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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원의 항구로 인도 하시리라! (시 107: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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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항구로 인도 하시리라! (시 107:23-30)

바다의 항해는 흔히 인생의 여정으로 비유됩니다. 바다는 끝없이 잠잠하면서도 어느새 광풍과 폭풍이 일어나며, 성난 파도가 힘차게 요동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금방 조용해집니다.

본문은 마치 인생의 한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①광풍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고통하고 고뇌하는 모습과 ②그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목적지를 찾고 ③결국은 안전하게 소원의 항구로 인도함을 받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할렐루야 !

1.인생행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죽음과 같은 곤경을 겪습니다. 본문은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 도다”(26절)라고 말씀했습니다.

평온하고 잠잠하던 물결이 갑자기 성난 파도로 돌변합니다. 때 아닌 광풍과 폭풍이 불며 배가 암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불행한 사태가 돌출하는 곳이 바다입니다. 이처럼 인생길에도 자신의 뜻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그 곤경으로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잃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인생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으로 심한 공포가 엄습합니다. 언제 어떻게 자신이 파멸될 줄 모르는 허무한 삶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 땅의 삶을 “나그네 같은 인생”이라 했습니다.

절망과 허무를 겪습니다. 본문에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27절)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허무와 고독이 두려워 순간의 쾌락을 좇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소외시키며 도피적인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연을 탐미하여 우상화함으로써 텅 빈 공허감을 충족시키려 합니다. 결국은 범신론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좀 더 고상한 사상에 심취하여 허무와 절망을 극복하려 노력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 방법으로는 영혼의 공허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도리어 거기에 매혹되면 될수록 영혼의 공동은 더욱 커져 갈 것입니다.

고구려 유적지 탐방 코스 중 백두산 천지 등정이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1년에 200일 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100일 정도는 흐리게 모습을 드러내고, 60일~70일 정도 그 모습을 청명하게 드러낸다고 합니다.

앞팀은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 뒤따르는 팀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앞차는 보았는데 그 뒤차는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어느 팀은 백두산을 오르니 천지는 보이지 않고 검은 구름과 안개만 보여 이튿날 다른 탐방을 포기하고 또다시 백두산을 등정했는데 또 실패하여 고구려 유적지 탐방 계획이 헝클어져 자기네들끼리 싸움만 하다가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천둥 울리고, 벼락 치는 등정 길에 우산을 쓰고 가다가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비통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생행로에는 지각이 혼돈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2.하나님을 만난 자는 평온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모시면 영혼의 자유를 찾습니다. 

어느 날 왕이 길거리에 나갔다고 남루한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왕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어허, 자네 참 불쌍하구먼”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어째서 제가 불쌍합니까?”라고 반문하자 왕은 얼떨떨해 하며 “하지만 자넨 거지가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실 제가 남으로부터 동정을 받기는 하나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만 나는 비가 오나 맑거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거나 먹지 못해도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요. 내게 뭐 불쌍한 데가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족할 줄 아는 “에크하르트”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 도다”(29절)라고 말했습니다.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광풍을 꾸짖어 잠잠케 하심으로 인간의 불안한 항해를 안전케 하셨고 하늘의 길을 제시함으로 인간의 텅 빈 공허와 절망을 치료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인생은 어떠한 광풍과 과도에도 두려움이 없으며, 하늘로부터 주시는 은혜 속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항해를 마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 여대 교수였던 한분이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하던 도중 뜻하지 않는 유방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받고 완쾌되어 강의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다시 목암과 눈앞에 걸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절망에 빠져 생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이웃 사람의 권고로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던 중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때 “네 죄를 모두 사했다. 너는 이제부터 사랑하는 나의 딸이다”라는 음성을 들었고 그의 모든 병도 깨끗이 씻겨 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오늘 본문은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30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섭리와 뜻을 깨달으며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는 파도가 잠잠해도 혹은 광풍과 폭풍이 불어와도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며, 목적지를 이루기 위하여 서서히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통하여 그것을 이루어 가도록 하십니다.

원칙을 세워 나가며, 원리에서 탈선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인내하면서 우보천리의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은 날이 반드시 도래하게 됩니다.


3.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인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31, 32절)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자랑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해 보아야 인내심이 생깁니다. 가난해 보아야 단돈 1000원을 가지고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버스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옛 선조들이 한반도를 지키시느라 얼마나 피 눈물을 쏟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되어 보아야 집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나온 삶에서 눈물을 흘리며 좌절을 맛보며 깊은 탄식도 자주 했지만 그것이 다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그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 실패작이 아닙니다. 


끝맺는 말

러시아의 어느 노부부가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부인이 소나기를 맞는 것이 애처롭고, 소나기 내릴 때 끝까지 옆에 있어준 부인이 고마워 입술에 키스를 하는 중 벼락이 할아버지에게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노부부는 기절을 했습니다. 행인이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병원에 둘은 멀쩡하게 깨어났습니다. 연구 결과 할아버지에게 떨어진 벼락의 전류가 할머니의 입술을 타고 할머니의 팔을 통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간 흔적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시편 2:12절에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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