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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맛을 잃은 소금 · 빛을 잃은 등불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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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잃은 소금 · 빛을 잃은 등불(마5:13~16)

  바로 지난 주일 아침 아프간에 인질로 잡혀 있던 분들이 귀국했습니다. 공항의 입국장으로 나오는 그들의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보셨을 줄 압니다. 여러분, 그들을 본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고개를 푹 숙인 채 입국장에 들어서는 모습도 측은했지만, 그들을 향해 야유를 보내고 달걀을 던지는 보면서 가슴이 떨렸습니다. 언론 매체들도 살아 돌아와 다행이라는 말은 눈곱만큼 하고, 연일 비판과 비난의 내용을 쏟아놓고 있어서 우울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수고를 끼쳐서 정말 죄송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야속한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관광하러 혹은 돈 벌러 갔다가 인질로 잡혔었더라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 ? 아마 이랬을 것 같습니다. “에이, 그런 데를 위험하게 왜 갔어? 큰일 날 뻔 했잖아. 다음부터 조심해!” 뭐, 이러고 끝났을 겁니다. 비난을 해도 며칠 하다 끝냈을 겁니다. 그런데 이토록 거센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 그들이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온갖 비난은 그들을 향한 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 크리스천 전체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불만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독교 진리와 교회의 본질에 대해 모르는 데서 온 무지의 소치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무엇인지, 선교가 무엇인지, 선교와 봉사의 관계는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 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 중에는 정말 황당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계 인사들의 말을 인용할 때도 앞뒤 끊어버리고 자기들 주장에 필요한 부분만 언급하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자와 불신자는 전혀 딴 세계에 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거죠. 이런 비난은 일종의 ‘핍박’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잘못한 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난은 감히 핍박이라고 표현할 수 없겠죠. 정확히 말하면 ‘조롱’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님 때문에 핍박받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런 것이고, 그냥 참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해서 조롱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통렬히 반성하고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오죽 하면 세상에서 그런 취급을 당하는가? 그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 마태 5장~7장) 가운데 빛과 소금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도 금과옥조와 같은 귀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천국시민헌장’(天國市民憲章)입니다. 천국 백성 된 크리스천들의 축복과 삶에 대한 지침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세상에서 조롱당하는 게 아니라 칭찬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크리스천의 신분 : 세상에 살지만 천국에 속한 사람들

  우리가 예수 믿고 신자가 되면 신분이 바뀝니다.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합법적인 의인이 됨과 동시에 영광스런 신분을 얻게 됩니다. 

  ① 하나님의 자녀 :
  요1:12 보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훼미리가 된다는 겁니다. 놀라운 축복이죠. 그래서 이 세상에 살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 속에 복을 누리고, 이 세상 떠날 때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② 천국시민권자(天國市民權者) :
  또 신자는 천국백성, 천국시민권자입니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 그러므로 크리스천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크리스천은 소속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천국 소속이라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여행객과 같은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항상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을 빨리 떠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천국을 소망하되, 이 세상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2] 크리스천의 사명 :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크리스천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① 세상의 소금 : 부패의 방지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 소금은 조미료의 역할, 방부제의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소금으로 절여 놓으면 맛도 있고 썩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이처럼 죄악이 가득한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크리스천들이 세상이 죄악으로 부패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죄성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② 세상의 빛/등불 : 세상의 변혁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 소금이 소극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면 빛은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겁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의 어둠, 즉 죄악과 무지를 깨우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세상을 ‘변혁한다’고 표현합니다.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빛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자기 속에서 저절로 빛이 나오는 발광체(광원)가 아닙니다. 빛을 받아서 전달하는 반사체입니다. 오직 빛의 근원은 하나님,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참 빛=예수님) 그러므로 계속 예수님과 동행하며 본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빛을 반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세상을 죄악에서 보호하고 죄악에 물든 것은 고치고 변혁시키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든 말든 성경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크리스천으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3]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과오 : 맛을 잃은 소금, 빛을 잃은 등불

  안타깝게도 오늘의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보면 소금과 빛의 사명을 망각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말하자면 소금의 사명을 받았지만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말았습니다. 빛의 사명을 받았지만 ‘빛을 잃은 등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① 맛을 잃은 소금 :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고대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소금이 지금 우리와 다르게 바위로 된 ‘암염’(巖鹽 Rock Salt)입니다. 염분이 적고 흙이나 불순물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소금으로 정제한 후에는 흑이나 불순물을 갖다 버리게 됩니다. 그때 경작지에 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독한 성분이 있어 밭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갖다 버리게 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모습에 빗대서 사명을 망각한 크리스천을 책망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모습이 바로 맛을 잃어 버려짐으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기는커녕 한데 어울려 죄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의로운 행위 때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신해 주셨다는 복음의 진리를 믿음으로 얻은 ‘법적인 의’입니다. 그래서 ‘칭의’(稱義)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얻은 만큼 죄와 싸우며 예수님의 닮은 모습으로 성화(聖化)되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비록 100%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책망 받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 빛을 잃은 등불 :
  14절~15절.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 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크리스천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동네’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동네가 산 위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주목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등불을 말(그릇, 됫박) 속에다 숨겨두지 않고 등경(램프 스탠드) 위에 둔다는 것도 마찬가지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무관심한 것 같아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뒤에서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주시합니다. 좋게 보면 그만큼 기대한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죄를 짓고 살지언정 크리스천들은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더욱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빛을 잃으면 세상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심각합니다. 세상이 변화될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모습은 빛을 잃은 등불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되는데, 그럴 능력을 상실한 채 세상의 어둠에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수년 전 이름을 대면 알만한 모 대형교회 목사가 건축법을 어긴 것과 재정 비리, 개인 비리 등으로 인해 법정에 섰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판사가 유죄 선고를 하면서 판결문에 쓴 내용은 정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입니다. “당신처럼, 그리고 당신의 교회처럼 이렇게 한다면 도대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한 이유가 무엇이요?” 하면서 따끔하게 훈계한 겁니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될 사명을 가진 자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심지어 훈계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 어느 집사님의 전화 상담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분입니다. 직장에서 주위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는데, 자신만 정직을 지키려니까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 사람들 중에 모모 교회 직분자들이 끼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욱 괴롭다는 겁니다. 

  물론 일부 교회와 일부 크리스천들이 그렇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도가 넘어섰습니다. 물론 평균적으로 크리스천들의 도덕성의 수준이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한 교회가 한 사람이 잘못하며 전체가 욕을 먹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천들은 ‘공인’입니다. 공직자들만 공인의식(公人意識)을 가져야 되는 게 아닙니다. 크리스천이 실수를 하면 세상 사람들이 대뜸 그럽니다. 일개인이 그런 건데도 목사가, 장로가, 집사가, 권사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서 열을 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하신 후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요구하십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perfect)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perfect)” 그런데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욕을 당하시게 됩니다. 롬2:24 “ ...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그러면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가로막는 큰 죄를 짓는 셈입니다. 복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방기하는 교회와 크리스천들 자신입니다.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영국인 선교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방해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크리스천들입니다.” 그가 보기에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진리를 옳지만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실망해서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에서도 동일한 말이 성립될지 모릅니다. 

[4] 사명의 각성과 회복 : 맛을 되찾은 소금, 빛을 되찾은 등불

  여러분! 아프간 인질 사태가 왜 발생된 것 같습니까? 왜 하나님이 그것을 허용하셨을까? 지금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실 겁니다. 세월이 흐르면 선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회개하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① 변혁(變革)의 사명 : 증인의 삶
  소금과 빛의 사명은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까 나 혼자 혹은 우리끼리 따로 살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피하는 것이죠. 이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소금, 그냥 빛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과 섞여 합니다. 그렇다고 한데 어울리고 죄에 물들라, 적당히 타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혁하고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② 증인의 삶 : 입술의 증거, 삶의 증거
  그러면 증인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입술의 증거를 하는 것과 삶을 증거는 하는 것입니다.

i) 입술의 증거(전도) - 세상 사람들은 그럽니다. "종교가 여럿 있지 않느냐?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전도하지 말고 선교하지 말라!" 벙어리가 되라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지 말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진리는 예수 십자가 복음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거부하고 욕하고 그래도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물론 지혜롭게 해야죠.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것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똑같은 한국말이라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탈북자들이 느끼는 문화충격 같은 겁니다. 지금은 대충 남한 사정을 알고 오지만, 옛날에는 막연한 가운데 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런 분들도 있었죠. 남한 사회에 실상을 보여주려고 서울 시내를 보여주고 남대문 시장에 데려가니까 전국에 있는 자동차와 물건들을 다 모아놓고 선전하는 줄로 오해했습니다. 말이 이렇게 안 통하니까 정말 답답하죠. 한참 지나서 스스로 깨닫고 속아 살았던 것을 후회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알려 주어야 합니다.

ii) 삶의 증거(거룩) - 그런데 도통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삶의 증거입니다.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엡5:8~9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한 행실, 빛의 열매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성결, 정직, 절제, 겸손, 희생 등입니다. 성결, 깨끗하게 사는 겁니다. 정직, 바르게 사는 겁니다. 절제,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겁니다. 겸손, 예수님처럼 섬기며 사는 겁니다. 희생,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고 사는 겁니다.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듯이, 등불이 가름을 태워야 빛을 내듯이 손해 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무감독시험’에 관해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학교에서 개교 이래 12년째 시행 중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50년 이상 시행해 온 학교가 있습니다. 인천의 ‘제물포고등학교’입니다. 제 모교라 겸연쩍지만 그래도 좋은 이야기라 소개합니다. 소금과 빛의 정신으로 길영희 교장 때부터 시행한 겁니다.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 낙제를 무릅쓰고 컨닝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나왔습니다. 길 교장님이 낙제생들을 칭찬하며 진정한 승리자라고 하며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들이 전부 크리스천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가르치니까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신앙 양심을 가진 크리스천들은 그보다 더 양심적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이렇게 각오하고 살 때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의롭고 남은 부정하다고 판단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곤란합니다. 사실은 세상이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아직 변화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오래 전 자동차에 이런 스티커를 부치고 다니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내 탓이요!” 그런데 얼마나 웃겼는가 하면 뒤에 붙이니까 누가 봅니까? 남들이 봅니다. 사실은 누가 봐야 합니까? 내가 봐야 합니다. 앞자리에다 붙일 것을 뒤에다 잘못 붙인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런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부터, 나 혼자라도 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내 가정은 절대, 이 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감리교회를 창설하고 당시 부패한 영국 사회를 변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초는 옥스퍼드 대학의 아주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모임이 바로  ‘홀리 클럽’(Holy Club)입니다. 자신과 동생, 그리고 두 친구 넷이서 시작한 겁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보고 회개하고 자신들부터 바로 살려고 애를 썼을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영국이 변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크리스천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말씀을 명심하고, 부족하지만 나부터 우리교회부터 최선을 다해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도 살고 이 세상도 살리는 진정한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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