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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가족 구원을 위한 기회로 삼자! (창 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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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원을 위한 기회로 삼자! (창 6:13-18)

미국에서 결혼 생활 21년 차인 한 남자가 주말을 앞두고 아내로부터 아주 희한한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동안 21년간의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들의 부부 관계가 다소간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생동감을 상실하고 있는데 이번 주말에 우리 부부 관계의 활력을 더하기 위해서 내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뭐냐고 그랬더니, 그것은 아내가 지정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데이트를 하라고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아내의 말을 막았지만 아내는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아내는 자기가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좀 생각을 해 보면서 이것이 틀림없이 우리의 부부관계를 윤택하고 원만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단 데이트는 그녀가 제안하는 규칙과 방식에 따라야 한다는 그런 제안이었습니다.  이어서 아내는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의 저녁 식권과 영화관 티켓 두 장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식사하면서 주로 상대편 여인의 과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줄 것과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옆에 앉아 있는 그 여인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있을 것.  그리고 밤 10시 전까지는 반드시 귀가하여 데이트에 있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자기에게 들려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신 도대체 제 정신이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한 남편은 "그러면 당신이 지정한 그 데이트 상대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지정한 데이트 상대는 자기 어머니였습니다.  실망하셨습니까?

사실 이 남자는 어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지도 너무나 오래된 일이어서 아내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칠순이 된 어머니는 20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흘로 살고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아들이 전화해서 "어머니, 이번 주말에 저하고 데이트해요"했더니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오래간만에 어머니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이 남자는 자신의 가슴이 설레이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노인 아파트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이 데이트를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곱게 단장을 하고 화장까지 하시고, 그리고 자기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자기 어머님을 차에 태우고 아내가 지정했던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식당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면서 "어머니, 뭐 드시겠어요?"라고 묻자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얘야, 네가 어렸을 때 말이야.  내가 너에게 '뭐 먹고 싶니?'라고 물었는데 이제 세월이 우리를 거꾸로 만들었구나."  이제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충고한 그대로 어머니의 이야기, 쉴새없이 오래간만에 쏟아져 나오는 어머니의 과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경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식당에서 나와서 아내가 지정해 준 극장을 향했습니다.  극장에 앉아 그는 오래간만에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함께 그 영화를 지켜보았습니다.  극장에서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눈은 흥건한 눈물과 감동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파트에 다시 도착할 무렵 어머니가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아, 오늘 이 데이트는 네 생각니?"
아들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사실은 자기 아내의 제안이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이야.  다음 주말에는 네 아내에게 내가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전해 주겠니?"

행복해 하는 어머니를 놓아두고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소중한 아내의 배려가 눈물겹도록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자기 집 아파트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는 자기 집이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을 그는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치킨 숩 스토리'에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가정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비결은 서로를 배려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행복한 가정에서 평안과 기쁨과 자신감과 같은 무한한 삶의 활력소를 공급받게 됩니다.  가정은 사랑과 기쁨과 보살핌이 넘치는 곳입니다.  또한 가정은 인간의 모든 이해와 타산이 초월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가정은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은 가정 생활을 통해서 건강한 삶의 원칙을 배웁니다.  가정 생활이 불행하면 사회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따라서 가정은 모든 생명의 텃밭입니다.  힘의 원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 위에 제일 위기 극복 능력이 강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본문에는 서로의 배려를 통해서 악하고 어두운 시대에서 한 가족 전체가 구원을 경험하고 행복을 경험한 한 가정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노아의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주간은 추석 연휴 주간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맞이하는 이 추석에 우리들에게는 믿음이 없는 가족들을 만나야 하는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번 추석에 내 가족과 이웃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구원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는 우리의 식구들을 만날 때에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이런 가족 구원의 거룩한 숙제, 이 숙제를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가족 구원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을 때 그것은 바로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시는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 방주는 그 시대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아라는 특별한 가정의 가족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방주의 크기와 구조가 완벽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노아에게 계시되어졌습니다.  이 방주는 노아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마치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이셨던 것과 동일합니다.  드디어 방주가 다 만들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18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18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이 방주는 인류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한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아가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마침내 자기의 가족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유명한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 이 대목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노아의 믿음의 소중함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과 계획을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구약시대, 옛날 언약의 시대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약의 시대인 오늘의 시대를 향해서도 질적으로 변함이 없는 동일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노아의 시대, 그 시대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셨던 하나님,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자를 준비하셨습니다.  방주 속으로 들어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도행전 16장 31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으십시오.  믿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노아가 살고 있던 시대에,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구원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내 쥐꼬리만한 선한 행동이 나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선행이 결코 구원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는 그 순간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용하고 믿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노아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따라가는 의의 상속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 구원의 아름다운 은혜가 우리 가정 속에서 일어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받아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지 않는 내 가족과 이웃은 영원히 버림받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이 계획이 있습니다.

가족 구원, 어떻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까?

두 번째, 우리가 이 구원의 계획을 믿는다면 그것을 전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전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의 모든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순간 기쁨과 구원의 확신이 내 속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면 이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 이웃들에게 대한 관심과 연민의 정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어야 합니다.  내 안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데 어떻게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예레미야는 전도하지 않으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친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왜 전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물론 전도를 하지 않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직도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보십시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었다면, 그리고 그 구원의 기쁨이 내 속에서 샘솟고 있다면, 그리고 구원의 확신의 감격이 나를 다스리고 있다면 우리의 이웃들을 생각했을 때에 어떻게 이 감격을 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구원을 거절함으로 성경의 증언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으로 믿고 있다면 어떻게 전도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노아가 과연 전도했을까요?  우리는 전도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가정하지만, 그러나 창세기 6장에는 노아가 전도했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해서 노아가 전도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전도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근거가 베드로후서 2장 5절의 말씀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여기에서 노아는 의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과 이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방주를 통해서 구원의 계획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노아가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별로 신통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자기 가족만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노아가 적어도 자기 가족이라도 구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는 아직도 내 가족을 구원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세 아들과 세 며느리와 함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 순간 방주의 문이 닫힙니다.  홍수가 쏟아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 순간 방주 안으로 들어갔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을까요?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이 복음을, 그리고 하나님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의 식구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 속으로 들어간 그 감격을 주님 앞에 찬양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참으로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결코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술을 열어야 합니다.  열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의 거룩한 바람, 가족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실현될 수가 있을까요?

세 번째, 전할 때 우리는 희생적인 인내를 동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전도는 희생적인 인내의 동반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전도가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결실을 맺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참고 기다리며 전하고 또 전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노아가 얼마동안 인내하며 전도했을까요?  아마 방주를 만드는 기간, 그 기간 전체가 노아에게 있어서는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무려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어가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증거했습니다.
'당신은 왜 방주를 짓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면 당신들이 구원을 경험할 수가 있다'

노아는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전했던 것입니다.  노아가 포기하지 않고 방주를 지어간 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 노아의 믿음, 그 오랜 세월 끊임없이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신뢰하고 복음을 전했던 그 믿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의 족보에 노아가 들어가는 거룩한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전도할 때 가장 힘든 대상은 역시 우리의 가족일 수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 실상은 전도할 때 가장 힘든 대상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의 말이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들에게 말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필요합니다.  차별화 된 삶, 변화된 삶, 이 삶의 증거가 없이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설득하기는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에게 전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믿는 자들이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손해 보면서 그들에게 전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취할 것 다 취하고, 얻을 이득 다 챙기면서 우리의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그들이 믿겠습니까?

때때로 우리의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우리가 전도하기에 앞서서 그 동안 우리가 잘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것으로 우리의 전도는 시작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실컷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어놓고 믿으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믿겠습니까?  '너나 잘 믿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추석을 맞이해서 이미 고향으로 간 분들도 계시고, 또 오늘 오후에 가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가시면 얌체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미꾸라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마십시오.  그것은 일하기 싫은 자신의 핑계일 뿐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정말로 꼴불견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십시오.  우리는 가족들을 섬기고 베푸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 가운데 이상혁 선교사님이 쓴 '채워 주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은 미국의 애리조나 북동쪽에 사막지대에 위치한 인디안 호피 부족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쓴 '채워 주심'이란 책에 보면 이런 전도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보스턴 지역의 한인교회 단기 선교팀이 애리조나 사막지대 이 인디언 부락에 와서 단기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같이 전략을 의논하면서 낯 시간에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서 인디언 부락의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축호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녁 집회에 꼭 와달라고 초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녁 시간에 인디언들로 교회가 가득 차고 넘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상혁 선교사님의 표현을 빌리면 그날 저녁 이 단기 선교팀이 휘두르는 성령의 검에 인디언들이 굴비처럼 엮여 교회에 나올 것을 기대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날 저녁에 불과 5명이 교회에 나왔는데 그들도 말씀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얻어먹을 식사를 기대하고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날도 결과는 역시 신통치 않았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단기 선교팀은 침통하게 모여 아침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 도중에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형제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눈물을 흘리며 어제 축호 전도에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셨던 깨우침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전도를 하다가 갑자기 깨달아진 사실은 이 인디언 호피족들이 복음을 향해서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동안 잘못 선교해 온, 혹은 잘못 전도해 온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제안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복음 제시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회개의 고백을 먼저 하자고.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보다 먼저 앞서 와서 여기서 전도했던, 그리고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여기서 선교했던 모든 사람들이 인디언들에게 끼쳤던 모든 해악에 대해서 우리가 그 짐을 짊어지고 회개의 무릎을 꿇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기도의 시간에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만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아침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면서 인디언 부락 마을 마을을 찾아가며 이 형제가 제안한 것처럼 무릎을 꿇고 그들 앞에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무례함과 잘못 선교함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이 호피 교회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안을 했던 형제가 간증을 하는 것으로 저녁 집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인디언들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지금까지 지나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무례와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입술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성령이 그 자리에 강력하게 임재하셨고, 호피 인디언들이 주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상혁 선교사는 그 날의 경험과 이 형제를 통해서 얻었던 깨달음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저 바닥에도 그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한 십자군적 선교 태도가 숨어 있음이 분명했다.  하나님은 이 형제를 통해서 나를 깨닫게 하셨다.  선교는 태도이다.  선교에 임하는 이들의 자세는 겸손해야 한다.  우월 의식과 교만은 하나님이 대적하시는 태도이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선교지는 돈의 힘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선교지는 무릎으로 들어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선교에 임하는 태도가 십자군적인지 십자가적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상혁 선교사는 그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이렇게 자기의 결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명심하자.  명심하자.  명심하자.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가 이번 추석명절에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이렇게 그들에게 큰소리 치는 대신에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저희들이 많이 잘못했습니다.  저희들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믿는 자의 우월 의식과 교만을 회개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 우리의 잘못과 용서를 빌기 시작한다면, 저는 믿습니다.  성령이 임할 것입니다.  호피 인디언들의 부락 교회 속에 임하셨던 동일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명절, 구원의 명절, 은혜가 임하는 명절,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구원의 방주인 교회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은혜의 명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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