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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마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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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마태복음13:47-50)

  언젠가 감사헌금에 얽힌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매년 절기가 돌아오면 교인들에게 미리 봉투를 나눠 주고 작정한금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꼭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차례대로 이름을 호명하다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한 장로님이 작정한 헌금 액수를 발표하는데, 그만 30만원 작정헌금을 “300만원을 작정헌금 하셨습니다.” 라고 해버린 것입니다. 장로님은 깜짝 놀라며 당황해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나중에 발표된 300만원을 기꺼이 헌금했습니다. 얼마 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장로님을 만나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제가 30만 원짜리 감사인생인 줄 알고 30만원만 헌금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을 통해 300만 원짜리 감사인생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사실 주일에 30만원의 10배인 300만원 작정헌금 발표를 듣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께 그 문제를 내어 놓고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지난날들을 헤아려 보니, 제 인생은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발표하신 대로 30만 원짜리 감사인생이 아니라 300만 원짜리 감사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30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 되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결국 감사의 크기는 깨달음의 크기이고,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큰 재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은혜를 깨닫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한번은 자동차 왕인 헤리 포드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고아원생들을 위해 강당을 지어 줄 것을 약속하고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2천 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지역 신문에 헨리 포드의 기부에 대한 머리기사가 뜻밖에도 이러한 내용으로 실리고 말았습니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0,000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속하다.”
  2천 파운드가 2만 파운드로 잘못 기재되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고아원 측에서는 바로 포드 회장을 찾아와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정정기사를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모두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신문 기사에 실린 대로 20,000파운드를 내겠습니다. 대신 고아원 강당이 완공되면 강당 입구에 이런 글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어진 강당’이라고요.”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삶은 감사함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비록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매사에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 인생은 추하고 저주스런 인생입니다. 쓰레기와 오물과 배설물과 같이 냄새나는 삶입니다. 불평도 끝이 없고 감사도 끝이 없습니다. 어느 인생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도 살아 있는 것 감사합시다. 예수 믿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 감사합시다. 믿음은 돈을 아무리 주어도 살 수 없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최고와 영원한 가치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알 때 마음과 얼굴과 인생이 달라집니다. 시선과 관점과 삶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은 유한하기에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이든 예수님의 재림이든 분명히 있습니다. 종말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빌라도와 바로와 네로도 죽었습니다. 그들의 끝은 불행합니다. 그러나 스데반과 바울도 죽었습니다. 그들의 끝은 행복합니다.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 받았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림으로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교회

  본문 47-48절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예수께서 비유를 베푸셨던 곳은 갈릴리 주변 동네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는 갈릴리 어부 출신 제자들과 갈릴리의 어족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한편 갈릴리 바다에는 약 22종 이상의 물고기들이 생존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여러 인종과 민족이 이에 포함될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무거운 납을 달아 바다 밑바닥까지 쓸어 대량으로 고기를 잡는 대단히 큰 그물입니다. 이 그물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계 도처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과 더불어 그 확산의 결과로서의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종말의 심판 때까지 참 성도와 거짓 성도가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믿게 만드는 곳입니다. 못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곳입니다. 우상을 섬기거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여 의인과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곳이 교회이며 교회의 최대의 사명입니다. 신자와 제자와 천국백성을 만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교회가 없으면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로 값주시고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고 귀한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 문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구원을 얻게 됩니다.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울 때 따뜻함을 느끼듯, 신앙인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따뜻함을 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를 잘 사용한다면 가능합니다. 곧 형제애를 나누고 서로 격려함으로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잠자는 영혼들을 일깨우기 위해 격려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정욕과 악마의 유혹을 대적하는 파수꾼을 세우기 위해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십자가를 짊어지며 우리의 복되신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또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주신 약속을 잡으려 푯대를 향해 달려간 믿음의 조상들과 순교자들을 본받도록 격려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앙 모임을 가질 때마다 서로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동원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에 불꽃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거룩한 성경 읽기나 말씀 듣기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빛을 받거나 발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그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그물’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 교회인 그물이 큰 그물이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그물이 되어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까지 인도해야 합니다. 던져지지 않는 그물이 아니라 물속으로 그리고 깊은 곳으로 끊임없이 던져지는 전도를 계속적으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물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야 합니다. 며칠 전 물속으로 들어간 고양이를 건지려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그물, 사람을 낚기 위하여 그물을 던지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교회와 어부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의인

  본문 49절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갈라내어’의 헬라어 ‘아포리우신’은 완전한 격리를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 날에 실행될 의인과 악인에 대한 분리작업의 냉엄한 장면을 예감케 합니다. 곡식 중에서 가라지를 뽑아내어 불태우듯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내어 지옥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악인들과 섞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완전한 보호와 정확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의인들’이란 복음을 믿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의인들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아버지의 나라’ 곧 영원한 본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들의 빛남이 마치 어둠 가운데 있는 모든 사물들을 밝히 볼 수 있게 하는 등불과 같이 빛나게 된다는 의미로 세상 끝날에 성도들이 덧입게 될 영광의 광채의 최고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말입니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모든 만물이 다 해처럼 빛날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던 처음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것입니다. 이 세상 무엇도, 누구도 해처럼 빛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텍사스의 한 성공한 실업가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100만 번 기록한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은 ‘100만 번의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원고에는 100만 개의 감사 제목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가득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어떤 출판사에서도 출판하겠다는 제의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단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100만 번이라도 감사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과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술과 여자에 빠진 채 폐인이 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주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사업가로도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한 권의 책에 담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해프닝으로 끝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출판되었다면 나는 아마 한 권 사서 소장했을 것 같습니다. 사업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슴 설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100만 번도 더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형편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완전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100만 번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입으로만 아니라 삶으로 평생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악인’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의인’이 되었음을 굳게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악인

  본문 49-50절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비유의 절정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 때에 있을 악인들의 영원한 형벌의 상황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입니다. ‘풀무’는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무서운 불로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흔히 ‘불못’ 또는 ‘지옥’으로도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찜질방 정도는 비교도 안 됩니다. 지옥도 더 뜨겁게 리모델링하고 있다는 유머도 있습니다. 모든 불의한 것들이 징계되고 일소되는 이곳에서 악인들은 종말적인 영원한 운명에 처해지게 됩니다. 비참하고 무서운 곳입니다.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하였습니다. 헬라어 ‘브뤼그모스’는 ‘물어뜯다’라는 뜻입니다. 굶주림에 계속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모습이나 분노로 씩씩대는 사람의 악랄한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천국과 지옥,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최고 그리고 최대의 영원한 불행은 예수 안 믿어 악인이 되어 지옥 가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명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신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만 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일이 없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면서도 그마나 어느 정도 자신을 절제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이러다 혼나지’라는 신에 대한 어떤 의식이 그들의 양심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이렇게 바꿔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신이라고 느낀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신이 없다고 확신한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은 용감하게 타락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최고의 지혜이며 선택이며 행운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악인과 지옥의 운명이 아님을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우리 가족이나 이웃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악인이 되어 지옥 불에서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힘써 복음을 전합시다. ‘한 영혼’을 꼭 지옥에서 구합시다. ‘악인’을 '의인‘으로 구원한다면 여러분은 위대한 사람이며 면류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됩니다. 이 일을 마땅히 해야하며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끝은 반드시 옵니다. 이는 진리입니다. 교회를 잘 섬기는 의인이 되어 악인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선교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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