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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나누며 섬기는 교회 (행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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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며 섬기는 교회 (행 2:47)

  오늘은 우리 새문안교회가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 날을 맞는 우리 모두는 국력이 기울대로 기울고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19세기 말엽에 이 땅에 세워져 일본제국의 강탈과 압제, 공산집단의 도발에 의한 동족간의 전쟁, 경제개발의 몸부림과 민주화의 투쟁 등 격동의 20세기를 거쳐 동북아시아의 주도세력으로서의 새 희망을 품고 맞은 21세기 초엽의 오늘까지 120년의 역사 속에서 민족과 함께 절망과 고난과 희비애락을 겪으며 지낸 새문안교회와 한시도 쉬지 않고 함께해주신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문안교회가 누린 120년간의 하나님의 은혜는 곧 한국교회가 누린 은혜이며 이 민족이 누린 은혜였습니다.

  창립 120주년을 앞두고 우리 교회는 일찍이 120주년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12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뜻 깊은 행사와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시켜왔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아직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교회 120년의 역사자료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영구보존 될 수 있게 한 것은 필요하고도 유익한 일입니다. 또 우리 교회처럼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세우신 여러 자매교회들을 확인하고 그중 여섯 교회와 서로 방문하며 함께 예배드리는 일도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값진 것은 120주년을 기해서 우리 교회 밖을 향해 행한 새 사업 두 가지입니다. 그중 하나는 일회성 사업으로 120주년을 상징해서 시각장애자 120명의 개안수술비용을 실로암안과병원에 지원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속적 사업으로 을 설립한 일입니다. 은 교회학교교사양성을 위한 교과과정을 개설하여 어느 교단의 어느 교회이던 상관없이 교사지망자들이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교수진에 의해 최선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미 10년 전에 세워진 처럼 늘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는 우리 교회의 기본입장을 구현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새문안교회가 다른 교회들보다 앞서서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고 특권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특권에는 또한 남다른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그 은혜를 증언하고 나누어야 할 사명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새문안교회는 지나간 120년의 은혜를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마당에서 보이도록 걸어놓은 대형 현수막에 실린 “민족과 함께 나눌 120년의 은혜”라는 구호가 그저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문안교회는 한국교회와 이 나라 전체를 향하여 어머니교회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분명 한 가정에서 소중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정에서 존경받는 것은 온 가족을 위한 책임의식과 희생정신 때문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새문안교회는 언제나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 본이 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새문안교회의 소명입니다. 새문안교회는 이 소명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는 순간 어머니교회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이는 온 가족에게 근심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고통과 깊은 상처를 안겨주듯이 어머니교회로서의 본분을 외면하는 새문안교회는 한국교회 전체를 실망시키고 부끄럽게 하며 슬프게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전체를 어미 잃은 자녀들처럼 만드는 새문안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어머니의 건강은 특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새문안교회가 언제나 건강한 교회로 남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목회의 주된 목표가 건강한 교회 만드는 것이고 교인들을 건강한 신앙인 되게 하는 것임은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이 많이 찌고 비대해져서 동작도 느리고 둔해지는 것은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군살은 가능한 한 빠지고 튼튼한 근육이 형성되어 민첩하게 움직이며 힘을 쓸 줄 알아야 몸이 건강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인 수만 많아지는 것은 결코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일 줄 아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고 부요하면서 자기밖에 모르는 교회는 마치 소아비만증에 걸린 아이 같은 것입니다. 남을 생각할 줄 알고 남에게 도움을 줄 줄 알아야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듯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끼리 풍성풍성 쓰기는 좋아하면서도 밖을 향하여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교회는 교회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양적인 성장보다 내적 건강을 회복했다고 봅니다. 교회예산이 최근 6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예배에 모이는 수는 많으면서도 헌금이 적은 것은 건강하지 못한 교회의 한 가지 지표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헌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많이 걷히는데 밖을 향해 쓰는 예산이 적은 것은 건강하지 못한 교회의 또 다른 지표입니다.

우리 교회는 최근 수년 사이에 외부를 향한 예산책정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해외선교가 사실상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러시아와 태국에서의 선교지가 각각 두 군데로 늘어났습니다. 휴면상태와 같았던 동북아에서의 선교도 활발해졌고 소중한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인들을 위한 국내선교사역이 집회지원 차원에서 교구목회 차원으로 승격되었고 몽골 근로자들을 위한 예배도 신설되었습니다. 일본어로 드리는 예배가 시작되었고 동북아시아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한 선교사역도 실현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세 중‧고등학교에 학원선교사들을 파송한 일이나 여러 비기독교학교에 교역자를 보내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한 일이나 10개 대학교에 다섯 명의 캠퍼스 선교사를 파송하여 대학복음화에 힘쓰는 일은 기독교학교 세계에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준 일로 새문안교회로 하여금 한국교회에 새로운 귀감이 되게 한 일들입니다.

매년 교회예산의 2퍼센트를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보내 세 명의 석좌교수를 책임진 일은 교파를 초월해서 전 한국교회를 향해 귀한 모범이 된 일입니다. 새문안복지재단을 통한 대사회봉사활동과 이에 따른 예산배정을 몇 배로 확장했으며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몇 개의 복지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게 된 것 또한 바람직하면서도 놀라운 변화의 하나입니다.

새문안교회가 독자적으로 호스피스봉사훈련교육과정을 개설하여 수많은 교회안팎의 지원자들에게 질 높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먼 지방으로까지 호스피스교육지원을 개시하게 된 것도 우리 교회의 내적 성장의 증표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팎에서, 또 국내외에서 갑자기 재난을 당하거나 건강상 치명적인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돕기 위한 헌금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 또한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인의 체질로의 개선이 많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교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의 증거들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 밖을 향해 인색한 교회의 이미지를 씻어내기를 계속해서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 어느 교회보다도 긴 세월인 120년 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쉬지 않고 민족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덜 먹고 덜 입는 어머니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힘든 일이지만 해야 합니다. 어머니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은 오직 희생과 헌신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 관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짤막한 증언은 우리가 길게 음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미할 뿐 아니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런 예루살렘교회에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은혜로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옛 예루살렘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교회성장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 원리는 교회성장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자는 예루살렘교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신자의 수를 늘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썼습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하는 교회성장의 둘째원리는 신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예루살렘교회의 신자수를 늘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성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전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다같이 귀담아 듣고 진지하게 마음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기독교세력들이 갈수록 창궐하고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피랍사건 이후 교회를 향한 반감과 비판이 더욱 거세진 오늘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이 정당하지 않고 악의적이며 기독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비판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칭찬 받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칭찬 들을 수 있는 선한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말씀하시며 모든 사람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눈살을 찌푸릴 일들과 방법을 통해 무조건 교인수만 늘리려는 노력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지속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외형적 비대화는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와 교인들의 내적 건강은 기대하기 힘든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성장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첫 교회인 새문안교회는 역사상 기독교의 첫 교회인 예루살렘 초기교회를 닮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의 건강한 어머니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집안에서 어머니가 시름시름 병들어 있거나 허약한 상태에 있으면 집안 전체가 기쁨과 활력이 없이 우울해집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나아가 한국사회를 위해서, 이 나라와 민족 전체를 위해서 우리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되는 길은 나누며 섬기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120년이라는 가장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교회입니다. 그런 만큼 가장 많이 나누고 제일 크게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머니교회입니다. 밖을 위하여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더 많이 나누고 더 크게 섬기기를 힘쓸 때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더욱 성장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선 우리가 먼저 성장하기 위해서 남을 위해 쓰기를 아끼고, 성장하고 나면 그때 가서 남을 위해 쓰자는 생각처럼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나누기를 싫어하고 섬길 줄 모르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장시키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장시키시지 않는 교회는 진정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일 안 하고 먹기만 하면 살은 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할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교회도 나누고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해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새문안교회가 관에 들어갈 날만을 기다리는 120세의 산송장이 아니라 언제나 건강하게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나누고 섬기기를 더욱 힘쓰려고 새롭게 다짐하는 오늘 교회창립기념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민족과 함께 나눌 120년의 은혜”라는 구호와 함께 대형현수막에 실린 글귀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교회, 섬기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 전체를 위하여 “바른 교회, 섬기는 교회”의 본이 되어달라는 것이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교회를 향하여 갖는 간절한 여망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피할 수 없는 사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우리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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