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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능력! (고전 1:18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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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 (고전 1:18 - 25)

시작하는 말

토마스 아 켐피스의 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이런 글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대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면서 자신을 사도로 선택하신 목적은 ①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②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세례와 깊이 연관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적은 수의 고린도 교인에게만 세례를 주었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결코 철학적인 변증으로 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였다고 말하면서 이 십자가의 도를 접한 각 부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 각 부류의 사람은 유대인, 헬라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각기 다른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

1.유대인은 표적을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22)라고 말했습니다.  The Message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기적적인 증거를 외쳐대고 있는 동안에”라고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표적의 역사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 시대는 믿음의 시대였다면 모세시대는 기적의 시대였습니다. ①출애굽부터 가나안 정복까지, ②가나안 정복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적과 표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마12:3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39-40)고 대답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작고 시시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크고 놀라운 표적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다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때에도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흐리고 붉으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고 한탄해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끝까지 표적을 구했습니다. 십자가 아래까지 쫓아가서, 십자가 위에까지 매달려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때에 지나가던 자들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27:40)고 조롱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 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2)고 비아냥거림을 떨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외면당하는 것이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가증스러운 것이요, 거리끼는 것이며, 민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거리끼는 것”(23)을 흠정 역에서는 “a stumbling block”로 번역했으며, The Message 성경에는 “an anti-miracl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 표적, 안티 표적”을 고집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 반유대교, 반 유대민족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 다음단계를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거치는 것, 걸림돌, 길을 가로막는 바위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눈에 보이는, 가시작인 것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하며, 가난한 자가 벼락부자가 되고, 기도하는대로 만사형통하는 것을 구하는 유대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표면적인 것을 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2. 헬라인은 지혜를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2)라고 말했습니다.

헬라인이 찾는 “지혜”를 ①흠정 역에서는 “wisdom”이라고 번역했으며, ②The Message 성경에서는 “pass it off as absurd”(불합리한 것으로 흘러 버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헬라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지혜를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피했어야 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헬라인(이방인)에게는 매우 “미련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것이었다는 말은 “매우 부조리한 것, 매우 불합당한 것, 매우 못마땅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헬라인들과 같은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쉽게 믿고, 쉽게 구원받아 보자”는 식으로 교회생활,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자, 몰려다니는 자, 직분을 팽개치고 도망 다니는 자들은 이런 헬라인에 속합니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 중에도 이런 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머리로 믿고, 입술로 일하고, 얼굴로 대신하려고 하는 자들은 헬라인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인들은 이런 자들에게 잘들 속아 넘어갑니다.


3. 그리스도인은 능력을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23)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복음을 말합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게 한 바로 그 복음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거리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기”(22절) 때문입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입니다. 그 표적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신앙의 근거이며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외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결정적인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생각에 메시야는 깜짝 놀랄 만한 능력과 위엄을 나타냄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유대인들을 로마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끊임없이 초자연적 증거로써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마 12:38 ; 16:1, 4 ; 막 8:11, 12 ; 요 6:30).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행악 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메시아라고 말하는 것은 모욕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걸림돌이자 공격적인 돌이었습니다(롬9:33 ; 벧전 2:8).
 
1)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성령에 의하여 내적인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롬 1:7 ; 8:28 ; 유 1 ; 계 17:14).

또한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처럼 혈통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요, 헬라인처럼 지혜나 이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그것은 지혜의 풍부의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롬 1:16 ; 고전 1:18).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거리낌도 아니요, 미련한 것도 아니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지혜입니다. 이방인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비이성적으로 보이나 이러한 구원 계획은 하나님 자신의 뜻과 영원 전부터 계획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지혜인 것입니다(고후 1:9, 10).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온전케 하시는 분입니다(히 12:2).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주 모자라는 지혜라 할지라도 인간의 지혜보다 더 풍부할 수밖에 없습니다(사 55:8, 9).


끝맺는 말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 진격했을 때, 어느 날 러시아 병사 한 명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자기를 황제로 섬기면 후한 대접을 해 주겠다며 전향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포로된 그 러시아의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러시아 황제 폐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소.” 거절하는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화를 내며 부하에게 지시했습니다. “저 놈에게 거룩한 황제의 표시를 새겨 주어라.”

그러자 한 병사가 달려들더니 그 러시아 병사의 팔에 불 인두로 “N”자를 새겼습니다. “자. 봐라. 이미 네 팔에는 이 나폴레옹의 인(印)이 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이 러시아 병사는 옆에 서 있던 프랑스 병사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자기의 팔을 뚝 잘라 버렸습니다.

피가 튀기며 하얀 눈밭에 떨어진 자기의 팔을 바라보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충성은 오직 한 분, 그 분에게만 바칠 것이오. 나의 황제 짜르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할례의 흔적이 나의 마음에, 나의 삶 속에 나타나고 있어야 합니다.

기적을 원하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풍요로운 영광과 드라마를 원하십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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