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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우려 (신 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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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우려 (신 8:11-20)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입을 통해 나약한 인간에 대해 우려하시는 말씀들이 거듭거듭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라고 하셨고, 14절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하셨습니다. 17절에는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하셨으며, 19절에는 “네가 만일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잊을 것에 대해 우려하시는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2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쇠퇴기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또 40대 중반이 되면 건망증이 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조금 전까지 기억했던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전화번호도 잊어버리고, 손에 들고 있는 열쇠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는, 열쇠를 손에 들고 열쇠를 찾으면 그것은 건망증이고, 열쇠를 손에 들고‘이거 뭐하는 거지?’하면 그것은 치매 증세라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인데 노년에는 영어를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대화도 어려워서 통역하는 사람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누구나 다 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라는 사실은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겉 사람이 후패해도 속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린도후서 4:16)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내 영혼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길 원하지만 질병과 불의의 사고가 건강을 위협합니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잘 키우길 원하지만 탈선케 하는 유혹의 위협이 있습니다. 농부들은 농사를 잘 짓기를 원하지만 병충해의 위협이 상존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원하지만 신앙을 병들게 하는 유혹들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에 대해 우려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一. 풍부할 때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을까 우려하셨습니다.

본문 12절~14절에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하셨습니다. 삶이 풍부해지면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삶이 풍부해지면 사람의 눈길을 빼앗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삶이 풍부해지면 사람의 발길을 빼앗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에 미혹되면 하나님은 내게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멀어지면 대신 가까이 다가오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빛을 멀리하면 저절로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잊기 쉬운 때가 언제입니까? 본문 12절~14절에 기록된 말씀처럼“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할 때인데,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기 쉽고 하는 일이 잘 되는 날에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26장 15절~16절 이하에는 웃시야 왕에 대해 기록하기를“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하나님의)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즉 하나님께서 남달리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므로 웃시야 왕이 강성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강성하자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배신하고 범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했던 웃시야 왕의 말로를 성경에 기록하기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역대하 26:21)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풍부한 날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은 사람의 결과입니다.

역대하 32장 24절~25절에는 히스기야 왕에 대해 기록하기를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라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러 왕 중에 성군(聖君)으로 분류되는 왕입니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의 특이한 은혜를 힘입었습니다. 그가 죽을병에 걸려 고통당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 히스기야 왕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다 걱정근심이 없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날에는 교만의 늪에 빠지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이와 같았고, 세계 모든 기독교 역사가 이와 같았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은 한국교회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참으로 풍요로워졌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께서 우려하시는 것이 무엇이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2절~14절의 말씀처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하신 이 말씀이 혹 내게는 해당되지 아니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二. 지난날의 은혜를 잊을까 우려하셨습니다.

본문 14절~16절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가는 광야 40년 여정에서도 하나님의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메마른 광야에 물이 없어 애태울 때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셨습니다. 메마른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만나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사막에는 햇빛을 피할 그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일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기적의 연속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살았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은혜를 망각하는 하나님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리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번영은 우연히 저절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힘으로 노력한 땀 흘림의 결과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백여년 전 우리나라는 암흑의 세계였습니다. 이 땅을 비추는 하늘의 태양 빛은 백 년 전에도 있었고, 이백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백여 년 전 이전을 가리켜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저는 백 년 전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시에 이 땅에 살았던 분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때의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40년간 수고하신 아치볼드 캄벨이라는 분이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서울 장안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여자를 천대하여 자기의 딸을 팔아먹고, 아내를 천대하여 거리에서 머리채를 끌고 다니고, 아내는 매를 맞고, 의사는 먹고 살기 위한 상술로 환자를 대하고 있으며, 문둥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소경과 거지들이 거리에 우글대는 서울 장안이다.”

한국최초의 의료선교사인 알렌은 1884. 9. 22에 한국에 도착하여 1885. 4. 10에 한국최초의 병원인‘광혜원’을 세웠습니다. 그 후 1885. 4. 5에 우리나라에 도착한 언더우드 미국선교사는 알렌과 함께 광혜원에서 진료를 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도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겪은 경험담을 선교사(宣敎史)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년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땅에 도착한 첫날부터 모든 것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조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이나 음식, 그리고 그들이 몸담아 살고 있는 가옥의 모양이야 이미 각오한 바 있어 오히려 호기심이 일고 재미있기도 한 것이었지만, 조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이나 이념은 너무나 뜻밖의 것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양반이나 귀족사회의 그것과 상민이라고 일컬어지는 백성들의 그것이 너무도 엄청나게 달라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민 또는 평민이라고 불리는 백성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알고자 하는 의욕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차 없이 잘라내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쥐어 짜이고 빼앗기면서도 왜 빼앗기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왜 빼앗기는 것인지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빼앗기며 쪼들리고 살아야만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이유를 따지는 일도 없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름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배가 등에 달라붙어 도무지 힘을 쓸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식을 끝없이 주렁주렁 낳고, 끝없는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별다른 원망 없이 그냥저냥 살고들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인생 그것이라고들 믿고 있었다.

아예 배우고자 하는 뜻을 가질 줄 몰랐다. 배울 수 있는 것은 특권이었고 그 특권은 양반이나 사대부의 자제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눈뜨기를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눈이 뜨여 사리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화근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가난 속에 스스로 머리를 틀어박고 그 가난 이외에 아무 것도 보려고 하는 것 같지를 않았다. 가난은 당연히 불결과 겹쳐져 있었다. 그들은 가난에 대하여 별로 불편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결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마음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물을 아무데서나 길어다 식수로 썼고 또 배설하는 일을 깔끔하게 뒤처리할 줄 몰랐다.

상민의 아내들은 아이를 쑥쑥 빠뜨리듯 낳았다. 흙집 흙바닥 위에 거적자 리 정도를 깔고 아이를 그 위에 쏟아놓는 것이 예사였다. 유아 사망률이 대단했다.

조선 땅에는 기이하다고 생각될 만큼 천연두가 극성이었다. 죽어가는 사람 의 절반은 천연두 때문에 죽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시두(時痘)라고도 부르는 이 병이 집안에 전념되어 들어오면‘손님마마’‘별성마마’라고 부르면서 마치 위엄있는 손님이나 온 듯이 식구다 언행을 조심하며 그 병을 인격시 했다. 조선 사람들은 천연두를 별성마마라고 부르며 호구별성(戶口別星)이라고 해서 천연두를 집집마다 가져다 앓게 하는 여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믿는 이 귀신은 원래는 중국 귀신인데 그 귀신이 가끔 먹을 것을 바꾸어 먹으려고 조선 땅으로 건너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을 잘 대접한다는 표시로 천연두를‘손님’이라고도 부르는 것이었다. 그 손님마마가 곱게 물러가 주십사고 음식대접으로 푸닥거리를 하거나 굿을 했다. 그것도 안 되는 가난한 집에서는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싹싹 비벼 빌었다. 대개는 얼굴을 엉망으로 얽어 못쓰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이 병 앞에서 사람들은 쉬쉬하며 말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매독환자도 흔했고, 조선사람 전체가 우글거리는 회충을 뱃속 가득하게 껴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피부병과 무좀 정도는 병이라고 생각지도 않을 정도였고, 디스토마 환자도 흔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콜레라는 전국을 휩쓸었다. 장안에서도 죽는 사람의 수효가 하루에 수백 명씩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수구문 밖으로 시체를 옮겨 버리더니 점차로 시체를 옮기는 일조차 포기했다. 환자가 발생했다 하면 달려들어서 환자를 끄집어내어 실어다 버리고 그 집을 불 지르고 하던 것도  초기의 일이었다. 전염병이 급속도로 번져가자 이제는 성한 사람들이 환자가 발생한 집을 피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콜레라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엉뚱한지, 조선 사람들은 콜레라가 쥐의 귀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호열자에 걸리는 건 쥐 귀신이 들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콜레라균이 쥐의 형상을 하고 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쥐의 발을 거쳐서 인체에 숨어들어 내장에 까지 파고드는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콜레라 환자의 다리근육 경련도 쥐 귀신의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 대문에다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붙여놓았다. 그것이 유일한 예방이라는 것이었다. 쥐 귀신이 덤벼들지 못하게 하려면 고양이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농촌에서는 집 둘레에 새끼줄을 쳐놓고 그 줄에다 줄레줄레 부적을 매달아 놓기도 했다. 이것이 콜레라 귀신을 막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옛 모습입니다. 우리조상들이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이는 캄캄한 어두움입니다. 이 어두움을 누가 밝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에 감동된 충성된 주님의 종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빛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에서 의료선교를 펼친 알렌의사의 나이는 26세(1858년생)였고, 알렌보다 1년 뒤 우리나라에 온 언더우드도 26세(1859년생)의 총각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전했습니다. 이 빛이 지금은 이 나라 구석구석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혔습니다.

이처럼 유능한 젊은이들이 미개한 이 땅에 와서 일생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수많은 구호물자를 가지고와서 우리들을 도왔습니다. 곳곳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며 민족계몽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 민족들의 건강을 위해 병원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지금은 어떻습니까?

몇 년 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 교포가 이러한 글을 섰습니다. 세계 국가면적 순위 109위엔 조그만 한 땅덩어리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 보는 한국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최근에 모아본 자랑거리를 한번 보시죠. 경제 규모 세계 12위권, 1인당 국민소득 12000달러, 서울 세계 10대 도시 선정, 한글 세계 최우수 언어 선정, 과학기술 세계 3위, 세계 10대 무역대국, 세계 3대 가전제품 강국, 외환보유 세계 4위, 아시아 통화량 3위, 올림픽과 월드컵을 다 치룬 l0개 나라중 하나, 고속철도 기술 5번째 보유국, 아시아 60여국 중 아시안 게임 2회 치룬 두 국가 중 하나, 경제력 군사력 스포츠 전부 10위권 내에 드는 팔방미인 대한민국, 40년 전에 가나라는 나라한테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IMP 2년 남짓 만에 극복한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요? 50여년 만에 이렇게 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만으로 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일본에게 나라가 빼앗겨 36년 동안 치욕의 삶을 살다가 해방된 것이 우리들의 힘이었습니까?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을 망하게 한 것이 우리들의 힘이었습니까? 6.25동란에서 공산권의 침략을 받아 정부마저 부산으로 옮긴 상태에서 이 나라를 건진 것이 우리들만의 힘이었습니까? 하나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들이 위기 때마다 이 나라를 도우며 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18절에 말씀하시기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는 과수원으로 친목 관광을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과수원에 가서 돈 얼마를 내면 하루 종일 과일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고 돌아갈 때는 원하는 만큼 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과일을 담을 봉투까지 주는 과수원이 많다고 합니다. 땅이 수십만 평이 되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뉴욕 어느 한인 교회의 노인들이 그 과수원에 관광을 갔습니다. 모두들 자녀들에게 주려고 과일을 많이 땄습니다. 한 노인이 더 좋은 과일을 따려고 과수원 안으로 멀리 들어갔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잊어버리고 열심히 과일을 따다가 날이 저물어 밖에 나왔지만 이미 다 떠나고 없었습니다. 함께 간 할머니도 영감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줄 알고 찾지도 않고 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주인도 문을 닫고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그 노인은 겨우 주인집에 도착하여 영어를 못하니까 손짓으로 사정을 얘기하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겨우 알아듣고 전화번호를 물어 할아버지 집으로 연락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했지만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라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만 확실하게 갖고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께서 내 구주가 되신다는 믿음을 확실히 알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라도 믿음만큼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三. 다른 신을 섬길까 우려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할까 우려하시면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숭배를 금지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전도서 12:13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분(本分)이란, 나무의 뿌리요, 건물의 기초와 같습니다.  뿌리가 잘못된 나무, 기초가 잘못된 건물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무는 말라죽게 될 것이고, 건물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근본 생명에 해당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모든 계명이 중요하지만 십계명 가운데 1~4계명은 하나님에 관한 계명인데, 우상숭배를 금하신 것이 1~2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전체 계명의 뿌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대신하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만유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을 어떤 것으로 형상화하여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1~23에 우상숭배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기를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3.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이 질투하십니다. 신명기 5장 8절~9절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14에도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면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신명기 32:16에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면 불에 소멸되는 것과 같습니다. 스바냐 3:8에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면 지면에서 멸절됩니다. 신명기 6:15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면 자손에게 저주가 임합니다. 신명기 5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언제나 자식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자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식에 대한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저주를 말씀하실 때에도 언제나 자식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후손이 잘 되길 바라십니까? 우상을 멀리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한 교회의 창립 교인 중 제주도 출신의 외과의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예배당을 세우고, 교회를 위해 많은 충성을 했습니다. 그 후 이 사람은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병원이 잘되어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식들도 큰 복을 받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많은 복을 받았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 대신에 자식과 재물이 우상이 되고, 기업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날의 신앙생활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옛날에 내가 고독할 때는 교회도 나갔고 예수도 믿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도 아쉬운 것 없이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루는 두 아들이 의사인 아버지에게 스포츠카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런 도덕적 표준도 없이 그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한번은 두 아들이 그 스포츠카를 타고 자기 집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다가 아름드리 큰 나무를 들이 받았습니다. 작은 아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맏아들은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 요단을 건너게 하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풍성한 삶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변함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24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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