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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독수리 날개로 업어 (출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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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날개로 업어

요절 :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스위스의 어느날 밤, 알프스 산을 오르려고 하는 등산객들이 한 산장호텔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등반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번 등산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오릅시다.”
“저 정도의 산은 문제 없어요. 나는 내일 아침 혼자서라도 올라가려고 합니다.”
“안됩니다. 혼자서는 위험해요 안내자가 있어야 합니다.”
“안내자는 필요없소. 저 산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깨어 보니 혼자서도 충분히 등산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이 이미 산으로 가고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일기가 나쁘니 되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으나 하루가 지나도록 그는 오지 않았습니다. 해서 수색대가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수색대가 산 중턱에 이르러 실력있는 산악인들이 자기 이름표를 매달아 두는 말뚝을 보니 “안내자가 없이도”라는 글이 걸려 있었습니다. 수색대는 그가 그 곳까지 왔었음을 확인하고 좀더 올라가자 낭떠러지에 한 남자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안내자 없이도 등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당도했으며, 하나님께선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의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강력한 능력과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사랑으로 건져 내셨음을 은유적으로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바를 지시하십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임을 고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우리에게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역사하시므로 감출 수가 없으며,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이고, 포괄적이며, 동일합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고통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신속하게, 강력하게, 안전하게 구원하셨음이 내포 되어있는 말씀입니다.

  첫째 : 신속하게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간구함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음에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신속하게 임한다”라고 하면 “그렇치 않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임하신다 함은 내가 고통중에서 부르짖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즉각 이루어 주신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어야 할 적기라고 생각되시는 때, 곧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와 주셔야 할 가장 알맞은 시간이 되시면, 주저하지 않으시고 놀랄 만큼 빠르게 역사 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후에’가 아닌, ‘지금’이십니다. 나의 기도가 내게서 이루어짐이 나로서는 ‘지금’이 아닌, ‘후에’인것 같으나 하나님께로서는 ‘지금’이십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시103:5)”

다윗이 하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노래함입니다. “너희가 내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5절)”, 이에서의 ‘소유’란 갖고 있는 단순한 재물을 말함이 아니라 주인이 특별히 관리하는 귀중품, 외부로부터 어떠한 상해도 받지 않도록 보관되어 있는 “보물”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보았느니라(4절)”, ‘보았느니라’의 히브리어‘라아’는 시각을 통하여 보는 정도가 아닌, 실지 체험을 통하여 인지한 앎을 말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내’가 되면 ‘나’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보배’가 되고, 보배된 ‘내’가 되면 하나님께선 ‘나’를 위해 신속히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물을 잃기전에, 상실하기전에 옮겨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날개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환란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 어느때나 펼쳐있고, 업히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둘째 : 강력하게

  어미 독수리의 날개에 업힌 새끼는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까닭은 어미의 날개는 강력한 힘을 지닌 보호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은 노아의 방주, 40주40야 비가 쏟아져 내렸고, 그 물이 땅 위에 150일 동안 창일 했음에도 어느 한 곳 허술함 없이 안전했습니다. 지금 내가 고통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잠잠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내’가 약한 인간임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도록 살아야만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무엇’을 주시려고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를 구원하심에 있어 시시한 임시 미봉책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이 따를 수 없는 강력하고 완벽한 방법을 쓰십니다.

어떤 어머니가 다섯 살 된 딸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라는 진리를 심어 주는데 성공했습니다. 헌데 딸은 무서움으로 인하여 울기만 했습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내가 거짓말한 것, 친구와 싸운 것 나의 나쁜 마음을 다 보고 계셔”라는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달래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두손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던 아이가 기쁜 얼굴로 엄마한테 뛰어 오며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보고계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대. 내가 잘못한 것 다 용서해 주셨대”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 전에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이 내 삶을 급습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강력하게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힘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셋째 : 안전하게

  ‘안전’이란 온전한 것, 탈이 없는것, 위험이 없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인생은 광야와 같고, 인간에게는 안전이 없습니다. 어느순간에 어떠한 일이 내게 닥칠지 모릅니다. 질병 건물의 붕괴, 화재, 비행기, 기차, 자동차, 배, 가스사고... 혹서로 죽고 혹한으로 죽고... 우리모두는 안전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허나 인간의 힘으로는 내 생각대로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사실상, 이땅의 삶에 ‘안전’이란 말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안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가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선 ‘안전’의 복을 주시지 아니하면 그 무엇에서도 안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안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만이 확실합니다. 공사현장에서 ‘안전’표시가 된 헬멧을 씀은 위험으로부터 안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안전’표시는 안전을 바라는 것이요, 불완전함을 드러냄입니다. 인생은 어디로간들, 어디에 있든,무엇을 하든 안전하지 못하답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과 능력만이 온전한 안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날음에 있어 땅의 장애물은 무용지물입니다. 까닭은 장애물 위로 높이 높이 날기 때문이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방어선이요, 하나님의 능력은 무너뜨릴 수 없는 방어벽이다” 매튜 헨리(M.Henry)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신속함이 필요할 때는 신속하게, 강력함이 요구될 때는 강력하게, 안전을 요할 때는 안전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업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불가능도 없고, 실수도 오류도 없으며, 제한도 없습니다. 이 땅의 생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의 은총을 입지 못함은 내 믿음에 문제가 있음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의 나래에 업히기만 하면 소경도, 걷지 못하는 자도, 무식한 사람도, 가난한 자도, 병든 사람도 안전히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대답하고, 주실 때 받고, 명하실 때 순종하고, 업혀라 할 때 업히고, 감사하며, 기뻐하고, 영광돌리며 살아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업힘은 인생의 정로요 가장 확실하고 빠르고, 쉬운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십니다.

  어떤 곳에 희귀한 것만 갖고, 먹고 싶어하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임금님은 기가 막히게 맛이 좋은 요리를 먹은 후 감탄에 감격을 하고, 요리사를 불렀습니다.
“아주 맛있는 요리를 했다. 일등 요리로다. 무엇이 갖고 싶으냐?”
“임금님, 음식 맛이 좋은 것은 제 기술만이 아닙니다. 좋은 야채를 판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겠나이까? 상급은 채소장수에게 주소서”
“그래? 그럼 채소장수를 불러 오너라”

불려온 채소장수가 임금님의 말을 듣고 깜짝놀라 말했습니다.
“임금님, 그것은 아니될 말씀이시옵니다. 저는 그저 야채만 팔았을 뿐입니다.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농사를 지은 농부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농부를 데려 오도록 하라”

농부가 불려 왔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임금께 나아간 농부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 펄쩍뛰며 말했습니다.
“임금님, 황송하오나 아니옵니다. 저는 그저 씨만 뿌리고 가꾸었을 뿐입죠, 제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려도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안계시면 저는 싹도 틔울 수 없습지요, 훌륭한 야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요. 감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받으셔얍지요”
(김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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