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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사기도회] 언약전달의 중요성 (삿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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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사사기 2:1-10
제    목 : 언약전달의 중요성

옆 앞뒤좌우 사람들과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영적산파’입니다. 지난 달 기도회 이후에 한 달이 지났습니다. 기도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기도한 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최소한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면 기도없이 일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셔야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보기 좋아라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뭡니까?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망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약속의 자녀들이 망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망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이겠습니까? 언약인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언제 가장 뜨거웠는 줄 아십니까?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 길에서 할례를 받을 때였습니다.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가 뭡니까?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받고, 영적으로 거듭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들이 보는 앞에서 할례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능성 만을 신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여리고성이 눈 앞에 있고 그냥 정복하면 되는데, 칼을 자기자신에게 들이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부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칼을 자기에게 들이대고 내게 맞지 않는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할례한 곳을 길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수치를 굴려버리다는 것입니다. 할례받으면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 못합니다. 한사람도 할례받은 남자가 없는데 적군이 치면 전멸아닙니까? 이런 짓을 믿음 없이 행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한가지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생존의 이유 때문에 신앙을 쉽사리 포기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부터 젊은이들까지 어른들까지도 설문조사한 여론들을 보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답변에 대해서, 가장 많은 답변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려면 돈이 많이야 된다고 거의다가 그렇게 말합니다. 신앙인들도 거의 비슷한 답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러분 두려움을 가져야합니다. 돈되면 무슨짓이든 하고 돈안되면 뭐라도 포기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런 세대를 살아가는 주일학교학생들이 영적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존의 문제를 내려 놓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해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대두되는 문제가 뭔 줄 아십니까? 신앙교육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의 논리에 뒤집히지 않을 영적가치관을 만들어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세계를 현세계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로 고정시켜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세상은 맡겨지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는 가나안을 맡겼고, 우리에게는 세상을 맡겼지 않습니까? 그런데 철저한 신분없이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땅에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 할례없이 신분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여러분 만만치 않습니다. 적어도 신분의식없이 들어갔다가는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당장에는 데미지가 있고 당장에는 앓아 눞고 칼을 들이대는 고통이 있을 지라도, 이런 고통스런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우리가 행해야할 수술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뭐겠습니까? 언약입니다.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가능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순종하며 나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널 때도 할례를 할 때에도 여리고를 돌때에도 법궤를 의지하고 율법을 근거로 움직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있으면 걱정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성경한권붙들고 시름할 수 있으면 이들 인생은 팔자핀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성경의 중요성을 중요하게 가르치지 못하면 모르게 되는 겁니다.

.사사시대를 보십시요. 오늘 본문을 보십시요. 가나안에 들어온 믿음의 후대들의 한계가 뭔지를 보십시요. 6절-10절에 보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10절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와 그 세대 사람들도 죽은 이후에 나타난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더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믿음도 중단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이 뭡니까? 신앙전수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후대들에게 신앙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들 살 때에는 믿었다 죽은 후에는 끝났다 이게 뭡니까? 그들의 신앙과 믿음이 사람을 근거한 인간적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교회 가니깐 간다는 식 아닙니까?

부모님이 믿으니깐 믿는다.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믿는다. 5대 6대 믿기 때문에 믿는다는 습관신앙과 명분신앙을 붙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보고 눈치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후대 하나하나가 독립신앙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설 수 있어야합니다.

이렇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믿음의 후대에게 언약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내가 봤던 하나님의 능력이나 기적을 이야기하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경험한 은혜나 나의 간증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전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하는 것입니다. 왜 사사시대가 범죄의 구원의 악순환을 경험하게 되는가하면, 믿음의 후대에게 언약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 한가지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정신없이 살다가 언약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들을 때에는 옹한데 들려주지 않으면 식어버리는 신앙생활의 위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전해들은 부모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나거나 체험하질 못했습니다. 약속을 근거한 신앙, 말씀을 근거한 신앙을 물려주고, 여호와의 언약을 물려주고 들려줬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이 교회에 믿음의 후대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의 부모들은 간증거리마저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간증거리가 없다는 것은 부모세대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몸부림치지 않는다는 증거 아닙니까? 이들의 신앙과 믿음이 과연 찰거리미같은 가나안 백성들과의 삶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언약이 없는 자들, 말씀이 없는 자들의 특징이 뭔줄아십니까? 기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가치관도 엉망이고 맺고 끊는 것도 없고, 결단도 없습니다. 가나안의 바알이, 아세라가 내게 해가 되는지 약이 되는 지 모릅니다. 사사기 앞이 여호수아서인데, 여호수아는 죽기전 마지막 유언으로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가아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결단하고 결정하라는 겁니다. 이 결정과 결단을 말할 때에 여호수아가 근거로 드는 것이 뭔줄아십니까?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24장 2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있어야 결단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기준이 서고 말씀이 있어야 가치도 서고 말씀이 있어야 선택이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말에 대답은 버리겠다고 잘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이 말씀을 버렸고 그래서 어떤 영적결단도 하지 못한채 삿사시대의 늪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전 세계 교회가 후대에게 복음을 전달하지 못한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직자의 자녀들이 더 신앙 생활을 안 합니다. 왜요 명분과 습관으로 신앙생활하기 때문엡니다. 후대사역이 중요합니다. 집에서 확실하게 언약을 심어야합니다. 교회도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처참하게 망합니다. 삼손알지 않습니까? 보여주는게 뭡니까? 나실인으로 헌신되었지만 나실인의 규례를 어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뭘 믿고요? 힘만믿고 언약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망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오늘 10절에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체험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에 대해 영적으로 무관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신세대가 문제입니다. 여기 모인 어르신들의 세대는 많은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과거시대는 의식주 문제가 가장 컸고 그래서 하나님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식주문제 때문에 시험드는 일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대신에 여유롭기 때문이 오락이나 육체에 즐거운 일을 즐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매니아적인 것들이 이들의 문화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미쳐버리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따라다니면서 말릴 수 있습니까? 해도 되던가요? 안됩니다. 어떻게해서는 말씀을 줘야합니다.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준잡아주기 위해서 말씀을 심어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약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언약을 심어서 세상에 내 보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군분투해야합니다.

언약이 없을 때에 발생하는 문제가 뭡니까?

죄 아닙니까?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이스라엘처럼 혼합주의에 빠지고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면서 즐길 것 다 즐기고 살아가는 거지요. 그러다가 이방나라가 괴롭히면 하나님께 한번 부르짖었다가,, 사사가 일시적으로 구원해주면 또 죄짓고 사사시대는 계속 이런 양상을 보입니다. 사사가 하는 일을 일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뭘하십니까? 언약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을 결국 사무엘을 통해서 세우고 왕국통을을 이루고 이방의 압제에서 벗어나느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다윗이 여호와의 말씀을 사랑하고 율법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오는 일을 제일 먼저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교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공부하는 가정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 만나서 일주일에 30분 하는 것이 거의 다입니다. 이 일을 교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후대를 키우는 이 영적사명에 우리가 혼신의 힘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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