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 37:1-10)

  • 잡초 잡초
  • 318
  • 0

첨부 1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 37:1-10)

죽음은 우리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가는 사건입니다.
일체의 희망을 등진 죽음의 상징은 마른 뼈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어느날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 간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가득 차 있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인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선지자가 이 환상을 본 주전 580년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패망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채 모든 희망을 접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환상의 골짜기에서 주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에 선지자는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셈이 되고,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너무 현실성이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절묘한 대답으로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이 뼈들이 다시 살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죽음의 정황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우리 이웃인 불신자들의 영적상태를 조명해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10월 28일, 우리 교회는 이웃사랑 새생명 전도축제를 갖습니다.
전도는 한마디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1-3절까지가 전반부이고 4-10절까지가 후반부입니다.
그리고 전반부는 하나님의 진단이고, 후반부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단은 이스라엘이 마른 뼈처럼 이미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 후반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뼈들이 살 수 있다”는 두 가지 처방이 주어집니다.

1.주의 말씀을 대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8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 마른 뼈들을 살리는 처방으로 “그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들에게 말씀으로 전도하고 설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만약 우리에게 팔봉 화장장에 가서 시체를 화장한 후, 남은 뼈들을 향해 전도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불가능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몇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5절에 보면 “마른 뼈에 생기가 임할 것”이라고 했고, 6절에 보면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마침내 가죽이 덮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7절에 보면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시 말해서 선지자가 “죽은 자들을 향해 말씀을 대언하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들려주는 바로 그 순간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활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기적을 주일마다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주일은 완전히 공동묘지에서 해골들을 향해 설교하는 심정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 목사인 저의 소명이기 때문에 설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말씀 선포가 진행되면서 여기 저기서 깨어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머리를 숙였던 자가 머리를 듭니다. 얼굴에 홍조가 돌아 옵니다.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입에서 찬양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즉 영적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끝까지 무표정한 시체로 들어왔다가 축도와 함께 교회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시체로 나가는 분들도 없지 않아 눈에 띕니다.
아마 이런 분들의 유일한 소망은 축도가 빨리 끝나는 것일 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체들의 행렬사이로 살아난 성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얼굴에 성령의 빛이 있고, 걸음걸이에 새 힘이 있고, 입술에 찬양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보람 때문에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이웃사랑 새생명 전도축제기간입니다.
“해피데이 1028, 한 영혼을 두 팔로 섬기자, 섬기자, 섬기자”는 것은 우리가 일년동안 “내가 꼭 전도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는 기회를 갖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웃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혹은 나의 전도대상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마른 뼈를 향해서도 주의 말씀을 대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제가 할 일은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겸손히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믿고 전하면 영혼이 죽은 자들의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떤 신학교에서 갓 입학한 학생이 교수님이 너무 장황하게 성경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니까 답답해졌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서서 한 손으로 성경을 흔들면서 물었다고 합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이 성경이 정말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이때 그 교수님이 조용히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자네가 그렇게 성경을 흔드는 한 아무 일도 안 일어날걸세. 그러나 먼저 그 성경이 자네를 붙들어 무릎꿇게 하는 날 자네의 성경은 그때부터 인간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시작할 것이라고 믿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 말씀을 이웃들에게 대언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말씀을 전하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제공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방황하는 죽은 우리 이웃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첫째 처방인 것입니다.


2.주의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말씀의 대언을 따라 마른 뼈들이 맞추어 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입혀짐으로 사람 모습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둘째 처방이 지시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여러분, 여기 생기가 누구입니까? 성령이십니다.
성령을 히브리어로 루아흐(ruah)라고 하는데, 성령은 하나님의 생기요,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매우 일관성있게 전도하는 사람들이 말씀과 함께 성령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자의 우선순위는 “성령 하나님이시여, 제가 전도할 때 죽은 이 영혼에게 생기로 임하소서”라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사도들의 전도행전인 사도행전의 또 하나의 별명은 성령행전입니다.
행4: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본래 본문은 바벨론 치하에서 생명이 끝난 이스라엘의 부활을 예언하는 환상의 드라마로 주어진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은 사실 마른 뼈처럼 생명이 끝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회복 예언의 절정이 36:36절입니다.

한번 읽어 보실까요?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것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다시 말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반드시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36:37절을 주목해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방편, 부활의 방편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의 역사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생기이신 성령께서 임하셔서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이웃들은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라 반드시 산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일제히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제 죽은 시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새날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새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이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부흥이 여러분의 가정에, 일가 친척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갈망되지 않으십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