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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더니 (삼상 15: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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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더니 (삼상 15:17-23)

죠지 뮬러는 조용한 아침시간에 기도함으로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아침에 옷을 입은 후에 그의 첫 번째의 관심과 그의 일은 자신을 말씀과 기도에 몰두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후에야 그의 계획과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들 중의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안정되고, 용기를 얻고, 조심하게 되며, 내 마음을 견책하고, 훈계를 받곤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나의 마음은 주님과의 체험적인 교통을 하게 된다.”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생명수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말씀은 인생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인생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을 걷는 것이며, 참 생명의 길로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구원이 있으며, 기쁨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같이 찬미 예수, 418장(내가 너를 도우리라)을 부르시겠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작게 여길 만큼 겸손할 때에 왕의 자리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탈취하기에만 급급했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후회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도 높은 곳에 이르게 되지만, 말씀에 불순종하면 높은 곳에 있다 할지라도 낮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낮은 곳이 아니라 비참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에 따라 결정하시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시고, 말씀에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믿음이 성장할수록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울을 하나님께서 쓰신 이유는 겸손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삼상17장에 나오는 다윗을 쓰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본받을 만한 것 가운데 하나는 그의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대장군이었던 골리앗을 무찌르는데 있어서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을 신뢰하지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의롭게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를 사람답게 합니다. 우리들을 능력자로 만듭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간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목숨이 다하여 죽기 전 “담대하게 살며 여호와의 명을 지키라”고 유언하셨습니다. “네 하나님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라고 유언으로 남기셨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면 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고 한 것처럼,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실수한 것은 주의 말씀이라면 그렇게 겸손했고 순종했던 그가 물질 앞에서 처음의 뜨거웠던 신앙이 변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울 왕이 아말렉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모든 가축을 다 진멸하지 않고 끌고 온 사울에 대하여 사무엘이 질책하는 내용으로, 사울은 이 실수로 인하여 그의 왕위를 다른 자에게 빼앗기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빙자해서 자신의 부를 축척하고자 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사울왕의 잘못은 그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교회의 법도를 어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도리어 내가 손해보고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에 의하여 기름부름을 받아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가 보잘 것 없는 인물로 이스라엘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이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점차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들을 위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는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들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18절). 이것은 사울 왕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이 말씀에 순종치 않고 적의 좋은 것을 탈취하는 데만 급급하였습니다. 불순종한 사울 왕을 책망하는 사무엘에게 사울은 변명하기 또한 급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습니다.“(20-21절)

우리는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큰 것부터 순종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적은 것부터 노력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는 가장 작은 자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서 귀한 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직업, 맡은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작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도 없고, 크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도답게 열심히 감당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1절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정의 일원으로서, 교회에서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서는 사회에서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면 분명하게 큰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실 것입니다.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적은 것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것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즐겁게 살라고 하면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고, 담대하라고 하면 담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면 두려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 염려하지 않으면 됩니다. 겸손하라고 하면 겸손하시고, 입 밖에 더러운 것을 내지 말라고 하면 더러운 것을 내지 않으면 됩니다.

3.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희생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는 가장 큰 희생제물을 주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는냐?”고 묻으니, 사울은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양과 소를 잡아왔나이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도 편견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울처럼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자신이 순종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의 편견을 가질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물질과 축복, 물질과 평안, 물질과 권세, 물질과 존경, 물질과 부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2원론적인 신앙의 편견입니다. 물질이 축복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물질이 평안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물질이 권세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물질이 존경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물질이 부자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양과 소가 당시 제사의 일부는 될 수 있으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편견가운데 하나는 양과 소가 제사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의 전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들의 평소의 삶이 제자의 전부이며, 예배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편견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을 용납하고 평온함을 얻게 하시옵소서.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을 이해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과 제 자신의 편견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철저하게 순종을, 내 자신의 편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고침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게 하소서.”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서기만 하면 ①지혜롭게 됩니다. 시편 119편 98절에 보면 “주의 계명이 나와 함께 함으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②인생을 성공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99절과 100에서 보면 “스승보다 승하며, 노인보다 승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이며, 노인은 많은 것을 경험한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와 말씀을 실천하는 자는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되어 많은 자의 스승이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실천하는 자는 시행착오를 거쳐 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한 지혜로운 노인보다도 승한 사람이 됩니다. ③기쁘게 즐겁게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례미아 15:16에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어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에 즐거움이요” 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마4:4).
성경은 죽은 영혼을 소생하게 하며 신자의 신앙을 부흥시킵니다(시19:7).
성경은 사람의 병든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해부하고 치료해 줍니다(히4:12).
성경은 더러워진 사람의 정욕과 생각과 행실을 정결케 합니다(요15:3).
성경은 모든 의혹과 공포와 죄악과 사람에서 해방을 줍니다(요8:31-44).

23절에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과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술을 외우며 점치라 다니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변화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완고하면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며, 우리는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실천하여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복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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