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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추석에 추억한다 (레 23: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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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추억한다 (레 23:33-43)

추석입니다.
나는 추석이면 늘 추억되는 사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2004년 44명 목사님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지낼 때였습니다. 한 달 가량을 지내다 보니 모두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두 갈릴리 바다로 나갔을 때가 바로 추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석달은 유난히도 밝았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갈릴리 마을의 야경이 갈릴리 호수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에 불을 피워놓고 바베큐 파티를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춤을 추면서 즐기던 추억은 추석이면 늘 생각나는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추석이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달
2. 송편
3. 벌초
4. 제사
5. 민족 대이동
이런 것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적으로 추석에 추억하며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요5;3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절기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형입니다. 구약은 수건을 벗고 보면 모두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2-18)
레위기 23장은 절기장입니다. 이 곳에 나오는 7절기는 모두 모세가 기록하였고 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제1절기 유월절(레23;4-5)------그리스도의 죽음 
제2절기 무교절(레23;5-8)------그리스도와의 친교
제3절기 초실절(레23;9-14)-----그리스도의 부활
제4절기 칠칠절(레23;15-22)----그리스도와 성령의 교대
제5절기 나팔절(레23;23-25)----그리스도의 성도 부름
제6절기 속죄절(레23;26-32)----그리스도의 사죄
제7절기 초막절(레23;33-43)----그리스도의 성도 추수

그런데 추석은 초막절에 해당합니다. 초막절이 주는 교훈이 바로 추석이 주는 교훈입니다.초막은 어떤 집입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화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왜 베드로는 궁궐을 짓자고 하지 않았을 가요?  왜 큰 저택을 짓자고 하지 않았을 가요? 왜 하필이면 초막을 짓자고 하였을 가요? 초막은 풀로 얼기설기 만들고 과일들을 달아 놓은 원두막같은 것입니다. 어설픈 임시집입니다.
세 분은 모두가 위대한 분들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들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그리고 모세를 그리고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을 만들자고 하였을 가요?
이스라엘 백성들 추석 즉 초막절이면 초막을 만들어 놓고 일주일을 지내야 합니다. 모세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초막절이 되면 집집마다 초막을 지어야 합니다. 뜰이 있는 집은 뜰에 초막을 세웁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베란다에 초막을 만들어 놓고 밤에는 초막에서 자야 합니다. 세들어 살기에 초막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은 회당에 공동 초막을 만들어 놓고 밤에는 그 곳에 가서 자야 합니다.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은 배 갑판위에 초막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자야 합니다.
여행중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머므는 호텔방에 풀을 뜯어다 놓고 지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억하며 지냅니다. 우리가 추석에 생각하여야 할 것과 똑같습니다.

1.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은 알곡과 죽정이를 가르는 절기입니다. 한 마디로 초막은 심판입니다. 초막은 원두막입니다. 원두막인 초막에 알곡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쭉정이는 밖에서 불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초막입니다. 그래서 추석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막절 즉 추석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중요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초막절에 가르치실 때에는 외쳐 가르치셨습니다(요7;28)
성경전체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외쳐 가르치셨다는 것은 이 곳뿐입니다.그 때 외치신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3-37)

알곡과 죽정이를 분명히 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찾아도 찾지 못 할 것이고 예수님에게 오는 자는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에서 살고 있을 때입니다. 알곡과 죽정이를 갈라서 초막을 지은 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그들은 잘 알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자와 만나지 못 할 자의 심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초막 즉 추석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과일이나 새 곡식을 먹으면서 맛만 느끼지 말고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서를 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이런 유서를 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던 그 부자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니지! 죽은 후에 베플면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았을 때에 해야지.>
이렇게 외친 후 그는 유서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베플면서 살았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을 대비하는 현명한 부자입니다.
초막절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십시다.

몇 년전 우리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앙케이트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한 가정에서 한 장씩 낸 것같습니다. 191장 접수되었습니다. 12 가지 질문중에 첫 질문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귀하는 구원의 확신을 확실히 가지고 있습니까?                       
  (1)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확신이 있다  (  )                       
  (2) 그저 그렇다                (  )                       
  (3)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                       

이에 대하여 162명이 누가 무어라고하여도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저 그렇다가 19명,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10명이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대부분이 구원의 확신이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모두가 영적 초막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공로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포레옹이 바삐 길을 지나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소녀가 갑자기 달려 오더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폐하! 제 아버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포레옹은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나포레옹이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어떤 사형수도 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판단하여도 그 아버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는 법을 어겼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러자 소녀는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황제님!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저는 황제님에게 법의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님의 자비를 원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나포레옹이 말했습니다.
<네 말을 듣고 네 아버지를 용서하니 기쁨으로 돌아 가거라.>
우리는 하나님앞에 공의의 심판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심판을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로 심판하여 주십니다. 용서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추석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추석에는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기억하라.>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본 집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해마다 추석이 고향을 찾기에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0시간이 걸립니다. 미국가는 데 10시간 좀 넘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7일간 초막절이면 초막에서 지내면서 애급에서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땅은 나그네 땅이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생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서울에도 200여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데 그들도 초막을 만듭니다. 서울에 만들어 놓은 초막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훈련기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땅에 나그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초막같은 일시적인 집에 불과합니다.
추석을 지내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같이 동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1) 추석때면 조상묘를 성묘합니다. 여름내내 산소에 자란 풀을 잘 다듬어 주는 좋은 풍습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초막에서 살지는 않는다고 할 지라도 산소에 벌초하면서 인생은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숙연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무덤으로 들어가야 할 나그네임을 진하게 느껴야 합니다.

(2) 추석이면 고향을 찾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인간은 고향을 찾고 싶어 하고 또 고향을 찾고 싶어 합니다. 나는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핏덩어리 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라나 이복에 가서 해주 32km 라는 표시가 나오니까 불현듯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천국입니다. 천국갈 것을 늘 생각하는 마음이 추석을 통하여 더 진하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3)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가는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그것처럼 하늘나라 가는 길은 즐거운 길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즐거워야 합니다. 천국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4) 고향에 가면 부모를 비롯한 반가운 이들을 만나듯이 천국에 가면 그리운 모든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가면 그리운 분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모두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무덤에서 만나는 이들을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것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신납니다. 나는 그토록 그리운 어머니를 만날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먼저 보낸 사랑하는 자녀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추석은 만남입니다.

(5) 귀성열차나 비행기표나 고속뻐스 표를 지닌 자는 고향으로 가는 보증입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표를 구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사놓은 사람은 안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천국가는 보증표라는 사실입니다.
추석에 우리는 나그네임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몇 년 전에 큰 부자 한 명이 죽어가면서 유능한 의사들 수 십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생명을 30년만 연장시켜 주면 1000억을 내놓겠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10년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국에 해양 생물학자 재키 쿠로트 박사의 체험담입니다.
그가 런던 해족관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고기들을 기를 때였습니다. 더러운 바닷물보다는 바닷물과 똑같은 깨끗한 바닷물을 인공으로 만들어 고기들을 넣으면 고기들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닷물 성분과 똑같은 바닷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기들이 모두 비실비실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닷물로 넣었더니 생기를 되찾아 날세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추석이면 고향을 찾지만 정말 참 고향은 천국입니다. 그 곳에서만 인간은 참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하나님안에서 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추석에는 나눔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은 나누는 계절입니다.
추수의 계절이기 때문에 빈부차가 심해지는 절기입니다. 추수하는 사람은 부요하여집니다. 추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수할 것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수할 때 10분의 1 가량은 추수하지 말고 남겨두라고 추수법칙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이 같이 추수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추석은 나누는 절기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가위만 같아라.>
이것이 우리 민족이 추석때면 늘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속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야야 합니다.
이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은 이 노래를 이렇게 변질시켜 부르고 있습니다.
<달 달 무슨 달 통장같이 텅빈 달>
우리 민족은 추석이면 밝은 보름달 밑에서 강강수월래같은 춤을 추면서 온 동네가 즐겼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습니다.
초막절 바로 전 절기인 대속죄일에는 슬퍼하여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막절에는 즐거워 하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39-40)

추석은 나누는 절기입니다.
설에는 떡국을 먹고 추석에는 송편을 먹습니다. 절기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설에 먹는 떡국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떡국은 비스듬이 자르는 것이 아니라 동전처럼 동그랗게 잘라 끓여 먹어야 합니다. 동전 돈을 끓여 나누면서 축복하는 음식이 떡국입니다.
송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송편안에는 여러 종류의 맛있는 속이 들어 갑니다. 밤, 깨, 팥 그리고 고구마 등 안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꿀까지 넣습니다. 다양한 송편을 만들어 이웃끼리 서로 나누는 떡이 송편입니다. 겉은 같지만 속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송편을 만들었으니 내가 만든 송편을 맛보라고 서로 나누는 떡이 송편입니다.
추석은 나누는 절기입니다.

다이제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 어느 제철공장 지대에 위치한 교회에서 생긴 일입니다.
제철경기가 너무나 극심한 불경기로 수많은 노동자가 실직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살림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굶는 이도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중 광고시간이었습니다. 한 명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모자속에는 5달러짜리 돈 100장이 들어 있습니다. 모두 500불입니다. 나는 그 동안 교회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번도 못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 모자를 돌리려고 합니다. 저의 성의로 알고 한 장씩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저를 편안하게 하여 주시는 길입니다. 물론 저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인들에게 그 모자를 돌렸습니다.
돈을 꺼내 가는 이도 있었고 돈이 있는 이들은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돈을 오히려 집어 넣는 이도 있었습니다. 다 돌아서 모자 속을 보니 모자속에는 1,067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것을 보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둥같은 일군이 많군요.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뿐이군요.>
나눔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에는 추억하여야 합니다.
1.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추석에는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추석에는 나눔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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