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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뉘시오니이까 (행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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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시오니이까 (행 9:1~9)

'막 쪄낸 찐빵' 의 저자인 카피라이터 이만재(李萬才)는 성경의 말씀이 처음에는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자신의 상식이나 철학으로는 예수 믿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할 때 교회에 가겠다는 조건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끌려 교회는 다녔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마치 순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 '참 뻥도 심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물위를 걷는 기적' 에 대해서 들을 때는 '목사 양반이 멀쩡한 것 같은데 거짓말도 잘 하네'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향해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는 말씀이 가슴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먹이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그 순간 성령이 그의 마음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났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찬송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같이 부릅니다. "예수 사랑해요 나 주 앞에 엎드려 경배와 찬양 왕께 드리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본문 1절과 2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당시 제자들에 대하여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겠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대하여 무척 나쁜 선입관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기가 등등한 사울의 발걸음을 과연 누가 멈출 수 있겠습니까? 누가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본문 3절과 4절입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사울을 둘러 비쳤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했던지 사울의 눈은 멀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사울은 엎드러집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그에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음성은 보통 음성이 아닙니다. 사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는 그를 존재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았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열리어 강력한 하나님의 빛을 받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바랍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사울처럼 주님을 향하여 고백하게 됩니다. "주여 당신은 뉘시오니까?"


첫째, 찾아오시는 주여

링컨(A. Lincoln)에게 에드윈 스탠턴(Edwin M. Stanton)이란 정적(政敵)이 있었습니다. 변호사였던 스탠턴이 링컨과 함께 사건을 맡게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링컨을 보자 "저 따위 시골뜨기와 같이 어떻게 일을 하라는 겁니까?" 라며 일어나 나가버렸습니다. 그 후 링컨을 얕잡아 보고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링컨은 내각을 구성하면서 국방부 장관 자리에 스탠턴을 임명합니다. 참모들은 링컨의 결정에 놀라며 재고를 건의합니다. 그때 링컨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수는 마음속에서 없애 버려야지요! 그것은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수백 번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국방부 장관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한번은 링컨이 국가안보문제로 그를 호출하였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링컨이 그의 집에 방문하지만 파티로 만날 시간이 없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응접실에서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참모들이 "저런 무례한 인간을 왜 해임시키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자, 링컨은 말합니다. "스탠턴이 모든 전쟁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만 있다면, 나는 그가 탄 말꼬리라도 잡고 있을 수 있다네". 후에 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 스탠턴은 링컨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들어 쓰시고자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사울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백해무익한 존재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사울이 누구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크게 공헌할 것을 기대하시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서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어 부르신 것입니다. 참된 변화는 주님이 먼저 찾아오실 때 이루어집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찾아오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만나주시는 주여

피카소(Pablo Ruiz Picasso)의 작품은 시중에서 고가로 매매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얼마 전 피카소의 미공개 작품 한 점이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경매되었는데, 293억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습니다. 바로 '황소머리'(Bull's Head)라는 조형물입니다. 1943년 어느 날, 길을 가던 피카소는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발견합니다.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낸 후 그 안장에다가 핸들을 거꾸로 붙였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황소머리' 라고 붙였는데 고가의 작품이 된 것입니다. 안장과 손잡이는 고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버려진 중고 자전거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하던 쓸모 없는 물건이 피카소를 만난 후에 고철 쓰레기가 아닌 값비싼 작품이 된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태어나느냐가 그의 조국을 결정합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가 사람의 인격과 인생의 큰 줄기를 결정합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가 가정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은 삶의 본질, 즉 영혼이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만남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만남을 우리는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의 회심 사건 핵심은 예수와의 만남입니다. 예수와의 만남이 사울의 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의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병이 낫고 교회 다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는 회심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심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병 고침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구나. 그 분이 십자가에서 내 질병을 해결하셨구나. 예수님이 나를 치료하셨구나" 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도, 하늘의 음성을 듣는 것도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사울은 예수를 만남으로 하나님께 탁월하게 쓰임 받아,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바울의 외모를 소상하게 알려주는 '바울과 데글라 행전' 에 의하면, 바울은 대머리에 안짱다리였다고 합니다. 눈썹은 맞붙어 있고, 다소 큰 코와 자그마한 몸집을 한 그의 외모는 매우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를 만난 후에 이방인 선교라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만나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처럼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를 향해 바른 신앙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인도하시는 주여

2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영국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때 영국 황실과 윈스턴 처칠(W. Churchil)수상은 전국 교회를 향해 같은 시간에 일제히 종을 울리도록 요청했습니다. 동시에 황실은 성공회의 존경받는 주교였던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에게 전 국민에게 보내는 방송설교를 의뢰했습니다. 템플 주교는 역사적 설교를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대영제국의 국민 여러분. 잠시 후 이 땅에 모든 교회가 종을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모두 교회로 나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다. 역사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울은 주님의 인도로 성으로 들어갑니다.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가던 그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울의 삶은 볼 것을 제대로 못보고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핍박했고 믿고 따라야 할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결국 그가 하던 일은 남을 고통케 하는 일이었고 자신을 고통케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려던 다메섹도 혼자 가지 못하고 이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회심한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더 이상 내 뜻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가 주인이 되어 그의 인도를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눈이 떠져 살아 계신 예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신을 보았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된 자신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자신을 보았습니다.

'뉘시오니까' 는 우리가 드릴 고백이며 응답입니다. '뉘시오니까'는 예수를 나의 왕으로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뉘시오니까'는 예수를 나의 주로 영접하는 고백입니다. '뉘시오니까'는 예수를 나의 힘으로 여기는 고백입니다. 부디 사울처럼 인생의 다메섹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르시는 하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무의미한 삶이 사명의 삶으로 변하여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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