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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답고 복된 가정 (행 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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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복된 가정 / 행 21:7-14                           

가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와 나라의 구성단위가 되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건전할 때에 사회가 건전하게 되고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할때 그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바로 되기 위해서는 바로 교회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와 사회가 이처럼 부패하고, 특히 청소년 범죄자들이 급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가정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정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바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 속담에 ‘결혼은 쉬우나 가정은 어렵다’고 한것은 매우 의미있는 말입니다.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가정이 되는 것이 아니닙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 집니다. 부모가 하나님앞에 바로 될때에 자녀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못하면 부부의 관계과 바로되지 못합니다. 부부관계가 바로되지 못하면 자녀와의 관계도 바로되지 못하여, 자녀들이 잘못될 위험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잘못되면 자녀들이 잘못되고, 자녀들이 잘못되면 사회가 잘못되고, 결국 나라가 어지럽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와 사회가 이처럼 썪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가정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둥지안에 온전한 달걀이 없다’는 중국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자녀들의 깊은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바로되고, 바로된 가정이 모여 좋은 사회와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에서 나간 사람이 대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옛말에 ‘가화만사성’이란 말은 퍽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이됩니다.
잠17: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15:17절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은 사랑과 평화의 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빌립의 집’이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집’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벧’이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오이코스’혹은 ‘오이키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즉 가문이나 혈통을 의미할 때도 있고, 천국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집’이라고 하면 가정을 의미합니다.

가정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이루어 집니다. 요새는 우리 나라도 이혼율이 심각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한 진정한 가정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점점 멀어지고 세상으로 점점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이미 가정마다 적당하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가정은 얼마지 못해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유는 서로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해서 든든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약5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얼굴 모습이 다른 것처럼, 성격도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장점이 있는 것입니다.
일을 빨리 하는 사람에게는 실수가 많은 것이 단점입니다. 그리고 좀 느린 사람은 답답한 것이 흠이지만 실수는 별로 없는 편입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좀 볼 품은 없지만 일을 꼼꼼하게 잘합니다. 반면에 키가 큰 사람은 보기에 시원하지만 좀 싱겁다고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말은 모든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하는것 보면 다 장점만 있기 때문에 결혼하는것 아닙니다. 양쪽에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은 보고, 단점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점점 식어지기 시작하면 반대로 장점은 보이지 않고, 단점만 점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잘 안되는 가정을 볼것 같으면 아내는 남편의 단점만 꼬집어내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또 아내도 남편의 잘못된 점만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런 가정은 삐뚜러진 둥지처럼 되어가지고, 알이 떨어저 깨지듯이 자녀들이 잘뭇되고, 그 인격이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잘되는 가정을 보면 다른 가정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그런것 아닙니다.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점에 대해서 서로 참고 보완하기를 힘쓰며, 장점을 보고 위로받고, 또한 서로 격려하며, 주어진 여건을 그저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돈으로, 지식으로, 세상 권세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를 둘때에 진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모시고 사는 가정은 절대로 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빌립의 강정은 모든 가정의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범적인 가정중에 하나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모범적인 가정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빌립의 가정은 의무보다 더 많이 일하는 가정입니다.
  의무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의무마저 변변히 감당하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이는 자기의 의무를 잘 감당할 뿐만아니라, 그 이상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빌립과 그 가정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여기 나오는 빌립은 사도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가운데 한 분인 빌립 집사님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집사의 의무만 잘 감당하면 됩니다. 집사의 의무는 사도해전6장에 있는 대로 헌금을 수납하여 잘 관리하는 일입니다.
빌립 집사는 모범적인 집사로써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며,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가 맡긴일에 대하여 충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 마음으로 의무 보다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월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해야할 일까지 더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전도와 봉사와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쓰면서도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전도하는 일에도 힘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 빌립에다가 전도자 빌립이라는 또 다를 칭호까지 붙게 된것입니다. 정말 그는 의무 이상으로 봉사한 분입니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이 사도들의 의무로 되어 있는 이상 전도는 사도들의 소관이요, 전도자들의 소관이니, 집사의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수수 방관할 수도 있지만, 빌립은 사실 그대로 전도에도 힘쓴 훌륭한 전도자 였습니다.

사마리아에 최초로 전도한 사람이 빌립이요, 에디오피아 고관에게 처음으로 전도한 사람도 바로 빌립 집사님입니다.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의무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영적 교만이요, 의무 이상 더하는 것은 겸손과 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전도를 교역자 몇분에게 일임하고, 앉아서 전국 복음화를 운운하고, 말만하는 것은 종교향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처럼 맡겨주신일에 충성을 다마며, 더 나아가서는 의무 이상에 더 많이 일하는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신앙을 계대하는 가정입니다.
  한국 사람은 계대하는데 집념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육신의 계대는 이처럼 관심이 지극한 사람도 그들의 자녀에게 좋은 신앙을 계대해주는 일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공부하라는 말은 주문처럼 하지만, 교회에 가라는 말은 별로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상급학교에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자녀의 교회출석을 제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일류 학교가 인생을 만들어 주며, 일류 인생에겐 신앙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이것은 자녀를 위한 일이 아니라 해를 주는 일입니다.
사람이 지식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빌립 집사님과 같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앙으로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을 더 중요시 해야 합니다.

빌립의 가정에 딸 넷이 있었는데 교회와 주의 일에 헌신적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 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처녀로써 예언하는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열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였는 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온 생애를 하나님 앞에 헌신하였습니다.
시집가서 가정을 이루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 보다 주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여 일하는 것이 더 귀하고 복되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무엇이 가치있고, 무엇이 보람되고, 무엇이 가장 복된 생애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세라고 가르침니까? 아니면 시집 못가도 주의 일 잘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칩니까? 어느 쪽이니까?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치관을 올바로 심어주어야 합니다. 신앙관이 바로 되도록 말씀 중심으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책임져 주십니다. 복되게 하실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복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은 세상 끝날에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될 뿐만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잘되며, 창성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게 될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이런 자녀들은 예루살렘의 복을 볼것이며, 산이 중첩함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의 가정은 이런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사형제 딸들에게 물려주었고, 딸들은 부모의 신앙을 즐거움으로 물려 받았습니다. 금은 보화를 물려주는 것보다 천하보다 귀한 신앙을 유업으로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자녀들을 말씀으로 바로 가르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책임지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자녀들이 될것입니다.

3.빌립의 가정은 봉사에 총동원하는 가정입니다.
  바울은 엡1:3-14절에서 하나님의 총동원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나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성부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성자께서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사해주셨고, 성령께서는 내 마음속에 역사하셔서 주를 믿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관대 나 같은 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총동원 해주셨단 말인가? 바울은 감격하여 ‘찬송하리로다’노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나도 내게 있는 모든것을 총동원하여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시켜 주님을 잘 섬겨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총동원적인 은총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자신 뿐만아니라 가족이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온 가정의 구원을 해서 항상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빌립의 집은 총동원 가정이었습니다. 빌립은 집사요, 전도자로 성업에 충성하고 있었으며, 그 딸 사형제도 하나 같이 하나니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데 힘썼습니다.
참으로 빌립의 가정은 신앙에 있어서 이방인이 없고, 봉사에 있어서 방관자가 없는 총동원 가정이 된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빌립의 가정처럼 부모는 부모로써, 자녀들은 자녀들로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회의 각 부서에서 총동원 봉사의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빌립의 가정은 형제를 공궤하는 가정입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항상 남에게 부담을 주며, 누를 끼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가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공궤’라고 하는 물질적인 도움은 서로 대접하는 정도의 범위에서 사랑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의 가정은 남에게 절대로 누를 끼치거나, 부담이되는 가정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못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공궤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항상 남에게 유익을 주는 가정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가정이 복있는 가정입니다.
사도시대는 핍박이 심해서 유랑하는 형제들이 많았습니다. 빌립의 집에는 이런 형제를 위한 무료 여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들이 빌립의 집에 유하는 동안 서로 합심하여 기도했으며, 거기서 새로운 힘을 얻고, 새 출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도 발울의 여행이 삼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에 들려 며칠을 유했고, 거기서 형제들과 기도하는 중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빌립의 집은 물질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많은 형제들에게 공궤하며, 유익을 주는 급유소와 같았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인생들에게 새힘을 공급하는 급유소와 같은 풍요한 가정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은혜와 사랑이 풍성한 가정입니다. 빌립의 가정은 가족들에게나, 다른 형제들에게나, 그리고 하나님앞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가정이야 말로 빌립의 가정처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되어 교회와 나라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유익을 줄 수 있는 복되고 모범적인 가정이 되시기를 가정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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