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깨어 기도하라! (막 14:37~42)

  • 잡초 잡초
  • 563
  • 0

첨부 1


깨어 기도하라!(막14:37~42)

  얼마 전 교계 신문에 보도되었던 내용입니다. 어느 기관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 생활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현재 한국교회 성도들의 하루 기도 시간은 24분 25초였습니다. 2년 전 한국 갤럽에서 조사했을 때는 27분이었는데, 2분 이상 줄어든 수치입니다. 기도 시간이 별로 길지도 않지만 그나마 갈수록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번 각자의 기도 생활을 잠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하루 평균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과거에 비해 기도 시간이 늘었는가? 아니면 줄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곧 내 신앙생활의 성적표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흔히 기도를 뭐라고 말합니까? “기도는 영혼의 호흡!”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는 우리 영혼이 호흡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지쳐버립니다. 죽어갑니다. 그러면 아무리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환경 조건이 좋아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결국 무기력해지고 실패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영혼에 만족이 없고 삶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병자가 되고, 시체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왜 많은 성도들이 삶 속에서 실패합니까? 무기력합니까? 그것은 바로 흡족하지 못한 기도 생활에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 오늘날 성도들이 얼마나 육신적으로 부유해졌습니까? 그리고 세련되어졌습니까? 하지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시간이 줄고 있기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는 겁니다.

  이제 무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혹시 지난 여름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해이해졌다면 영적으로 각성하고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셨고,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졸며 잠에 빠져 있다가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기도가 승리와 실패를 갈라놓은 겁니다. 기도한 예수님은 승리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은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이 말씀을 통해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에 열심을 냄으로 매일 매일, 더 나아가 일생토록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 기도의 승리 

  ① 예수님의 생애 - 평생 시험 :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악한 사단은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고 좌절시키려고 기를 씁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내내 그랬습니다. 탄생할 때도 헤롯왕을 충동시켜 아기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후 생애 내내 온갖 시험으로 예수님을 방해했습니다.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마귀가 시험합니다. 공생애를 마치고 십자가를 지실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막14: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나오는데, 여기 봐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얼마나 큰 시험을 받으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막14:33~34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 ” 얼마나 괴롭고 힘들면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이런 대목을 보면서 혹시 이런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이게 뭐야 ... ?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애 동안 신성과 더불어 인성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처럼 시험도 받으시고 괴로움도 느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것이 대속이 된 것입니다.
  어쨌든 마귀는 예수님의 인성을 자극하여 십자가의 고통 앞에 포기하도록 시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셨고 결국 승리하십니다. 

  ② 예수님의 기도 생활 - 평소기도, 특별기도 :

  예수님은 지상 생애 내내 시험을 받으셨지만 100전 100승이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 말도 맞지만, 예수님의 인성을 고려하면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매일 새벽 시간에 기도하셨다는 겁니다.

  목사들 사이에 이런 조크가 있습니다. “새벽 기도만 없으면 목사 노릇 할 만한데 ... ” “도대체 누가 새벽기도는 만들어 놓아갖고 이 고생을 시키는지 ... ”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그만큼 새벽 기도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벽기도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의 모델이고 가장 좋은 기도 습관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영적 자산인지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그래요. 꼭 새벽에 기도해야 하느냐? 물론 다른 시간대에 꼬박 꼬박 기도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간대에 기도하는 것도 그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새벽에는 일어나기 어렵지만, 일단 일어나면 기도하기 좋습니다. 반면 다른 시간대에는 육신의 분주한 생활 때문에 조용한 시간을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새벽은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으시는 시간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 많은 은혜와 능력의 사건들이 새벽 시간에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새벽 시간을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 전통은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새벽마다 기도하시고 밤마다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평소기도와 특별기도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특별기도 중 하나가 바로 겟세마네 기도입니다.(마26:36~46,  막14:32~42, 눅22:39~46 참조)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특별기도는 평소기도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 전혀 기도하지 않다가 문제가 생기면 벼락치기로 기도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평소기도의 습관에 기초해서 특별한 기도를 할 때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급하면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기도하지 않으면 급할 때도 기도가 잘 안 나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평소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계셨는데,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특별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겁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흥미로운 것은 겟세마네 지명의 뜻입니다. ‘기름 짜는 틀’이란 뜻으로 감람유(올리브기름) 짜던 곳입니다. 정말 그 이름처럼 예수님은 진액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도 인성을 갖고 계셨으므로 십자가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심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당당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100% 가정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패자가 되는 것이죠. 인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 비결,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2] 실패한 제자들 : 영적인 잠

  ① 영적인 잠에 빠진 제자들 :

  안타깝게도 예수님은 처절하리만치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졸며 잤습니다. 37절. (예수님 잠든 베드로) “ ...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의 쓸쓸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다시 가셔서 한참 기도하다 오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자고 있었습니다. 40절.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이제는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육신의 잠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잠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깊이 잠들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자의 이름은 갖고 있었지만 불신자들과 다름없는 무기력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② 시험에 빠진 제자들 :

  영적인 잠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체포대가 들이닥친 겁니다. 그때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47절.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한 사람 = 베드로) 이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실패입니다. 혈기를 부린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를 제지시키고 대제사장의 종(말고)의 귀를 붙여주십니다. 체포대에게는 제자들의 안전을 요구하십니다. 당신 자신만 체포하고 제자들은 다 보내주라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이 그러셨지만, 제자들이 몇 시간 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50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나마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떻게 되나 보려고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겁을 먹은 나머지 멀찍이 따라갑니다. 54절.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그리고 예수님이 불법 재판을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합니까? 71절~72절.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중에는 저주하면서 배반합니다. 100% 실패한 겁니다.


[3] 승리의 비결 : 깨어 기도하라!

  ① 근신 :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분명한 승리의 비결을 배웁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내용입니다. 38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각종 시험을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구절에서 ‘깨어있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그레고레오’(γρηγορεω)인데, ‘경계하다’ ‘정신차리다’(watch) 등을 의미합니다. 즉 ‘근신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근신해야 될 이유를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육신’은 단순히 육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인간의 연약성과 죄성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이라도 육신이 약합니다.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모든 게 척척 잘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은 좋은 뜻조차 지키지 못하는 게 솔직한 나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늘 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더욱이 원수 마귀가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를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만일 우리가 방심하면 대번에 넘어집니다. 실패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속수무책입니다.

  특히 종말이 가까운 때에 더욱 근신해야 합니다. 살전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주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수시로 닥쳐오는 시험이나 고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당장 형통하고 안전한 것 같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예고하고 시험이 닥쳐오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군인이 적군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므로 항상 경계하고 보초를 서는 것처럼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초병(哨兵)의 수칙이 있습니다. “졸면 죽는다!”
정말 보초 서다 잘시 졸아도 적군이 들이닥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졸면 실패합니다! 영적으로 자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적으로 긴장감을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기도 :

  예수님은 깨어 있으되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38절. “깨어 있어 기도하라!”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까? 시험이 닥쳐옵니까? 그럴 때 방심하면, 기도하지 않으면 겨우 대처한다는 게 베드로처럼 혈기로, 육신적인 생각으로, 세속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결국 일을 꼬이게 만들고 실패하고 맙니다. 아니면 도망간 제자들처럼 혼비백산해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런데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해요. 나는 초신자라,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기도할 줄 모른다고 ... 그런데 그것은 핑계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본능’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기도는 저절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저절로 호흡하고 저절로 젖을 빠는 것과 같습니다. 배워 갖고 나오나요? 부모님이 가르쳐 주나요? 아닙니다. 옆에서 조금 보살펴주지만 자기가 스스로 젖을 빱니다. 마찬가지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기도에 관해 공부하고 훈련받으면 물론 좋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그냥 기도하면 됩니다!

  또 어떤 기도를 하면 좋을까요? 기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기도 내용에 여러 가지가 있죠. 찬양, 회개, 감사, 간구 ... 그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기도가 ‘간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순종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이 두 가지가 다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이 잔(십자가 고난)을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게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막14:36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 소원대로만 기도하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 자신의 일이라도 잘 모릅니다.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어떤 때는 잘못된 것을 간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초코릿을 계속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이빨 다 썩을 줄로 모르고 그저 달라는 겁니다. 부모님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때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소원을 기도하고(간구의 기도),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마음 속으로 경청하며 그 뜻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순종의 기도)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듣고 기도가 중요하구나, 기도가 좋은 것이구나 느끼기만 하면 안 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는 실천할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기도에 관해 아무리 많이 알아도 기도를 아는 것으로 은혜를 받는 게 아닙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는 만큼 은혜를 받는 겁니다.

  최근 저에게 너무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 이야기는 아니고, 저를 청년의 때 말씀으로 양육해 주신 목사님 가정 이야기입니다. 마치 제 집 일처럼 너무 기쁩니다! 그 목사님에게는 세 명의 따님이 있습니다. 그 중에 큰 따님이 이번 토요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새삼 그 가정의 지나온 일들이 생각나서 너무 기뻤습니다. 그 목사님이 20여년 전 개척교회를 하실 때 사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교사셨는데 교회 일 보시랴 학교 일 보시랴 피곤하셨는지 그만 발병하셔서 투병하다 돌아가신 겁니다. 그때 세 딸이 코흘리개였습니다. 제가 옆에서 뵙기에도 인간적으로 너무 답답하고 암담했습니다. 목사님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느라 애를 쓰셨지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인도로 인도의 선교사 자녀 학교에 연결되었습니다. 세 아이를 인도 북쪽의 산중에 있는 기숙사학교에 집어넣고 목사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무어라 기도할 수 없어 그저 “하나님! 우리 아이들 어떻게 하죠?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아주 잘 자란 것입니다. 큰 아이가 한국에 와서 대학 졸업한 후 외무고시 패스해서 지금 외교관으로 근무 중인데 이번에 결혼하게 된 겁니다. 둘째는 역시 한국 대학 졸업 후 현재 금융감독원에 근무 중입니다. 셋째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인데 전액 장학생으로 용돈만 부쳐 준다고 합니다. 신앙도 좋고 얼마나 아버지를 위하는지 모릅니다. 그 목사님 가정 일을 생각하면 “역시 기도밖에 없구나!” “기도가 최고구나!” 새삼 느낍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그런데 결과만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그 이전에 눈물 뿌려 기도한 그것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기도가 좋은 줄은 알지만 피곤해서, 바빠서 ... 여러분! 우리가 연약해서, 부족해서, 세상이 험해서, 마귀 시험이 많아서, ... 그래서 기도하는 겁니다. 어쩌면 아직 덜 바빠서 덜 급해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윌로우 크릭교회(IL, U.S.A.) 담임목사이신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님의 책 제목이 딱 맞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Too Busy not to Pray).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역설저인 이야기 같지만 정말 너무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바쁘다고 기도 시간을 무 자르듯 잘라 먹는 것은 영적인 자살 행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가을에 기도합시다!  지난 여름 영적으로 나태해졌다면 다시 영적인 허리띠를 졸라매고 깨어 기도합시다! 결단하십시오! 기도를 멈추렵니까?(Stop Praying) 기도를 위해 멈추시렵니까?(Stop to Pray)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매일의 삶과 미래를 좌우할 겁니다. 부디 예수님의 간곡한 말씀 “깨어 기도하라!” 이 말씀 붙들고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