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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생활하는 나 (엡 4: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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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활하는 나 (엡 4:1~4, 11~16) 

교회는 유형의 교회가 있고 무형의 교회가 있다. 분명한 것 하나는 내가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가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교회 생활을 한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나는 어떻게 교회 생활을 잘 해야 하는가? 이는 헌금 생활, 기도 생활, 예배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구성원으로서 나, 교회로서의 내가 교회 생활을 어떻게 이해하며 알고 있는가 하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첫째, 나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엡4:1)

엡4:1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기서 부르심을 입은 부름은 두 가지이다.

① 의롭다함을 받는 구원에로의 부르심이다.

사람은 죄인으로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하나님은 버리지 않고 불러주셨다. 영벌에서 영생 얻는 구원을 주시려고 부르셨다.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크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왜 택하시고 부르셨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은혜이다. 바울은 죄인의 괴수요, 핍박자요, 포행자인 자신이 구원에로 부르신 것을 깨달았을 때 감격적으로 말하였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였으니...”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은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의롭다 하시려고 부르신 하나님은 부르심의 대상인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상에서 살던 나를 죄인인 나를 의롭게 하고 더 나아가 영화롭게 되는 존재로 부르셨으니 부르심을 생각하면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원망하고 의기소침할 수 없다. 

② 하나님은 나를 사역에로 부르셨다.

죄된 신분을 의로운 신분으로 바꾸신 하나님은 나에게 또 직임을 주셔서 하나님의 사역에로 부르셨다. 오늘 우리가 이 사역에로의 부르심을 모르고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성경을 보라.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되시고 만물을 충만케 하려고 땅에서 승천하신 주님께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직임을 맡기며 부르셨다. 교회에 머리되신 주님께서 주님의 지체된 우리들에게 다양한 직능으로 사역을 감당토록 부르셨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교회의 사역을 남의 일로 안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면 교인으로서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해이며 신앙 생활을 잘못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은 홀로 고독을 씹어서도 안되지만 극장에 왔다간 것처럼 다녀만 가서도 안된다.

엡4:1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였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사역을 외면하고 공연장에 앉았다가 관람이나 하고 돌아가는 삶이 아니다. 구경꾼 신앙 생활은 청산하고 자기 사역에 헌신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자기의 직임을 발견해야 한다.

교회 직임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오늘 본문 엡4:11은 5가지 직무를 언급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사역의 직임은 더 여러 가지이다.

롬12:6~8을 보면 다양한 은사를 언급하는데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구제, 다스림, 긍휼을 베푸는 일을 말하고 있다. 고전12:8~10을 보면 사역의 은사가 여러 가지인데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 예언, 영분별, 방언,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다. 주님이, 성령이, 하나님이 아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여러 가지 사역의 직임을 맡기시고 일하는 자가 되도록 부르신 것이다. 부르신 하나님 앞에 응답해야 한다. 그동안 부르심의 소리를 듣지 못해서, 나의 은사를 몰라서, 직임을 몰라서 구경했는지 모르지만 사역에로 부르신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축복받는 길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도가 사도로서 일하고 선지자가 선지자로서 선포하고 교사가 교사로서 일해야 칭찬을 듣는다. 다른 직임이 좋아보여서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이 다양한 직임을 주셨건만 침묵하고 은사를 땅에 감추어 두는 것도 옳지 않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므로 주님의 몸이 세워지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가령 여러 직임 중 예언 사역자가 예언의 은사만 바로 사용한다면 교회는 건강하게 된다. 성령에 민감하지 않고 말씀과 교회 공동체에 검증을 받는 예언의 덕을 모르기에 은사를 가지고도 일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권사님 가정이 새롭게 이사를 와서 그곳에서 속회 예배를 드리는데 처음 만난 모임에서 기도하는 집사님의 입에서 예언이 나왔다. 이 가정의 자녀가 세 명인데, 오래 전 큰 아들이 죽어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는 예언 기도가 터져 나왔다. 기도가 마쳐졌을 때 권사님은 흐느껴 울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한 자녀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정말 큰 아들이 물에 빠져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예수를 믿다가 사춘기 때부터 교회를 잘 안나갔는데 가끔 교회 나가던 아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잘 몰라서 더 슬퍼했는데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예언이 나올 때 그 부모님은 마음이 짐이 벗어졌다. 기쁨이 회복되어 웃음을 되찾았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는 그 직임으로 일해야 한다. 기도하고 조심함으로 일한다면 큰 덕을 끼칠 수 있다.

또한 교사의 직임을 통해 인생의 운명이 바뀐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가르치는 한 선생님 때문에 장관이 되어서도, 사업가가 되어서도 복음을 위해 산다. 우리는 사역에로 부르셨다는 음성을 듣고 어떤 직임을 가지고 일하든지 마음과 몸을 드리는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 사역의 목적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엡4:12)

엡4:12을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 안에 20가지, 30가지가 되는 다양한 직임을 주셔서 감당케 하는 목적은 이렇다.

①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이다.

온전이란 이 말은 헬라어로 “카타르티스몬”이다. 어그러진 뼈를 바로 잡는다는 뜻의 말이다. 즉, 잘못된 것을 잘 맞혀서 좋은 상태로, 건강한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성도가 성도다워지도록 하는 목적이 직임을 주신 이유다. 교회에 나와 성도는 되겠지만 세속적 가치만 주장하고 주님을 위해 걷지 못하고 주저 앉아있고 편견되게 생활하는 성도를 바르게 살도록 돕는 것이 내가 직임을 감당해야 할 목적이다. 사역이 잘 이루어져야 엉터리 크리스챤의 삶이 변화되고 고쳐져서 참된 크리스챤이 된다.

②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

봉사 즉, “디아코니아”란 남을 섬기는 일이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자를 이웃으로 알고 섬기도록 감동과 감화를 주는 것은 직임 받은 자가 은사대로 잘 일할 때 그 목적이 이루어진다. 가난하고 외롭고 상처 입은 자에게 손을 내밀고 허리를 굽히는 교인이 되게 한다. 그것이 사역 맡은 이의 목적이다.
 
③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교회의 지체들에게 준 직임은 파괴, 갈등, 대립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내가 받은 은사나 직임만을 지상 최고의 은사로 알고 교만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세워지지 않는다. 직임을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교회를 세워가려면 받은 은사가 다 다르나 서로 서로 몸을 세우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 결국 몸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 직임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방언이 최고이고, 예언이 최고이고 신유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말고 몸을 세우기 위해 모두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엡4:13~15)

엡4:3을 보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하였다.

엡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서로 달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분이기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 오직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 되기’ 그것은 주님의 소원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나는 겸손으로,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으로, 용납함으로 하나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되는 과정 속에서 성숙해진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하고 자라나는 성도는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러 머리되신 예수를 닮는데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완성이다.

교회 생활로의 부르심! 때로는 우리가 미숙하여, 거듭나지 못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날마다 자라나고 성화되어 가는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관계 속에서 하나를 이루며 부딪힘, 갈등, 적대감을 넘어서서 공동체로서의 몸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작은 예수, 나의 사는 모습에서 예수가 보여져야 한다.

지난 번에 있었던 논산 지방 연합 집회시 어느 교회 성도가 참석했다. 헌금을 드리고 갔는데 “우리 목사님 속에 지니고 계신 예수님을 저들이 모두 소유하게 하소서!”라는 기도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예수님을 닮기에 너무도 거리가 먼 나 자신, 정말 그 기도 제목대로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 종인가?

나이팅게일이 크리미아 전쟁 시 부상병을 간호하는데 고통받는 부상병이 나이팅게일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게 예수님 같습니다.” 그 병사는 나이팅게일을 통해 예수를 본 것이다. 성도는 우리 속에 예수가 사는 사람이다. 머리되신 교회에로 부르심 받아 지체가 되었으니 교회 생활을 하는 최종 목적은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 하루를 새 사람으로, 새 생활로 살아가자. (엡4:17~32)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날마다 다른 이들과 하나를 이루어 거룩하고 성숙하여지기를, 작은 예수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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