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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기업분배 (수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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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기업분배 (수 17장)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있는 중에 땅을 분배 하는 것을 오늘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요셉의 자손들이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불평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인데 야곱이 너의 아들도 되라 라고 말했으므로 그들도 하나의 지파가 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땅을 차지하지 않고 각 지파에 대속되었는데 그들만 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파에 속해있으면서 제사 일을 감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땅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12지파에게 땅을 분배 하면서 두 지파로 분류된 에브라임, 므낫세 두 지파를 묶어 요셉지파라 하여 땅을 하나 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제비뽑을 권리를 하나 밖에 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6장 1절~4절의 말씀을 보면 땅을 어떻게 분배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요셉자체를 하나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점령하지 못한 땅을 개척하여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평할 때 당장 대답하지 않고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여호수아는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 진데 라고 딴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저것 이야기 하지 아니하고 “받은 것이 작습니까? 우리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있는데 정복해서 가지십시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자손들은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16절)라고 정복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는 설명을 하는데 그 말투는 ‘그 사람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아닙니까?’ 라는 말투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요셉의 족속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여러분들은 큰 민족입니다. 큰 권능이 있고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한 분깃만 드렸다고 그것만 받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능력 있는 분들이니까 그 산지도 얼마든지 잘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산림이라도 여러분들이 개척 하십시오. 그 끝까지 여러분들 것이 될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정보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여러분들이 능히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있고 때로는 항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에는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내가 말 하려고 하는 것, 내가 항의를 하려고 하는 것에 객관성과 타당성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면 말을 쉽게 하고 또 그런 자리에 있으면 말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우리가 큰 죄를 짓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입이라고 합니다. 즉 ‘말’이라는 것입니다. 내 말이 맞는가 한 번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일, 아내로 인해 남편이 상처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 남자들은 웬만한 것은 마음속에 넣어두기 여자가 평균적으로 한 7년 정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다 뱉어내고 남자들은 삼켜버리기 때문입니다. 말 할 때에는 자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내가 말하는 자리에 있을 때 더 그러합니다. 사실 저는 상담하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비중을 가지고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것을 다 의식하지 못할 때 자꾸 돌아서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반성해야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겸손했는데 날이 갈수록 안하무인격으로 나갑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대통령도 3년차가 되면 그렇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구역장도 돌아가면서 하는데 처음에는 성경도 잘 모르지만 다음해는 할 만 합니다. 그 즈음에 후배한테 물려주면 되는데 혹 3년까지 하게 되면 그 때 문제가 생겨납니다. 못할 때가 아닌 베테랑일 때 문제가 생깁니다. 말로 상처를 주고 선을 벗어나게 됩니다. 타당성과 이유가 있더라도 기다려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올 때 먹지 못하게 한 대표적인 음식이 돼지고기, 뱀장어 등이었습니다. 왜 못 먹게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돼지고기 안에는 육질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검증되지 않은 말이고 비늘 없는 것을 먹게 되면 힘, 스테미너가 생기게 되어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지나 올 때는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의 가정생활이 다 보이고 여인들의 몸이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유혹 받기 쉬우므로 음식을 제한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맞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 그런 까닭도 있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주 깊게 생각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물건을 절대로 탈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까닭 중에 하나는 당신 말에 순옹 하는지 시험 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가 그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못 먹게 하셨나요? 순종하는가를 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에서는 순종을 보신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많은 정복을 하게 될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을 할 때 빼앗기 위해서 정복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강도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무엇인지 몰라도 하나님이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넓게 생각하여 부부간의 예를 들겠습니다. 부부간에 대화를 해야겠지만 남편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때 무엇인지 몰라도 남편에게 고민이 있는가 라고 생각해 주는 것,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 친구들 간에도 까닭이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넓어지고 사람이 커집니다. 이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맨날 그 모습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커져야 합니다. 수학에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불평, 원망, 항의 등 말이 많은 사람 전체로서는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기업을 분배할 때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배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분배해야 되는가?, 모세가 많은 일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공평할까? 하고 고민과 고뇌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섰더라면 더 많은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준비하고 커 나가면 어느 날 일을 맡겼을 때 잘 감당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들처럼 하게 되면 일을 맡겨도 하지 못합니다. 부정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 자신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만약 어떤 보직을 맡았을 때에 정말로 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게 됩니다.

요셉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항의를 했는데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이 항의가 과연 정당한가요? 첫째로 우리에게 적용하기 위해서 살펴봅니다. 단순 사실을 보면 에브라임, 므낫세에 두 지파를 하나로 분배한 것은 사실 부당 합니다. 엄연히 두 지파로 갈라져 있었고 인구수도 에브라임이 32,500명이고 므낫세는 52,700명입니다. 합이 85,200인데 이것만 하면 다른 어떤 지파보다도 많습니다. 이럴 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차라리 안 읽으면 몰라서 괜찮은데 모든 것이 책 한권에 답이 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알면 그것이 전부 다 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알아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개연성을 가졌으면 합니다. 본래 야곱에게 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아들 둘에게는 다른 자식들의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두지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셉이 열 두 아들 중 하나이므로 아버지 야곱이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한 지파로 주는 것이 충분히 타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나안으로 넘어 오면서 요단 동편을 점령 했을 때 므낫세 지파가 자기들이 거기 있어도 좋겠다고 하여 므낫세 지파 반은 가나안 동편에 있는 땅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반 지파는 빼야 옳습니다. 므낫세 52,700명의 반은 이미 요단 동편에서 받았기 때문에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하므로 그런 것을 감안해서 계산을 한다면 두 지파의 합은 58,85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마 여기까지 생각 했을지 모릅니다. 58,850명보다 인구수가 더 많은 지파가 여러 지파였습니다. 단 지파가 64,400명, 잇사갈이 64,300명, 유다가 76,500명 스불론이 60,500명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여호수아가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혹 객관적 사실이 충분히 항의할만하다 하더라도 따르는 사람들의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세웠든지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임명 하셨든지 간에 지도자를 신뢰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밀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님들을 뽑았으면 약간 고리타분하게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왕 세웠으면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 어른들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 주어야합니다. 때로는 목회자가 나이가 적을 수 있습니다. 세상 경험이 없다보니까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도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 지도자라고 믿고 따라주고 신뢰하고 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른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을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아버지가 실수 하셨다고 할지라도 결정적인 면만 아니면, 죄짓는 것만 아니면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하더라도 어른은 어른대로, 지도자는 대로 신뢰하고 믿어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불평불만은 자기 자신에게 소외감을 줍니다. 불평을 해 보십시오. 이상하게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오히려 믿어주면 한 무리가 되어서 주류 속에 들어갑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류 비주류로 나뉘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 평생 비주류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야당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삐딱하게 가는 사람들을 두고 옛날 어른들은 어긋난 돼지발톱 이라고 하더군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여러분들이 비주류 속에 있어야 하지만 같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불평은 소외감이 생기고 비주류가 되게 하고 상대방 지도자를 당황하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또 불평은 누룩 퍼지듯 퍼집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 전체에도 퍼집니다. 주변에 항상 ‘No’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긍정이면서도 말은 ‘아니’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라는 말을 하세요. 요셉 자손의 항의에 대해서 혹시 요셉 자손이 우월주의와 공로주의를 가졌기 때문은 아닌가? 라는 우려를 해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멋진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봅니다. 내가 정말 어른이라면 어른의 노릇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옛날에 내가 공을 세운 사람으로서 다시 공을 세우는 일을 작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과거의 공로나 부모, 처가 등 누구 덕에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알아야 합니다.

갈렙은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정탐 후 모세에게 긍정적인 답을 준 사람이었고 그러한 공로에도 무엇을 달라고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할 수 있다고 했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밀어내지 말고 저에게 일을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갈렙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노블레스입니다. 이미 천국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당함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집이 없어도 밥도 사고 양보하고 사십시오. 어른인 여호수아의 멋진 조치를 보십시오. 요셉 자손들의 불평을 같은 수준으로 상대하지 아니하고 훌륭한 격려와 다른 땅을 정복해서 가지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은 잘 할 것이라고 하는 격려의 말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괜찮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대접 할 수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제가 신학을 하는 것이 변고였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놀라셨지만 ‘너는 잘 할 거다.’라고 말씀 하셔셔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수아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잘 할 것입니다. 그 조그만 땅 받아서 무엇을 합니까? 큰 것을 받으십시오.’ 받을 만한 사람이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의 그 무엇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 하면 자신도 크지 못하고 하나님도 주시지 못합니다. 계산 잘하고 따지지는 것 하나도 좋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똑똑한 것이 도움이 안 되고 쓸모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공히 돈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다고들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더 큰 어른인 것은 그 자신이 에브라임 지파였다는 사실입니다. 내 지역, 출신학교, 친한 사람, 내 아이들 등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생각 해 봅시다. UN에서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라, 왜 북한을 도와주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민족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 가까이에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책임은 예수 믿는 사람이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가까이 작은 돈을 가지고 도와 줄 수 있는 큰 대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식까지 뛰어 넘습니다. 여기에 따라서 얼마나 큰 그리스도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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