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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주권섭리 (롬 9: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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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섭리 (롬 9:19~24)

신앙생활의 시작은 언제부터입니까? 주님이 나를 부르신 그때부터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의 행위와 전혀 관계없이 뱃속에 있을때,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 것입니다.”,“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사44:1~2)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어머니 모태에 조성되기 이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 71편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내바 되었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주님이 나를 시편 23편과 같이 푸른초장에 뉘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내 입술에서 고백이 있게됩니다.“어미 모태에서 지음을 받기전에 창세전에 부르신 하나님”게 감사하게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시 58편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행위에 전혀 관계없이 전적 하나님의 주권섭리 안에서 선택과 유기가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예정론입니다. 이 예정론은 장로교가 장로교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신학 교리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서 9장에 와서 예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유기입니다. 한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과 버리심입니다. 이 예정에 대하여 바울은 야곱과 에서를 예로들었습니다. 모세와 바로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선택과 유기”, “예정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풀수 없는 난제입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믿어지고 감사가 나오고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악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리하실 수 있냐는 것입니다.‘구원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해야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선택하시는 문제입니까?’, 완전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기보다“하나님! 어찌 그리하실수 있습니까?” 한마디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주권대로 어떤 사람은 긍휼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강팍하게 하신 다음,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신다면 하나님이야 말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예상한 바울은 겸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수 없느니라,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럴수 없느니라”,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이 아닌 이해를 앞세우는 사람들에게입니다. 바울은 저들에게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사람아! 네가 감히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허물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물건이 만든자에게‘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반박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사실 예정론에서 하나님의 원하심은 이해도 논쟁도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강조하며 그 하나님의 절대 은총 앞에 아멘 하는 믿음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나 사람들은 믿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해하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어야 믿겠다는 것은 신앙에 있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림에 있어 절대 합정입니다.

사실 신앙은 믿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신 선물입니다. 신앙에 있어 처음 믿어지기가 힘들지 한번 믿어진 뒤로는 자연스럽게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동차를 다 이해하고 탑니까? 여러분은 컴퓨터를 다 이해하고 사용하십니까? 믿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이해가 먼저 앞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니고데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먼저였던 니고데모는 예수님 앞에 왔지만 은총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부자청년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이해가 먼저였기에 슬픈 표정 속에서 예수님에게서 멀어져야 했습니다. 모든 관계는 이해보다는 믿음입니다. 부부는 이해보다는 믿음입니다. 부부관계는 죽을 때까지 이해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부부의 재산은 신뢰입니다. 서로에게 많은 허물이 있지만 믿음이 재산인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또한 믿음의 관계입니다. 믿음보다 이해가 앞서면 내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 무너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불행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먼저 믿음입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워보십시오. 자식이 자기를 아는 것보다 부모가 더 잘압니다. 자식이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 보모가 자식을 위하는 것이 더 완전합니다.

자식은 자기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그러나 보모는 안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자식은 이해가 못합니다. 부모에게 불의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한심이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모든 환경 속에서 아멘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이해 못합니다. 이해가 안 되면 관계에 금이 가게됩니다. 사람인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도 먼저 믿음입니다. 먼저 이해가 앞서서는 안 됩니다. 목사와 성도간의 신뢰관계가 조성되면 모든 것이 품어지고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가정에서 자기 기준을 세워놓고 모든 것이 내 생각에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지 않고 주변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서로가 신뢰가 없다면 불쌍한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신뢰가 없다면 불쌍한 것입니다. 성도로서 목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불쌍한 것입니다. 이해가 먼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하면 힘들지요 또 이해가 안 되지요 믿으며 신뢰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모든 관계에서 나를 내려놓음으로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정론에 있어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나님을 힐문하며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 은총에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차원은 이해가 아닌 것입니다.

“그럴수 없느니라”, 바울은 왜, 이렇게 말합니까? 

“그럴수 없느니라”, 바울은 왜, 이렇게 말합니까? 사람들 마음 속에 묘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핑계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앞에 하나님을 핑계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근성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핑계합니다. 하와는 뱀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핑계합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근성은 무엇이었습니까? 고비 앞에서 탓하는 것이었습니다.‘모세야 언제 우리가 나온다고 하더냐 우리를 죽이려고 데리고 나왔느냐’지금도 삶 속에서 우리 안에 이런 근성이 있지않습니까?‘나 가난한 것 누구 때문이야’,‘나 공부 못하는 것 누구 때문이야’,‘나 신앙생활 못하는 것 목사님 잘 못나서 그래’,‘나 장사 잘 안되는 것 태통령때문이야’이런 사람들이 제일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표현하더라구요. 하나님이 요나를 쓰시는 이유는 책임감입니다. 젊은이들, 절대로 누구 탓하는 그릇으로 길들여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수학문제가 이해 안되면, 문제가 문제입니까? 내 한계입니까? 그럼 말씀 앞에서 이해가 안되면, 말씀이 문제입니까? 내 은혜의 한계입니까? 시기하게도 수학문제 앞에서는 내 한계라고 말하면서, 더 오묘하신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는 하나님의 문제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신앙앞에서도 삶에서도 믿음이 우선이요. 믿음이 축복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모든 활경 속에서 하나님의 결국을 믿어버릴수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이해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내 입장에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 섭리를 이렇게 강조합니다. 20절,21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토기장이의 비유를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을 힐문하는 너 사람아!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입니다. 하물며 완전하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천한 그릇, 귀한 그릇으로 클 그릇, 작은 그릇으로 만들 권이 없겠느냐입니다.

이것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토기장이의 비유를 운명론으로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겠습니다. 여러분은 천한 그릇입니까? 귀한 그릇입니까? 여러분은 큰 그릇입니까? 작은 그릇입니까? 사람들은 둘 중하나로 섭리되어져 살것입니다. 나는 귀한 그릇, 천한 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작은 그릇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출세한 사람들 즉 국회의원, 장관, 사장이 큰 그릇이라 생각하고 평범한 나는 작은 그릇이라 말합니다. 또 나는 귀한 그릇이아니다 싶습니다. 적어도 비행기를 타면 1등석 정도는 타고다녀야 귀한 그릇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들도 나는 큰 그릇이라 하지 않습니다. 작은 그릇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랫 나는 힘들게 고생하며 산다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했습니다. 나도 힘들게 사는 것을 보니 귀한 그릇은 아니다, 나 먹고 살기 바쁜 것보니 큰 그릇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해 묻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가난하게 병들게 천한 그릇으로 만드셨나요?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역사에 대해 우리는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크 그릇인가? 작은 그릇인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인가? 천하게 쓰이는 그릇인가? 진정한 믿음은 이러한 나에게 그 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주목하라’여러분은 작은 그릇일수 있습니다.

천한 그릇일수 있습니다. 아니 사실 저와 여러분은 처음부터 작은 그릇이요 천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작은 그릇을 얼마든지 날마다 더 큰 그릇으로 더 귀한 그릇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작은 그릇이요, 천한 그릇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작은 그릇입니다. 조그만 땅에 자원도 없고 정말 불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큰 나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자원도 없고 여건도 좋지 않지만 귀한 그릇, 큰 그릇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한 그릇, 큰 그릇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큰 그릇, 귀한 그릇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릇의 진정한 가치는 내용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내용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용물음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그리스입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는다면, 정말 믿는다면, 나는 더 이상 작은 그릇이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천한 그릇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이 가난이 아니요,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내 삶에서 믿음으로 예수님, 그 분이 존귀해지는 만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도 귀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더 큰 그릇으로, 더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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