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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보자의 기도 (출 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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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의 기도 (출 32:7-14)

여러분 보화를 캐고 싶지 않습니까? 지금 시내 산으로 가세요. 우리 송진영 집사가 추석선물로 준 떨기나무라는 책에 보니 보화를 캐려는 사람들이 시내산 주변으로 몰려든다고 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성경에 있는 이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입니다.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이 있은후 모든 단장품을 회수하여 호렙산 근처 어디에 묻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보화를 찾으러 다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근거가 출 33:5-6절에 있어요. 오늘 말씀을 잘 들으면 찾을 수 있을 런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출 애급을 하고나서 시내산 밑에 도착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슴을 받기위하여 시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모세의 소식은 캄캄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조바심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러니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여자들의 귀에서 금고리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선언하기를 이는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였습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못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 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떤 형상으로든지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신을 만들어 냅니다. 신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을 무섭게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눈을 부라리고 색을 혼란 하게 만들고 불을 뿜고 무서운 짐승들을 그려 넣고 그래서 그 앞에서 사람들이 덜덜 떨게 만듭니다. 신이 자비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신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신상을 만들어도 미소를 띠게 하고 옷도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 놓고 새들이 노래하고 나비가 날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로 하나님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 하는 것입니다. 우리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신격이 있습니다. 들으시고 말씀 하시고 보고 계시고 일하고 계신 분입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서 한집에 사는데 아버지 사진을 보고 맨 날 절하고 사진보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욕 하는 이들을 보시며 하나님이 진노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내려 가라고 명하십니다. 내 백성이 부패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10절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의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백성을 어떡하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정 말 멸하시려하였다면 모세에게 의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 진멸하시고 모세에게 내려가라. 이 백성이 부패하여서 내가 다 진멸하였다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모세에게 내려가라 진멸하겠다. 무엇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까? 모세가 무엇인데 의논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 한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는데 죽일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다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는데 얼마나 우는지 대책이 없습니다. 안아줘도 울고, 업어줘도 울고, 할 수 없어서 승용차에 태우고 동네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차안에서 잡니다. 그래서 되었다 하고 차를 멈추면 또 울기 시작합니다. 차가 달리면 자고 멈추면 울고 그러니 멈출 수가 없어요. 밤새도록 할 수가 없어서 30분 이상 달리다가 집앞에 차를 살짝 대고 차 문도 살짝 열고 대문도 살짝 열고 이제 됐다하고 침대에 딱 눞히면 엥 하고 또 웁니다. 속이 상한 부부가 이걸 그냥 갖다 버리고 싶기도 하고, 산 속에 데리고 가서 실컷 울도록 내버려두고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그러나 버릴 수 있습니까?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어요.

그러나 어떡합니까? 자식인데... 절대로 버리지는 않습니다.하나님이 지금 버리고 싶다는 거예요, 어떡하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서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기도 하는 것입니다. 중보자의기도가 여기에 위대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뜻대로 아버지야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 하였듯이 모세가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 내용이 무엇인가요.

첫째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11절) 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하시일이 헛되이 돌아가면 안 됩니다. 하는 말이지요. 이 백성은 망해도 싸지요. 이 백성 살려 달라 소리를 못합니다. 워낙 죄가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신일은 헛되이 돌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본래부터 이 백성은 목이 뻣뻣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그것 다 아시고 여기가지 이끌어 오신 것 아닙니까? 이 백성이 선해서 구원받을 만해서 인도하신 것이 아니 쟎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사랑을 버리시렵니까? 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12절입니다. “어찌하여 애급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앞에 기도가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하는 기도라면 이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으면 안 됩니다. 하는 기도이지요.

이 백성이 광야에서 죽으면 누가 좋아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 도 좋지만 그러면 좋아 할 것은 원수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좋아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욕을 하고 악 선전을 할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되면 누가 좋아 합니까? 원수들이 좋아 합니다. 교회가 망하면 누가 좋아 합니까? 마귀들이 좋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영광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13절 “주의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을 버리시려 합니까? 하나님이 절대로 어기실수 없는 것이 약속입니다. 사람은 약속을 어겨도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14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 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할렐루야. 위대한 중보자의기도가 백성을 살렸습니다. 백성을 살린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으로 약속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하나님으로 추락시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살아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32절에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말에 앞에 드린 모든 기도의 내용이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해야만 그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일에 자기 목숨을 내 놓은 것입니다. 나는 망해도 좋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모두 중보자입니다. 세상을 위한 중보자요, 이웃을 위한 중보자요, 가족을 위한 중보자입니다. 여러분의 중보기도가 나라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는 기도가 될뿐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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