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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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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욘 3:1-10)

  어떤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를 베푸시는 악한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선한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구별해서 보고 큰 틀에서 구약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 율법을 어기면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을 자세히 읽어보면 진노하시는 악한 하나님이 아니시고,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회개하는 백성들을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를 베푸시는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으로 구별해서 본다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요나서에 기록된 하나님을 살펴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 다시 기회를 다시 주시는 하나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을 때에 불순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싫어서 정면으로 거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사건입니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세다면 모를까 어떻게 불순종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요나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간 큰 남자 인 것 같습니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은 끝까지 따라가셔서 돌이키십니다.  세상에 선지자가 요나 한 사람만 있었을까요? 불순종하여 도망치는 요나를 끝까지 따라가서 풍랑을 일으키고, 바다 속에서는 물고기를 예비하시면서 회개하게 만들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합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욘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 말씀은 불순종했던 요나의 회개를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일이 없습니다. 풍랑이 일도록 하니까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요나를 삼키도록 명령을 받은 물고기는 3일 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러나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육지에 내 놓으라는 명령에 육지에 토해 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말고 다른 피조물들은 이렇게 순종을 잘하는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집어 넣어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버립니다. 그리고 이건 순종할 수 없어, 이건 순종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결정합니다. 순종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이고! 이 모습이 요나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입니다.  요나 말고 선지자들이 없을까요?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요나가 다시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심지어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온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 왔어도, 당장 아담과 하와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주시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분입니다.

▶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힘을 주셔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 선교 팀에서 이탈함으로써 바나바와 바울의 협력 선교를 깨지게 만든 마가라도 다시 받아 주셔서 마가복음을 기록케 하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 다윗의 범죄가 그를 파멸로 몰아가지 못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재기의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요, 야곱, 아브라함, 엘리야 등등 성경은 실패한 하나님의 종들이 어떻게 재기해서 멋지게 인생을 승리하는가를 보여주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붙들어주십니다. 불순종 했어도 용서하시고 다시 더 큰 은혜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  또한 요나에게 재차 사명을 주신 것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욘 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1장2절에서도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회개한 요나에게 찾아오셔서 같은 사명을 주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 하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너무나도 악한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습니다. 악독이 상달하면 그 다음은 심판만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룻이 그곳으로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사명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니느웨라는 도시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저 큰 성읍이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요나는 사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니느웨는  내부 성곽의 높이는 10m나 된다고 합니다.  그 높이로 쌓았을 뿐 아니라 성벽 두께가 15m나 되어서 마차 세대가 한꺼번에 지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튼튼하게 지어진 성내에 어린 아이가 12만 명이나 되고, 어른까지 합한다면 60만에서 100만 명 정도가 그 성에 살고 있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큰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악독이 가득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정도로 악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되어 포로로 끌려가게 될 도시가 니느웨입니다. 미리 이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관심은 곧 이스라엘의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나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제 2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나의 불순종과 상관없이도 진행됩니다. 그런데도 기다리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시기를 원하시고, 항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사의 도망을 해도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 안식을 얻을 수가 있음을 아시기 때문에,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2. 순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다시 받은 요나 이제는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불순종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풍랑을 만나고 고래 뱃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요나가 다시 불순종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합니다. 그 순종은 자발적인 순종일까요? 아니면 마지못해 하는 순종일까요? 내용을 살펴보면 자발적인 순종은 아닙니다.

  3절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들어갑니다. 그 성은 3일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어떻게 전합니까? 단 하루만 전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자기의 말로 하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렇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제하고 말하는데 요나는 그 말을 빼버리고 그냥 ‘너희들 40일 후면 망한다.’ 이렇게만 말합니다. 얼마나 망하기를 바랬으면 이렇게 했을까요?
  요나는 그랬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없었습니다.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요나에게 열정이 있었다면,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외쳤을까요? 큰 소리로 40일이 다 되도록 외치고 다녔을 것입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회개하기를 촉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들이 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열정 없는 메시지,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메시지를 단 하루만 들었는데도 이들은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5-8절)을 보시면,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자마자 믿고, 회개하며, 나중에는 왕과 가축들까지도 회개의 상징으로 베옷을 입고 온 나라가 회개를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욘 3: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요나는 하는 수 없이 억지로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40일이 지나면 이 성은 무너진다!” 이 소리에 사람들은 소동을 하였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요나에게 다시 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런 설교를 들은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들이 설교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슴에서 피를 토하는 그런 설교를 하더라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한 번에 3천명, 5천 명이 회개를 하는데, 스데반이 설교를 할 때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구약을 관통하는 훌륭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할 때에 얼마나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했는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돌을 던져서 돌무덤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베드로처럼 스데반처럼 예수님처럼 그렇게 유창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열정도 없었습니다. 그런 설교를 들은 니느웨 사람은 다릅니다.
5절 말씀을 보니까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이 회심을 일으키고, 믿음을 일으키지 않고 오로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설교자들은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성령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설교자들이 준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요나의 성의 없는 설교를 통해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요나가 없었다면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꼭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만큼 메신저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종하되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만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마음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입니다.

3. 회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니느웨에 대해서 (나훔3:1)은 “피의 성”이라고 합니다. 고고학 발굴 자료에 니느웨 어떤 왕의 비석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디를 정복해서, 몇 천 명을 죽이고, 그들의 껍질을 벗겨서 성문에 널어놓았고, 머리를 잘라서 그 몸을 기둥처럼 박아서 가로등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악했던 백성들입니다. 어쩌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그런 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악한 백성들이 회개합니다.

(욘 3:9-10)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악했던 민족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하나님께서도 그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렘 18:7-8) 『[7]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회개하면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지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은 회개하기만 하면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 누군줄 아십니까? 아합입니다.

(왕상 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하나님보시기에 악한 일만 골라서 했습니다. 그에게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그가 회개합니다.

(왕상 21:27-29)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회개하는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위로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맘이 편해지신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그 모습을 보시면서 위로받으시고 평안을 얻으시는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잃은 양의 비유와 집을 나간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인하여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돌아오면 축제를 벌이십니다.

  이 일을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그 구원의 반열에 오를 사람들에게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요나서 3장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살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에게 기회를 다시 주셨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사명을 감당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이 우리 안에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십니다. 너무나 크신 하나님이시기에 순종을 원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춤추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서 있기를 원합니다.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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