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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려진 세계 (사 65:17~25, 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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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진 세계 (사 65:17~25,  계 21:1~8)

오늘 주일은 우리 교회가 장함공동체 교회에서 기도모임을 갖다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1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저는 이번 1주년을 맞으면서, 창립기도모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그동안 걸어왔던 발자취들을 가만히 되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보면 볼수록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깊이 느낍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 이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도 마음먹고, 예배에 참석하며 여러 가지 영성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는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러 후원 교회와 후원 식구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교회가 창립된 지 1년을 넘기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기고 가야 할 것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1년을 걸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지, 우리는 궤도에 맞게 걸어오고 있는지 우리의 위치를 한번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의 본질, 근본을 잃지 않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교회만이 아니라, 나 자신 한 사람 한 사람도 포함됩니다.  처음 시작된 교회가 가장 마음을 쓰는 것은 교회의 성장일 것입니다.  그것도 양적인 성장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일 예배에 몇 명이 참석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일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마음이 많이 쓰였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장은 성장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했을 때, 그 열매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교회는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교회의 근본에 얼마나 충실한가가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떻게 성장할까를 묻기 전에 어떻게 교회의 본질을 놓지 않을까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교회란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믿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새로운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복음의 비밀을 향해 눈을 새롭게 뜨고 그 방향을 분명히 가리켜 주는 것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생명의 세계, 사랑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고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그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로 향해 방향을 잡은 사람들이 그 새로운 세계를 선취(先取)해 가면서 그 새로운 세계의 빛 아래서, 나를 보고, 나의 삶을 보고,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고, 나의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작은 것이지만 하나하나 해 나갈 때, 우리는 본질을 잃지 않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새로운 세계의 빛 아래서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영성생활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맛보아야 할 새로운 세계가 아닙니다.  단지 그 세계를 가리켜줄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늘 깨어서 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그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 줄 때 교회는 본질에 충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는 교회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손가락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지 않으면, 아무리 크고 똑똑하고 자선이 많고 매스콤을 타고 화려한 교회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내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세계, 사랑의 세계를 향해 방향을 잡고 나아가느냐,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세계를 놓지 않느냐 하는 것이고, 그 세계의 맛을 어떻게 맛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교회의 강단을 통해, 또 여러 영성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만, 저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성경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세계는 닫혀있는, 이미 해석되진 세계가 아니라, 열려있는 세계입니다.

여기 브람스의 어떤 곡이 있다고 합시다.  아마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악보를 본다고 해서 브람스가 생각했던 그 세계를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브람스가 직접 썼던 악보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외계인의 글씨였습니다.  그런데 정명훈 같은 사람들은 그 곡을 연주합니다.  아마도 정명훈 같은 대가들은 브람스가 생각했던 세계에 어느 정도 가깝게 근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잘 모른다면, 정명훈이 아무리 브람스의 곡을 지휘해도 그 세계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라고도 부를 수 있고, 생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실재라고도 부를 수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만, 이 새로운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해 완전히 초보자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그 세계에 아직 완전히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세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세계를 상상하며 갈망하기도 하였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 세계에 대해 들었지만, 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세계의 맛을 조금 보면서 그 세계에 대한 깊은 열망과 바램으로 차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세계에 아직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믿는 사람들은 그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의 본문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록한 난해한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록한 미래 프로젝트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상징과 암호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미래 시간표로 기록된 책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당시 박해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을 놓지 말도록 격려하고 권고하는 책입니다.  당시가 핍박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여러 상징과 암호들을 담고는 있습니다만, 무슨 부적을 풀듯이 보아야 하는 책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현실의 고난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지켜 갈 것인지를 적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열려진 새로운 세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 읽었던 이사야의 본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열려진 새로운 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번 따라가 봅시다.

이전의 땅, 이전의 하늘이 아닌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이 열립니다.  이것은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나는데, “보아라, 하나님의 집(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죽음도 없고, 슬픔고 없고, 울부짖음도 없고,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또 말씀이 들리는데,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마음에 가까이 다가옵니까?  아니면 먼 남의 이야기로 들립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영원에 대한 그리움, 본향에 대한 그리움,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깊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에 대한, 본향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에 깊이 동참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힘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바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를 향해 열려져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열려있는 세계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우선 그 세계는 우리에게 늘 새롭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열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세계는 오늘도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보여주시는 이 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식을 떠나, 우리의 나이를 떠나, 우리의 능력을 떠나, 우리의 의지를 떠나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열려져 있는 세계라는 말은 고정되어 있는 세계, 우리가 완전히 파악이 가능한 세계, 어떤 틀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 때, 우리가 안정을 이루고 평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만나는 세계를 완전히 파악하여 내 손 안에서 주물러야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정되지 않고, 내 손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세상의 틀로 들어가 안정을 찾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세상의 틀을 이해하고 그 틀 안에 안주할 때 우리는 안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의 손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거기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필요하지 우리의 머리로 파악하거나 우리의 의지로 묶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에서 누리는 것은 거짓된 안정이 아닌, 진정한 자유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말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갖고 그 세계를 지향하며 그 세계를 미리 맛보며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힘이 없음을, 그 열망이 없음을 늘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내게 열려 있지만, 나는 그 세계를 향해 열려 있지 않음을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 앞에서 늘 넘어지고 있음을 아파하는 것입니다.

저는 유도에 대해서 문외한입니다마는, 유도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낙법부터 익힌다고 합니다.  잘 넘어지는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남을 쓰러뜨리겠다고만 한다면 유도를 할 수 없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상처를 입지 않고 바로 일어설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늘 넘어집니다.  넘어지지 않겠다고 한다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수없이 좌절하고, 수없이 실패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 넘어지면서 크게 상처를 입지 않고 넘어지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의지가 없습니다.  그 열망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는 사람에게 그 세계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위해 본질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또한 여러분 자신들이 이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이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의 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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