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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준비 (벧후 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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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준비 (벧후 3:8-14)

사도 요한은 사도들 가운데서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유일한 사람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거의 백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평안한 일생을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일평생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했으며, 로마 황제 도미티안의 핍박을 받아서 지중해의 외딴 섬인 밧모섬에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거기서 사도 요한은 주후 96년경 어느 주일날 영광중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종말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 계시록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초대교회 당시로부터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겪을 일들을 미리 보여 주셨으며, 또 성도들이 누리게 될 천년왕국과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의 복락을 계시하시고 이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서두에 기록하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하였습니다. “때가 가깝다” 함은 주님의 강림이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의 때로부터 벌써 1900년이 지났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주님의 강림이 그만큼 임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고 하셨는가 하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를 다 마치시고 하신 말씀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의 중심 메시지는 ‘오실 메시야’와 ‘다시 오실 메시야’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이미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류의 대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삼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비롯한 오백여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로써 ‘오실 메시야’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은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성경의 예언도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습니다.

초림하실 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셔서 여물통에 누이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 요셉의 슬하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한 동안 목수 노릇을 하셨습니다. 삼년 반의 공생애 기간에는 거처하실 집조차 마땅치 않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편안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 실력자들의 핍박을 받으셨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한 마리의 어린양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 놓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초림 때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강림하실 때,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심판할 권세를 받아서 영광중에 오실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이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4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세상 사람들은 가슴을 치면서 애곡할 것이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큰 기쁨과 감격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의 강림이 심히 가까운 말세에 사는 성도들이 대비할 바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이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주의 강림이 임박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일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은 비밀에 속합니다. 한 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이 언제 강림하실는지 여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지만, 그 일시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일시를 미리 알려주시면 우리가 더 열심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 강림 일시를 모르는 편이 우리에게 더 유익이 됩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므로 항상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강림이 먼 지, 가까운 지는 시대의 징조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고 하셨는데,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재림하실 일시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시대의 징조를 살펴보면 이 시대가 종말에 어느 정도 가까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당시의 시대상은 예수님의 강림이 임박한 말세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또한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도 죄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또 자기의 영원한 운명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이 땅의 일에만 관심을 쏟고 육신의 안일과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노아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노아 시대와 일상생활 속에서 첨단 과학의 혜택을 누리는 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 그 자체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밤낮 육신의 즐거움과 물질적인 번영만을 추구하였듯이, 현대인들도 그런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영혼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몰두하는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강림이 임박한 때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몰두하는 것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7절 말씀과 같이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합니다. 아무리 밝은 대낮이라도 잠든 자에게는 낮이 아니요 밤일뿐이며, 재물이건 명예건 권력이건 쾌락이건 술이건 간에 그것에 취해서 사는 사람은 밤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온 인류가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육신의 일에 몰두해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나침반과 키를 상실한 배와 같이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3,4) 하였는데, 이와 같이 오늘날 사람들은 구원의 진리에는 귀를 막고 자기들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허탄한 이야기에는 얼마나 열심 내는지 모릅니다. 현대는 엔터테인먼트 곧 오락과 유흥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즐길거리를 분주히 찾아다닙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에 관해서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단지 오락을 원합니다.

이는 현대의 많은 사람이 어두운 밤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무언가에 단단히 취해서 제 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것을 볼 때,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 직전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세태를 보면서 한탄만 하거나 혹은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이 세태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아 이 시대가 주님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때임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깨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깨어서 주님의 강림을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해해서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도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우리 사회는 시한부 종말론자들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선전하였는데,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낭패를 당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즈음. 제가 아는 어느 남자 집사님이 시한부 종말론에 넘어갔다고 해서 만나본 적이 있는데, 성경을 근거로 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도 도무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가 무어라 해도 그 해 10월 28일에 주님께서 강림하실 줄 믿는다고 하면서 이미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때 저는 사람이 미혹되면 저렇게도 되는 구나, 영적 미혹이 저렇게 무섭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드디어 10월 28일이 왔으나, 그들의 말과 같이 주님의 강림은 없었습니다. 그 때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했던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 가운데는 기독교 믿음을 저버린 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후유증은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한국 교회의 신자들의 주님의 강림에 대한 기대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주님의 재림에 관해 설교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휴거 소동이 한창 일 때에도 성경을 바로 믿었던 성도들은 시한부 종말론이 불발로 그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주님의 강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마치 밤중에 모든 사람이 곤히 자고 있는데 “불이야!”라고 외친 사람들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불이 났다는 소리에 놀라서 잠을 깨서 한 동안 허둥대다가 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자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소동을 피운 거야?”라고 투덜대면서 다시 잠자리에 누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된 것이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재림에 관한 모든 예언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것이므로 항상 깨어서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밤에 도적이 아무도 모르게 침입하듯이 예상치 못했던 때에 갑자기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열 처녀는 신부의 친구들로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러 등을 들고 나갔습니다. 처녀들은 신랑이 몇 시에 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그 밤에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초저녁부터 등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아마 신랑은 초저녁에 올 수도 있고, 자정이 넘어서 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새벽에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밤이 새기 전에 올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조바심치던 처녀들은 신랑이 더디 오자 그만 졸기 시작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도, 미련한 처녀들도 졸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기름을 다 준비해 왔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당장 쓸 기름만 등잔에 담아 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자 불꽃이 가물거립니다. 한 밤중에 “신랑이니 맞으러 나오라” 하는 외침이 들려 왔을 때에는 미련한 처녀들의 등불에는 기름이 다해서 그만 신랑을 맞이하러 나갈 수 없었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것은 영적으로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기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은 주님의 강림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신앙생활에 나태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직장과 사업장에서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 교육도 시키고, 노후 대책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일에만 몰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할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감당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강림을 대비하는 데도 힘써야 합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강림을 대비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종말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혹시 주님께서 우리의 생전에 강림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더디 오시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갈 것입니다. 주의 강림이 예고 없이 임하게 되듯이, 개인의 종말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떠날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우리를 부르시면 이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종말도 준비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그 해 농사가 잘 되어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곡식 쌓아 둘 곳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지금 있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거기에 그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부자는 그 밤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모든 소유를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재물을 벌어서 쌓는 데만 몰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듯이,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딤전 6:7-8).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 즐거움에 탐닉할 때가 아니라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권면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도적 같이 강림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잠자는 사람들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 어둠의 죄악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사는 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우리의 목적은 강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영원히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믿음 생활에 힘씀으로 언제 주님께서 강림하시더라도 기쁨으로 영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깨어서 영원한 상급을 준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어떤 신자들은 주님의 강림이 더딘 것을 보니 재림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또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도적처럼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불시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강림하시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마 24:27).

그 날에는 하늘과 땅이 뜨거운 불에 다 녹아지고 모든 사람의 행위가 숨김없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짐 받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았으므로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날,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상벌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3장 13절로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생전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 다른 성도들은 다 칭찬과 상급을 받는데 나만 겨우 턱걸이로 구원 받는 처지가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때 가서 후회한들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신 후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마치 종들을 불러 결산하는 주인과 같이 장차 우리가 행한 대로 상벌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불로 시험할 때 금으로 지은 자는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상을 받게 되지만 흙이나 나무나 짚으로 지은 자는 불을 통과할 때 다 타버려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고 마치 불 가운데 건짐 받은 사람처럼 겨우 구원만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건강이 있을 때 열심히 주의 일에 힘쓰십시오. 전도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때를 놓치지 말고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내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자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신 주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칭찬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을 섬기느라 핍박과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하였고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런즉 지혜 있는 자답게 영적으로 깨어서 시대의 징조들을 보고 주님의 강림이 임박하였음을 파악할 뿐 아니라, 세월을 아껴 열심히 상급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 예수께서 언제 강림하시더라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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