 나를 위하여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도를 닦고,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고 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멸망의 종교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그 피로 다 이루었기 때문에 당신은 와서 풍성히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종교인데, 이것이 우리 기독교이며 진짜 복음인 것입니다.
롬 8장 1절 "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피로 말미암아 양심의 참된 자유를 풍성히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힘있고 풍성히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으셔서 우리의 전 인격과 생애를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의 터 위에 바른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섬기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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